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I Dec 13. 2024

딸기

반려견 이야기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동물들을 무서워했다. 특히, 개와 고양이를 무서워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2~3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주인집에서 키우던 개를 끌어안고 찍은 사진도 있던데, 딱히 물리거나 위협적인 일을 당했다는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왜 그렇게 주변에 동물들을 무서워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집에 가는 길에 지나는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 어디에 사는 개인지 작지도 않은 개가 꼭 그 골목 끝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 개는 나를 보고 사납게 으르렁거렸고 내가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달려들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몇 시간씩 다른 사람들이 골목으로 들어설 때까지 그 개와 마주 서 있던 경험은 아직도 진땀이 나는 듯하다. 아무튼, 결국 나는 그 개가 무서워서 그 골목이 아닌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해 집 가게 되었었다.

이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번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내가 신혼이던 시절, 결혼하고 3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난임이었던 우리 부부는 병원에 다니며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주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부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아기를 갖게 됐는지 물어보고, 한약을 먹었다면 한약을 지으러 갔고, 알로에를 먹었다면 소개를 받아 알로에를 먹을 정도로 좋다는 것은 다 했다. 어느 날 남편 친구네 부부가 이사했다며 집에 초대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서 임신 소식을 알렸다. 나는 언니가 너무 부러워서 축하해 주면서 비결이 뭔지 물었다. 언니 말인즉, 아기도 안 생기고 혼자 집에 있기도 적적해서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생각지도 않게 임신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마, 강아지를 질투해서 더 있다가 오려던 아기가 서둘러 온 건 아닐까 싶어!”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얘기에도 ‘아! 맞네!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막힌 타이밍에 근처에 사는 막내 이모네 집에 업둥이 개가 들어왔고, 그 개가 결혼을 해서 새끼를 낳게 되었다. 이모는 직접 개의 출산을 도와주었고, 나는 곁에서 그 과정을 도왔다. 우리(엄마 개 이름)가 첫 출산이라 그랬는지 쉽게 아기를 낳지 못하고 낑낑거리기만 했다. 이모는 우리를 도와 엉덩이에 걸린 첫째 강아지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다급히 말했다.     


“JINI야! 그 옆에 수건으로 얘 좀 받아서 닦아줘!”

“내··· 내가?”

“빨리, 또 나온다.”     


산파 역할이 처음이라고 믿기 힘들게 이모는 아주 훌륭한 수의사처럼 어미를 독려하며 강아지들을 받았다. 나는 수건 위에 올려진 첫째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수건으로 강아지를 그냥 감싸 안고 한 참 쳐다보았다. 눈도 못 뜬 채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혀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고 마냥 귀엽기만 했다.     


“와~ 얘 진짜 귀여워!”     


강아지는 내 말에 반응하듯 낑낑거렸다.     


나는 매일 이모네 집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 강아지는 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강아지들 어미 이름)는 총 네 마리의 강아지를 낳았고, 내가 받은 첫째만 암놈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놈이었다. 한, 두 달 매일 이모네 집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내게 이모가 물었다.     


“너도 한 마리 키울래?”

“응? 내가?”

“응, 얘들 다음 주에 다 분양할 건데, 데려갈 사람들이 벌써 다 정해졌어! 너도 키우고 싶으면 한 마리 먼저 골라”     


순간 망설였는데, 문뜩 강아지를 키우고 나서 임신이 된 언니가 떠올랐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나는 한 마리 키우겠다고 하며 강아지들을 보았다. 역시나 첫 번째 내 손에 올려뒀던 암놈을 데려가고 싶었다.     


“얘! 첫째로 데려갈게!”     


인형 같은 강아지는 너무 얌전했고, 예뻤다. 나는 그에 맞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쉽게 맘에 드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남편과 시장을 보러 갔는데, 과일가게에 포장된 딸기가 얼마나 빨갛고 예쁜지 한참을 ‘색이 참 곱다.’는 생각을 하고 서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아! 저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강아지 딸기가 나와 가족이 되었다.     

딸기는 정말 똑똑했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어미랑 떨어져서 우리 부부와 지내면서 딱 한 번 화장실 앞에서 응가하고 혼나더니, 두 번째부터는 응가와 쉬를 화장실에 가서 해결했다. 화장실 턱이 높진 않았지만, 조그맣고 짧은 다리로 화장실 턱을 넘어서 볼일을 보고는 ‘나 잘했지?’ 하는 것처럼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근데, 그게 나에게는 잘못된 생각을 주었던 것 같다. 딸기가 뭐든 조금 실수라도 하면 무턱대고 혼내기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데, 그땐 잘 몰랐다.


