[점혼남] 에필로그. 오상아(吾喪我)와 정오의 데이트

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6)

by AND ONE
삶은 이제 탄생에서 죽음까지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선율적 지속
켜켜이 쌓인 시간성의 밀푀유다
- 파스칼 뷔르네르크 <아직 오직 않은 날들을 위하여> -

혼자 점심 먹는 시간. 정해진 순간에 찾아오는 정오의 데이트. 나는 나를 마주한다. 직장에서의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또 누구인가. '나'라는 개념은 그렇게도 중요한가? '나'를 잃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를 잃음으로써 나를 되찾고, 진정한 자아를 회복한다는 건 무엇일까? - 이런 고민들과 무수히 함께 했던 혼자만의 점심들. 언제부턴가 혼자 먹는 점심이 자연스러움을 넘어, 평일의 표준이 되었다.


점심(點心), 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그 시간 제약이 나를 각성시킨다. 이상하게도 각성 상태에서는 오히려 죽음의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죽기 전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할까?"라는 질문이 회사의 점심시간처럼 다가올 때, 이 글은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글이 쓰여진다는 건 곧 나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무아지경과 물아일체의 경험을 위해 <점혼남>과 함께 했던 시간. 오상아(吾喪我)와 함께 했던 4개월 간의 정오의 데이트. 장자에 따르면, 오상아(吾喪我)란 "나는 나를 장사 지냈다" 또는 "내가 나를 잃었다"는 뜻이란다. 불교로 따지면,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변하기 때문에 영원히 변치 않는 고정된 실체, 즉 자아는 없다는 뜻과 같으리라.

<점심 혼자 먹는 남자, 브런치북 소개글>

점심을 혼자 먹는 남자에 관하여. 선택적 혼밥은 자발적 고독 상태. 자고로 점심이란 "점심"의 "점"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허기가 져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마음에 불이 반짝 붙을 정도로 간단히 먹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점심을 먹는 남자는 자기 마음에 점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제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부모를 먹여 살리기 위해, 또는 죽지 않기 위해 점심을 혼자 먹는 사람. 점심을 혼자 먹으며 하는 생각들.

그 생각들과 상상이 이 사회에 따뜻한 마음의 점찍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뜨끈한 오봉밥 같은 문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다.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점심 혼자 먹는 사람의 애환을 쓰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자아를 버리지 못했다. 타인의 상황을 쓰거나, 내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건 취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직접 그 현장에서 땀 흘리며 느낀 고통에서 비롯된 글이 아니었다.


타인의 고난과 고통과 비애와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쓰는 건 글이 아니라 칼이 된다. 나로부터 쓰여진 글은 나의 주관과 편견과 시각을 담을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향하는 주제가 아닌 경우에는 주제넘게 타인의 삶을 어림짐작했다.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삶은 짐작의 영역이 아니었다. 삶은 창작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각자의 삶은 오로지 현재 시제로 쓰여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글을 썼다.


어쩌면 나는 모순된 행복을 글쓰기에서 찾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오상아(吾喪我). 나는 나를 죽이기 위해 글을 썼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 점심은 우리 시대의 목욕재계의 순간인 것이다. 점심에 먹는다.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혼자 먹는다. 점심에 한 남자가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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