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누군가 ‘훅!’ 바람을 불어넣은 느낌을 받고 잠들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마치 마법사의 막대기에 마법으로 스르륵 쓰러지듯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사실 나는 내가 잠에 빠져들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갑자기 대낮처럼 환해지는 내 방안을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내 눈앞으로 선명하게 한 남자가 보였다.
“누구···?”
나의 물음에 남자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웃었다.
“정우성?”
나는 평소 좋아하는 이상형의 연예인을 말하라고 하면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성시경을 말한다. 성시경 씨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잘생긴 남자보다 공부 잘하는 교회 오빠 같은 스타일이 이상형이었기에 정우성, 장동건, 원빈, 현빈··· 등 잘생김의 대명사인 분들은 나에겐 그저 연예인일 뿐이었다.
“아니, 정우성 씨가 우리 집에 웬일이에요?”
나의 반응에 정우성의 모습은 한 그 남자가 웃었다. 마치 ‘나 정우성인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던 그 남자가 내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 손을 쑥 빼고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너 정우성 아니지? 내가 정우성 얼굴하고 들이밀면 좋아할 줄 알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자 환한 불빛이 사라지면서 귓가엔 여자들이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고, 정우성의 얼굴을 한 남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여자들의 웃음소리는 희미했지만 계속 들렸다. 곧 나는 내가 지금 잠이 들어있고, 가위에 눌린 것이라는 생각에 빨리 잠에서 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끙끙거리면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는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겁이 덜컥 나면서 ‘깨야 하는데, 어떡하지?’ 생각했다. 그 순간 남편이 나를 깨웠다.
“JINI야! 왜 그래?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오빠!”
나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남편에게 와락 안겼다. 남편은 예전처럼 다정하게 나를 안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다. 잔뜩 긴장하고 살던 몇 년의 설움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몰려와서 남편의 가슴을 팍팍 치면서 울었다.
“오빠!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해!”
남편은 커다란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스물두 살 그 어린 시절 우리가 처음 키스를 나눴던 그날의 눈빛으로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남편은 입술로 내 귓바퀴를 거쳐 목을 타고 어깨에 키스를 했다.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근데, 이 남자가 왜 여기 있지?
!!!!!!!!!!
헉!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구나!’
순간 나는 내 몸 위에 올라타고 앉은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분명 전 남편의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사라진 얼굴로 변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몽달귀신, 그 얼굴형만 있는 그 얼굴이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운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남자를 밀쳐내려 버둥거렸다. 이때, 옆에서 내 양팔을 두 여자가 붙잡고 누르면서 낄낄 거렸다.
“아이씨~ 이제 막 재밌으려고 했는데!”
“그러게 눈치도 겁나 빨라!”
"야! 우리가 붙잡고 있잖아! 얼른 해!"
나는 공포에 온몸의 털들이 다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귀신에게 홀려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얼굴이 없는 남자의 입에서 혀가 길게 뻗어 나와 내 얼굴을 훑었다. 그 끔찍한 느낌에 저절로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꿈에서 깨고 싶어요. 저 좀 지켜주세요!”
내 기도 소리와 동시에 몽달귀신같은 남자도 내 팔을 붙들고 낄낄거리던 여자들도 곁에서 사라지고 난 눈을 떴다. 깜깜한 방 안에서 눈을 뜬 나는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있었고, 두 여인이 잡았던 양팔은 저렸다.
시간을 보니 3시 30분쯤이었다. 나는 아직 아침이 오려면 멀었기에 꿈에서 깨고도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나는 친구를 만나 꿈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남자가 너무 그리워서 그런 것 같은데?”
“얘는! 뭐가 그리워? 내, 참···”
“너의 무의식이 원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이제 너도 남자를 좀 만나봐!”
“남자는 무슨···”
남편과 헤어진 지도 3년이 지났는데, 주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꿈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분명 내가 샀던 그 집에서 나를 두고 내기를 했던 그 여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귀신들이 내기 때문에 나를 쫓아온 건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깊이 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시급하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시작해야 했다. 이때는 2012년 그쯤으로 내가 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했던 해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일과 직장에 적응하느라 꿈같은 건 금세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며 지냈다.
그 존재들이 안 나타나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가위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알았기에 꿈에서 깰 자신이 있었다. 나를 유혹하려는 그 몽달귀신도 그냥 얼굴만 멋지게 꾸미고 나와서는 내가 쉽게 넘어가지 않자,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부 시절 잠시 썸을 타던 선배와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그 연애의 설렘 끝에 사랑을 나누는 이런 이야기의 설정 같은 게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나에게 들이댔다간 당장 내가 알아챘기에 그 몽달귀신이 목표하는 나와의 잠자리는 절대 엮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남자 귀신도 고민이 많았던지, 초반 매일 밤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것이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잦아들었고, 그나마도 매번 내가 눈치를 채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서 꿈에서 깨 버리기 일쑤였다. 사실 나도 지금은 이렇게 우스운 상황처럼 얘길 하고, 생각해 보면 웃기다 싶지만, 당시엔 매일 밤 시달리는 게 고통스럽고 무서웠고 힘들었다.
생각해 보라! 웬 얼굴 없는 남자가 밤마다 나타나서 나를 올라타고 앉아 있다면 어떻겠는가?