아가 때 딸기는 진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욱하는 성격의 나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사실 동물들이 사나운 이유가 겁이 많아서라고 하던데, 나 역시 무서운 마음에 내가 먼저 더 강하게 나갔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서열 싸움에서 지면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이 있는 것처럼···          


딸기는 윤이 나는 갈색 털에 축 늘어진 귀를 가진 잉글리시 코커스패니얼로 사냥개의 후손이라고 했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해서 말귀도 잘 알아듣지만, 활동적이고 개구쟁이 같았고, 목청이 크고 우렁찼다. 개를 키우려면 성격이 좀 털털해야 개도 주인도 덜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는 개털 날리는 게 싫다고 딸기의 그 윤나는 털을 항상 짧게 밀었고, 산책을 좋아하는 발랄한 딸기가 실외에 발을 내려놓았다 싶으면 발을 닦아대는 바람에 발가락 사이에 습진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딸기를 보며 털 빠진다고 투덜거리며 청소하고 있으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난 사료 그릇에 있는 엄마 머리카락이 더 싫거든! 외출하고 오면 엄마 발이나 좀 씻으라고, 난 그만 좀 씻기고···”     


아무튼, 나는 딸기에게 최악의 주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내가 드디어,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임신이 됐다. 병원에 5년을 다녔고, 임신을 위해 날을 받아 준비하기를 3년 만에 임신이었다. 나는 초기 유산의 조짐이 있어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쉬면서 태교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말만 못 했지,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눈치 빠른 딸기는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식탁 밑에서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그런 딸기를 가만히 보면서 말했다.     


“딸기야! 정말 네 덕에 아기가 생긴 거니? 근데, 나는 아기랑 너랑 같은 집에서 못 키울 것 같은데, 어쩌지?”     

딸기는 알아듣는지 한숨을 푹 쉬고 엎드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좋은 소식이 있고 나서, 입덧을 핑계로 외식을 자주 했는데, 딸기는 우리 부부가 나갈 때부터 들어올 때까지 온 아파트가 떠나가라 짖어댔다. 결국, 이웃들에게 항의를 받게 됐고, 나는 집마다 일일이 다니면서 죄송하다 인사를 하고 선물을 돌렸다. 그리고, 그 일을 핑계로 딸기를 집에서 내보낼 계획을 짰다.     


딸기는 결국 시댁에 부탁하기로 했다. 당시에 시댁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이어서 오히려 딸기에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나의 말에 남편도 시 부모님께서도 수긍해 주셨다. 그렇게 딸기는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돌 지나고 나서부터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씩 시댁에 갔다. 첫아들이라 시부모님께서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기도 했고, 남편이 딸기를 보고 싶어 해서도 자주 갔다. 갈 때마다 딸기는 난리가 났다. 항상 먼저 나에게 와서 점프해서 뛰며 만져달라고 하는데, 나는 아들을 안고 딸기가 애를 건드릴까 봐, 한 번을 만져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면, 딸기는 금세 남편에게 돌아서서 또 뛰고 핥고 우는 소리를 내며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남편이 딸기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쓰다듬어주고, 뽀뽀해 주고 한참을 해야 겨우 진정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내 행동이 유난스럽고 재수가 없긴 한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유난을 떨게 되는 거, 몇몇 엄마들은 공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땐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혼하고, 지가 죽겠다고 시댁에 아들도 맡겼다.

············.

늘 딸기를 홀대하고 구박하는 모습을 보던 여섯 살의 아들이 주말마다 나와 만났다가 헤어지던 어느 날, 울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딸기처럼 말 안 들어서 할아버지네 버렸어? 이젠 말 잘 들을게요. 엄마랑 살게 해 주세요. 네? 진짜 말 잘 들을게요. 엄마!”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아프다. 어린 아들의 눈에는 갑작스러운 엄마와의 이별이 그렇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정말 그날 아들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딸기는 가람이가 너무 어려서 할아버지 댁에 맡겼고, 가람이는 엄마가 좀 아파서 잠깐 할아버지랑 있는 거야! 절대 그런 거 아냐!”


그렇게, 나는 나대로, 아들은 아들 대로, 우리 딸기는 딸기대로 각자 가슴에 슬픔과 그리움을 가득 담고도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았다.

