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명확한 목표를 가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Travel Blues]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그리고 명확한 목표

by AND ONE
궁극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겪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은
다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명확한 목표를 묻는다. 다짜고짜 묻는다. 산행을 함께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초입부터 너의 명확한 목표는 무엇인지 묻는다. 아직 흙먼지가 신발 쿠션 사이에 끼기도 전이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안부는 간단히 묻고 30대 중반으로 진입한 채, 무언가를 잘하고 싶고 내 것을 하고 싶은 건강한 욕심과 욕망을 가진 존재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물어야만 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명확한 목표를 찾기 위해 떠나는 일상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유명한 역술인이 미디어에 등장해, 관악산의 기운이 좋다며 여러 젊은이들이 벌떼처럼 모여 관악산 정기를 받으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차! 아차산도 그 흐름에 올라탄 것 같다. 사람은 많았고, 다수의 사람은 운을 바라고, 그 믿음이 나의 삶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그 설명되지 않은 기운은 믿음의 순환성에서 돌고 돈다.


세상이 돌고 돌아 요지경이 되는 만물 형상의 원리는 우리 사회에 관상과 풍수로 남게 된듯하다. 처음에는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관상을 믿고, 관상 좋은 사람을 우러러보는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조상님이 추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묫자리를 확인해 보니, 무덤 안으로 물이 차고 있다는 이야기. 여전히 믿지는 않지만, 믿음을 저버린 것도 아니다.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자신의 성장에 기쁨을 느낀다.


또 하나의 기쁨! 나는 진정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을 통해 듣는 일의 기쁨!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35년의 삶에서 주기적으로 변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주변 사람들이 얘기한다. 발화된 말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존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 존재의 발견은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이자 성소(聖所). 자신이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거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직 스스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명될 수 없으며 설명되는 순간 깨달음의 기쁨과 거룩함은 사라진다.


거룩함이 거북했던 순간이 존재했었다. 거룩함(Holiness)은 종교적 단어. 그 의미는 세상의 속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깨끗하고 위대한 상태를 지칭하는 그 완전무결함이 거북했다. 세상은 자고로 속되고 더럽고 거칠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자들은 종교적 믿음이라는 도피처에 스스로를 '봉헌'이라는 명분으로 속박시키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의심은 확신을 낳았다. 내가 그렇게 의심하기로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의심이 되고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사실과 확신이 되었다. 하나의 상(像)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건 나의 생각과 만나는 현실만이 오직 나의 현실로 실현되는 것이었다. 말과 글로 쓰인 현실의 생성 원리를 자기 삶의 내러티브에서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했던가. 그러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도 없다.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날 것이며, 지금의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에 내 곁에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진실로 구하는 자,
진실로 찾고자 하는 자는
아무런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다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관악산의 좋은 정기를 받기 위해 한 걸음씩 계단에 오르는 젊은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왜 돌을 던지는가. '누군가 좋다고만 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한국인들의 습성'이라고 혀를 끌끌 찼던 자신을 반성한다. 도대체 왜 등산을 통해서 본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관악산 불의 정기를 받아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도달하고 싶은 그들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행위에 비관적인 생각을 갖는가?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행동이 있고 필요한 실수가 있고 필요한 눈물이 있고 필요한 분노가 있고 필요한 깨달음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진실로 구하는 자, 진실로 찾고자 하는 자는 아무런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스로 구하고자 움직여야 한다. 물리적 위치에 따라 시야가 달라지게 되는 등산의 경험은 민낯을 드러내는 저 웅장한 존재의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 의지의 씨앗을 싹 틔우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 것이다. 어른은 결국 어린아이와 노인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 동시성에서 모든 것은 대립면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진실과 거짓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오직 내가 찾고자 하는 것,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 삶의 불멸성과 유한성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 결국 하나의 존재는 나로부터 존재하고 나에게로 소멸하는 과정임을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계단과 바위 앞에서 자연히 깨닫게 되는 것.

구한다 함은 목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찾아낸다 함은 자유로운 상태, 열린 상태,
아무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허나 그 깨달음 앞에 하나의 깨달음이 놓여있다. 진정 명확한 목표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 그 시발점은 아무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비롯된다 것, 아무런 목표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내 안의 명확한 목표를 발견하는 것, 그 자유로움과 열린 상태에서 수많은 혼란과 불안이 환희와 기쁨의 연료가 될 때, 명확한 목표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를 가장 믿을 수 없을 때, 나를 믿어야 한다. 그 모순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모순을 모순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은 간단하고 명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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