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즈 다이어리

나 설렘

by 인지니

며칠 전 우연히 SNS에서 운세를 보게 되었다. 이제 막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무속인이 말하기를 “26년 갑인년 호랑이띠 중에 솔로이신 분들에게 마음에 맞는 이성이 생기시겠네요? 오십 넘어 무슨 이성이냐? 사랑이 뭐가 중요하냐? 하시겠지만,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니 기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잠시 기분이 묘했다. ‘내 나이가 사랑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인 건가?’ 내가 벌써 젊은이들 보기엔 그런 나이인 가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사랑을 느껴본 게 언제였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사랑을 갈구하며 찾고 있는 나와 친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열다섯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상황은 우리를 참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둘 있다. 우린 모두 현재 솔로이다. 그중 한 친구가 매번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놈. 놈. 놈을 패러디한 姩. 姩. 姩을 만들어 이야기를 써보라고, 한번 다녀온 姩, 두 번 다녀온 姩, 한 번도 못 가본 姩으로 쓰라는 것이다. 우리는 까르르 웃고 말지만, 정말, 우리 셋에겐 참으로 다양한 연애사가 있긴 하다. 두 번 다녀온 친구와 한 번도 못 가본 친구의 남자에 관한 생각은 완전 극과 극이고, 한번 다녀온 나는 그 두 친구의 사이 정도 된달까? 친구의 말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언젠가 꼭 소설로 풀어 볼 생각이다. 오늘은 금사빠인 나에게도 정체되어있던 설렘을 느낀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사실 처음 말했던 무속인의 말을 반은 공감한다. 솔직히 이젠 웬만해서 설렘이란 단어는 없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저 사람 뭔가 흑심이 있나?” 의심부터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자체가 참으로 귀찮고 피곤한 일이지 않은가? 그것도 에너지가 있을 때 하는 일이란 생각이다. 나의 절친들을 보면 더 가관이다. 늦은 만큼 더 따지고 더 갖춘 사람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더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만날 사람도 없어지는 것인데, 늘 왜 자기 짝은 없을까 속상해한다. 사실 내 눈엔 친구가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본다면 어울릴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친구들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자신들이 생각하는 남자의 기준에 절대 더 양보는 없었다. 일부에서 그런 친구들을 보고 말한다.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서 그런다고······. 이런저런 조건도 맞아야 하고 어린 날의 어떤 순간 느꼈던 사랑의 설렘도 줘야 하는데, 지금 나이에 만나는 남자들은 자기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는 한 거의 배가 나오거나 머리가 살짝 벗어진 한마디로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런 설렘을 느끼기 쉽지 않은 걸 뭐, 어쩌겠는가? 그런 점에선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은 한다. 하지만, 또 우리는 주제 파악이 잘 된 사람으로 잘 갖추고 있는 이성 들이 왜 우릴 만나겠는가? 더 어리고 예쁜 이성을 찾겠지! 그들이 보기에 또 우리는 부끄럼을 모르는 제3의 성 아줌마일 뿐이지 않겠나? 그래서 중년의 연애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동상이몽이랄까? 하하하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동창회 사이트가 있었다. 호호 하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동창들을 만나서도 어릴 적 부르던 이름을 불러가며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는 재미로 열심히 친구를 찾아다니던 사이트. 그 안에서 초등학교 시절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던 어린 친구와 재회해 결혼하고, 연애를 하는 등의 미담을 많이 들었다. 물론 미담만 있는 건 아니다. 30대가 넘어 40, 50대 동창들 사이에 친구끼리 바람이 나서 모임이 깨지고, 친구들은 다시 흩어진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럼, 같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만나는데, 왜 그 모임에선 그렇게 이성이 어울려 다시 사랑하고 만나고 가정까지 파괴할 뜨거운 사랑들을 하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함께 자라며 가진 추억과 기억의 공유들이 그들의 마음의 경계를 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추억과 기억이라는 것은 남자에게도 소중하겠지만, 특히 여자 사람에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는 추억을 뜯어먹으며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아줌마들이 원수, 원수 하면서도 자기 남편을 정성껏 챙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십 대의 나이에 남편에게 열열한 구애를 받아 연애를 시작하고, 어렵게 둘이 마주 잡은 손의 느낌과 떨림들, 함께 걸었던 돌담길과 내 입술이 이런데도 쓰이나 싶은 신기함에 떨리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눴던 첫 키스며, 함께 나눈 모든 기억과 설렘들이 지금 남편의 무심함과 무뚝뚝함을 참고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그 추억을 동력 삼아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며 힘든 남편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여자에게 그만큼(남자도 그럴 테지만) 추억이란 힘이 되고 에너지가 되는 것이라 연애할 때 충분히 아낌없이 잘해 주어야 나중에 적금 타 쓰듯이 빼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부 시절 선배를 오십 대가 되어 만났다. 그런데, 그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까이 보면 눈 밑에 주름도 생기고 전보다 배도 나와 보였지만, 그럼에도 학생 때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밴드 공연을 했던 선배는 인기가 많았고, 늘 여자 친구가 있었던 지라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선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고,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밤새 이어졌다. 하나, 둘 동기들이 빠져나가고 둘만 남아 긴 수다를 떨었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던 선배가 혼자된 지 10년이 되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잘 좀 살지!”

“그렇게 됐어!”


내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던 시절 내 술주정과 주접을 받아주던 몇몇 선배 중 하나였기에 나도 받아줄 수 있었는데, 왜 미리 연락하지 않았는지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중학생 아들 생각에 열심히 살고 있다는 선배를 보면서 나 역시 아들 생각에 최선을 다하고 살고 버티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토닥토닥 주제넘지만, 난 선배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조금만 힘내! 애 크고 대학생 되니까 좀 살만해진다. 중2 음, 제일 신경 많이 써야 할 때네!”

“공부도 잘해! 기특해!”

“그건 선배 안 닮아 다행이네!”


그렇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마음이 안 좋으면서도 뭔가 따뜻했다. 내가 힘들 때 내 어깨를 토닥여주던 선배의 어깨를 내가 토닥여줄 수 있음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 취해 택시를 기다리며 선배가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너 왜 이뻐? 안 그랬잖아? 왜 이뻐?”

“나 원래 이뻤거든?”

“아니거든!”

“취했나 보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이 주책맞은 아줌마의 가슴이 쿵쾅거린다. 오랜만에 뭔가 설렘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SNS에서 본 무속인의 말이 맞는 건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뭔가 따져지지 않는 어느 한 지점 추억이 같은 선배에게 어떤 경계도 없이 설레는 내 마음! 지금 잠깐은 그걸로 충분히 기분 좋은 만남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절친 둘은 또 이런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그녀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도 하다. 다음 단계는 나도 아직 모른다. 그냥 이것저것 따지는 친구들과 누군가를 또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짠 하고 나타난 선배를 보고 설레는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다는 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반가웠어요. 오빠!”

^^헤헷~(주책모드 ㅋㅋㅋ)

KakaoTalk_20251222_012832510_02.jpg


작가의 이전글솔밭문학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