모두가 아파도 아픈 대로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가람이가 5학년 딸기가 열세 살이의 어느 주말 새벽이었다. 지난 일, 이 년 암에 걸려 뒷다리에 큰 혹을 달고 지내던 딸기가 죽었다며 가람이 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새벽에 조용히 고모 곁에 와서 눕더니 그대로 떠났다고 했다. 주말이라 아들과 있던 나는 서둘러 아들과 서울로 올라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딸기는 뻣뻣하게 굳은 채 잠들어 있었다. 처음 세상에 나오던 순간 수건에 딸기를 받았던 것처럼 커다란 담요에 딸기를 받아 안았다.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안겨서 나를 핥고 쓰다듬어 달라고 폴짝폴짝 뛰던 녀석을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준 적이 없는데도 내가 자기 엄마라고 항상 꼬리를 흔들고 반기며 사랑을 갈구하던 딸기에게 그저 너무 미안할 뿐이었다.

     

“딸기야!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랑 많이 받고 살아라!”

     

나는 딸기를 화장터에 가서 화장해 주면서 마음으로 빌어주었다. 아들 가람이는 그날 아주 많이 아팠다. 딸기에게 많이 의지하고 자랐으리라, 비록 동물이지만 누나였고, 딸기도 동생처럼 가람이를 챙겼으니까···.


딸기는 작은 유골함에 담겼다. 나와 가람이는 가람이가 잘 보이는 아파트 안 나무 아래 딸기를 묻어주었다. 그렇게 딸기를 보내고, 일 년이 지나 가람이가 13살이 되었을 때, 나는 서울 산동네 반지하로 이사를 왔다. 그 집에 같이 이사 온 귀신들 덕분에 그곳에 영혼이 드나들기 쉬웠을까?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딸기가 떠난 그날쯤 되었던 것 같다. 거실에서 잠들었다가 괴롭히는 남자 귀신 때문에 안방으로 옮겨 잠을 청하는데, 안방 문 앞에 빛이 환해지더니, 딸기라 나를 향해 달려왔다.



단숨에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와 나에게 다가와서는 혀로 내 볼을 핥아댔다. 컹컹거리며 반갑다고 짖듯 내는 소리는 반가움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때와 다르게 딸기가 너무 반갑고 건강해 보이는 게 기뻐서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곧 그간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딸기야! 미안해! 엄마가 그동안 너무 잘 못 했어! 엄마 용서해 줄 거지?”     


딸기는 엄마를 용서한다는 듯  '헥헥' 소리를 내며 웃고는 또 내 볼을 핥았다. 나는 이전에 딸기가 핥는 걸 질색했었는데, 싫지 않았다. 원 없이 딸기를 쓰다듬으며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딸기에게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해주었다. 딸기는 내 볼을 진하게 한 번 핥더니 빛 속으로 사라졌다. 떠나는 딸기를 향해 손을 흔들던 내가 앉아 있던 그대로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앉은 채로 잠이 들었었나?'


나는 곧 딸기가 핥고 간 내 볼에 축축하게 묻은 침을 느꼈다.

     

‘딸기가 진짜 왔구나! 이 못난 엄마 마음 풀어주러 왔다 갔구나!’     


나는 볼에 느껴지는 축축함을 한참 느끼며 반갑기도 신기하기도 한 그 밤을 나의 첫 강아지 딸기의 명복을 빌며 지새웠다.


작가의 말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제가 백번을 혼날 걸 알고 있습니다. 다 무지해서 그런 것이죠! 저는 아직도 개가 무섭습니다. 유일하게 무섭지 않은 개는 우리 딸기와 절친인 친구의 강아지 두 마리밖에 아직은 없습니다.(그 친구의 강아지도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지요.ㅠㅜ)


저는 딸기의 영혼을 보기 전까지는 동물에게 영혼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옆에 있다간 것 같은 딸기의 영혼이 절 찾아왔던 날 이후로 동물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사람도 종이 다를 뿐 그 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동물이잖겠습니까? 동물들을 보면 되려 그들이 우리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사랑하며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아직도 많이 무지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나와 다른 종이기 때문에 무조건 무서워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애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제가 조금 더 자격이 생기면 그땐 두 번째 반려견을 생각해 볼 정도로 딸기는 나에게 무서운 개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고마운 가족이었습니다.     


“딸기야! 하늘나라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랑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니? 먼 훗날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면 마중 나와 줄 거지? 사랑한다! 내 딸, 딸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