나는 그래도 그 남자가 여자들과 한 내기 덕분에 내게 강제로 덤비진 않고, 꼭 내가 아는 얼굴을 하고 나와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를 유혹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고,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꼭 결정적인 순간에 ‘그놈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모든 환상적인 장면은 사라지고 내 집 내 침대 위에 그 몽달귀신의 얼굴을 한 놈이 나를 올라타고 있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지면서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러면 나는 미친 듯이 주기도문을 외우며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 바로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에 푹 빠져서 남자주인공에게 한창 설레고 있는데, 꿈에서 내가 그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 드라마처럼 남자주인공에게 사로잡혀 막 키스를 하려던 찰나 얘기가 또 바로 침실로 이어졌다. 역시나 나는 한창 달아올랐고, 결정적인 순간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한동안 안 보이던 그 두 여인이 내 귀에 대고는 알아듣지도 못할 외계어로 시끄럽게 노래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하늘에 계신 계신··· 아, 다음이 뭐지?”
나는 당황했고, 여인들은 여지없이 낄낄거렸다.
“그럼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성부”
“개뿔, ^*&*$^%#$%@@^%$&^%&”
“전능하신 개뿔,^*&*$, 아이씨~”
나는 계속 여자들이 귀에 대고 떠들어 대는 소리에 주의 기도도 사도신경도 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 꿈에서 깨야한다는 생각에 중학교 때 교회에서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를 떠올렸다. 무조건 신나게, 여인들의 목소리보다 내 목소리가 더 크게 소리를 내서 복음성가를 불렀다.
“오, 주여 나의 마음이 주께로 정해졌으니, 나는 주 찬양 하리라! 깨어라. 나의 영혼아! 비파와 수금 들어라! 이 새벽에 내가 찬양하리라!”
나는 깜깜한 밤, 내 방 내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도 한참을 노래했다. 속으로는 '내가 이겼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여전히 무서웠다.
내가 그 몽달귀신과 잠자리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필사적, 본능적으로 몸부림치며 피했다. 귀신과의 스킨십은 정말 실감이 났고, 이런 현상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귀접」이라고 했다. 그것은 꽤 무서운 것이었다.
귀신에게 기가 빨려서 귀신과의 섹스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죽거나 미친다고 했다. 나는 이 몽달귀신에게 4년을 시달렸다. 부천에서 서울로 이사와 산동네 지하에 살 때는 꿈을 꾸지 않을 때도 남자가 보였다.
귀신과도 권태기가 오는 걸까? 나는 이 몽달귀신이 나타나던지 말던 지, 가위에 눌리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너무 싫었지만 견디면서 그냥 고개를 돌려 잠자리를 바꿔가며 잤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몽달귀신같은 얼굴이 되었을 때 두려움에 잠에서 깨려고만 했던 내가 그 진짜 얼굴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몽달귀신같은 얼굴에서 뭔가로 변하는데 그건 못 보고 무섭다는 생각에 잠에서 깨기가 바빴었기에 그 실체가 정말 궁금했다.
내가 그 남자를 기다리며 잠이 들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중 드디어 성시경의 얼굴로 그 남자가 나타났다. 나를 위해 노래를 해주고, 나에게 다가와 여지없이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또 뜨껍게 애무를 시작했다. 내 몸이 뜨거워질 때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역시 성시경이 아닌 몽달귀신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들이대고 말했다.
“난 이제 네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 네 진짜 얼굴이 뭐야!”
그는 '아! 들켰네?' 하는 듯 뽀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 몸을 올라타고 앉은 그 몽달귀신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마치 해태상의 얼굴처럼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주먹만 했으며,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입에는 사자의 이빨같이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나 있는 진짜 악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흉한 모습에 깜짝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네가 귀신이건 악마이건 난 이제 네가 하나도 안 무서워! 그리고, 네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난 절대 안 넘어갈 테니까 계속해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고는 그냥 자려고 돌아 누웠다. 다시 덮칠까 봐 무서웠지만 꾹 참고 자는 척하는데, 그 남자귀신이 말했다.
“에이~ 다 들켰네!”
나는 놀라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몸은 사라지고 목만 동동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섭지 않은 척 태연하게 그 동동 떠 있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졌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 동동 뜬 머리가 작은방 행가 밑 우리 집 제일 어두운 곳으로 쓰윽 들어가 눈만 반짝하며 보이더니 잠시 뒤 사라졌다. 나는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었고, 꿈인 줄 알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을 보니 3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정우성배우님 성시경가수님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
작가의 말
정말 한동안 잠자는 게 두려울 정도로 매일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괴물의 형상으로 변하는 남자의 꿈으로 힘들었었어요. 하지만, 같은 현상의 꿈을 한두 해 정도가 아니 4년을 넘게 같은 시간에 꾸고 나니까 나중에는 무뎌지더라고요. 제가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귀신도 재미없어 떠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가위에 한 번 눌려 보신 분 들은 아실 거예요. 얼마나 힘들고 무서운지, 제가 연관 지어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여자 귀신들도 나중에는 재미가 없어서 떠난 것 같아요. 남자 귀신도 나를 유혹해서 미치거나 죽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내게 백기를 들고 떠나서인지 그 뒤로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 뒤로 7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말이죠!
아직도 제가 이런 얘길 하면 제가 남자를 만난 지 오래돼서 마음속의 음란 마귀가 꿈에 나타난 거라고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쌀 비닐에 대한 제 추측은 두 번째 세입자 엄마와 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 근처 부동산에 소개받고 우리 집에 왔고, 나도 그 부동산에서 소개받고 그때 살던 곳에 들어갔었으니까 물어 물으면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귀신하고 여자귀신들이 저를 어찌 따라왔을까 싶다 보니 그런 추측을 하게 되네요.^^;;;
저는 이런 경험들을 소재로 나름의 작품도 만들었었어요. 언젠가 독자님들께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 얘기들은 개인적인 제 경험에 추측까지 보태서 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 드리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신비한 경험에 관한 얘기니까 가볍게 재미로만 읽어주시길 바라면서 저는 다음 이야기 「딸기_반려견 이야기」에서 또 만나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