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5)
아직 나답게
제대로 살지 못했다.
그게 너무 아깝다.
지금 결혼하면 억울할 것 같다.
토요일 오전 11시 결혼식. 점심 혼자 먹기 딱 좋은 시간. 주말에 너무 늦잠을 자지 않을 수 있고, 아침과 점심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브런치라고나 할까. 결혼식에 혼자 간다. 사람을 사귈 때, 1대 1로 깊은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같이 아는 친구가 없다. 물론 결혼식장에서 나와 신랑의 관계는 얼굴만 아는 사이 된다. 가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다 지인 아니던가?
누군가의 친구이지만 동시에 결혼식장에서는 지인으로 불릴 만큼의 거리감을 활용한다. 30분 전부터 개방되는 뷔페식을 먹기 위해 나는 신랑 측 명부 첫 페이지에 이름을 적고 식권 한 장을 받는다. 식권 한 장. 언제쯤이면 나는 식 권 두 장을 받고, 장차 나의 식구를 꾸려갈 사람을 소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예상보다 많은 식전 뷔페 식사 무리에 놀라 자리부터 찾는다.
제자리를 찾는다. 제자리는 "거기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인데, 요즘은 '제자리'라는 개념이 모호해졌다. 신랑 하객이 신부 측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반대도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하객의 위치뿐이겠는가. 요즘은 남성다운 여성, 여성다운 남성을 테토녀와 에겐남으로 지칭하며, 성정체성 또한 본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앞의 뷔페 음식들처럼 장르가 혼란스럽다.
결혼, 참 혼란스럽다. 나는 90년대, 30대 남성으로서 여성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 근데 그게 그렇게도 어렵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인데, 나는 지금껏 남성으로서 여성스러워지길 기대받고, 동시에 불합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순간에는 남성스럽기를 기대받는다. 근데, 이런 이중 모순 같은 기대에 부응하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나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그렇다, 일단 자아도취가 되어야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야 올드스쿨 가이)
남자가 여성스러운 여자를 원하고 여자가 남성스러운 남자를 원하는 게 당연하다. (예외는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각각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남성성과 여성성 그 각각은 프래질(fragile) 하다. 결혼은 전통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결합시킴으로써 (이상적인 형태의) 부부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40%에 육박하는 1인 가구 보유국 대한민국에서 남자는 여성성을, 여자는 남성성까지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불분명해지니, 당연하게도 남자는 여자가 필요 없고 여자도 남자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은 본질적으로 남자는 여자 같아지고, 여자는 남자 같아지는 게 근본 원인이다. 서로 비슷해지면 서로를 필요로 않게 된다. (성소수자까지 생각하면 복잡해지니, 나의 이야기는 아니니 생각 않기로 한다)
본식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한 접시 더 퍼올까 고민한다. 축의금 10만 원을 냈는데, 축하의 의미가 5만 원이고 식사값이 5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최소 5그릇은 먹어야 그릇당 1만 원으로 계산이 된다. 계산식을 바꾼다. 꽉 채운 한 접시의 값어치를 2만 5천 원으로 조정한다. 그렇다. 축의금의 의미, 식대의 의미 모두 정의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얘기하는 남녀혐오/부동산의 문제/워라밸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진정으로 자기 삶을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게 문제다.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결혼의 시기를 계속 뒤로 미루게 된다. 오늘 결혼하는 녀석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한 능력자 녀석이다. 가만 보면 대기업과 공기업, 교직에 진출한 친구들이 아니면 결혼을 좀 늦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고소득자인 변호사 친구들도 결혼을 일찍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학4년+군대2년+로스쿨3년+(재수/휴학/유예/재시험 : +1~2년)]으로 계산하면, 주변의 변호사 녀석들은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은 넘어야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서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서른 줄에 갓 취업을 하는 남자가 상당수일 것이다. 여성의 병역면제 사실을 감안하면, 국내 100대 대기업에서 20대 남자의 비중은 10%대이지 않을까?
인생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보니, 결국 '선택하지 않음'이라는 '지연' 전략을 자꾸만 쓰게 된다. 사회 진출의 시기도 늦었는데 가정 형성의 시기도 늦어진다. 결혼하는 녀석들을 보며, 전통적인 남성성을 요구받으면서 '가장'으로써 사느니 스스로 여성성을 장착하여 1인가구로 살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도 알고 있다. 계속 시간을 끄는 건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상태가 개선되면서,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괜찮아 보이는' 남녀는 거의 모두 자신의 짝꿍이 존재한다. 자연스레 소개팅해주겠다는 연락이 줄어든 것을 보니 30대 초반이 아니라 30대 중반으로 진입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이냐며 스스로에게 묻는 게 가끔은 두려워 귀가 멍해지는 웨딩홀에서 고독한 미식가가 되는 것을 즐긴다. 도대체 뷔페 음식에 뭐가 들었길래 식대가 이렇게 비쌀까 하며 입안의 내용물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이제 곧 예식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앗. 아직 나는 갓 꺼낸 육회가 해동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랑의 입장을 직접 볼지 육회가 해동될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한다. 어차피 신랑은 입장 때보다는 행진할 때, 하객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으리. 그렇다. 어떤 결정에는 단 하나의 중요한 이유만이 필요하다. 축의금 10만 원의 당위성을 스스로 납득해야만 한다. 눈앞의 육회 대신 캘리포니아롤과 스시로 배를 채운다는 것은, 고물가 시대에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닐 것이다.
결코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요즘 어떻게 지내?" → "만나는 사람은 있고?" → "나도 곧 결혼해~"]라는 소식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결혼식장에서 점심 혼자 먹으며 하는 이런 생각이 누군가의 눈에는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란 남자에게 결혼은 마치 영화제목처럼 미친짓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가끔은 나도 사무치게 미치고 싶은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