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과 일몰처럼 빠이는 서서히 스며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11편

by 최성희

낯선 듯 불편하게 다가왔던 여행지 ‘빠이’. 하지만 뜨끈한 계곡 온천물에 몸을 담그자 나른하고 느슨해지며, 마음도 조금씩 풀어졌다.


우리가 향한 곳은 후아이남당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타빠이 온천(Tha Pai Hot Spting)’이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계곡 같았지만, 차가운 물이 아니라 땅속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수였다. 숲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니,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나무가 무성한 국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료를 낸 뒤 조금 걸어가자 꼬릿한 유황 냄새가 풍겨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처럼 흐르는 온천수가 나타났고, 외국인 여행객과 현지인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장 온도가 낮은 물에 발끝을 살짝 담가보았다. 따뜻했다. 차가운 계곡물이 아닌 뜨끈한 물이 이런 야외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꽤 높은 온도의 목욕탕에 망설임 없이 들어가 “시~원하다!”라고 외칠 줄 아는 한국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온도의 물에 들어가자 그제야 ‘이게 온천이지’ 하며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미지근한 물에서

반갑게도 낮은 돌담 같은 것을 넘어가면 바로 옆에 차가운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타빠이 온천을 제대로 즐겼다. 한국에서도 냉온탕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을 ‘극락’이라고 표현하며 좋아하는 나였다. 뜨거운 물에서 갑자기 차가운 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 어렵지, 그 매력에 빠지면 멈출 수가 없다.


서양 여행객들은 발 하나만 넣어보고 뜨겁다며 호들갑을 떨거나, 들어왔다가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 모습에 괜히 내 어깨가 으쓱했다. 어떤 여행객은 뜨거운 온탕에 가만히 앉아 온천욕을 즐기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내가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자 아예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사우나의 힘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에서 나와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가장 뜨거운 물이 나왔다. 물 위로 연기가 폴폴 흘러나오는 장면 덕분에 마치 요정이 사는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표지판에 적혀 있는 온도는 80도. 긴 대나무 막대 끝에 달걀 여러 개를 달아 물 안에서 달걀을 익히고 있는 장면도 이색적이고 신기했다. 한동안은 이런 천연 야외 온천을 즐기기 힘들 것 같아 머무는 동안 충분히 ‘순간’을 즐겼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타빠이 온천을 즐겼다.

물 위로 연기가 폴폴
80도의 물에서 달걀 익히기
온천을 즐기고 신나게 나오는 나와 아이들

이제는 빠이를 낯설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겨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빠이의 또 다른 일몰 명소인 ‘빠이 캐년(Pai Canyon)’으로 향했다. 붉은 흙과 바람에 깎여 생긴 좁고 가파른 길과 아찔한 절벽이 이어져 있어서 태국의 미니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어른들이 가도 위험할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이 맞을까 고민했지만, 초입까지만 가볍게 둘러봐도 충분히 멋진 곳이라고 해서 오후 5시 반쯤, 일몰 시각에 맞춰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5분 정도 걸어 올라가자 입이 떡 벌어지게 멋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듣던 대로 위험한 길로 들어가지 않고 너른 땅 위에서만 머물러도 충분히 황홀했다. 떨어지고 있는 해가 하늘과 땅을 이미 붉게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어떤 말도, 행동도 필요 없었다. 마음이 이끄는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용감한 여행객들은 좁다란 길을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절벽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그런저런 장면들이 모두 어우러져 빠이 캐년만의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부부 앞에 자리 잡고 앉아 붉은 모래를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예뻤다, 황홀했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좁은 절벽에도 잘 앉아있는 여행객들
둘째가 필름카메라로 찍어준 우리
붉은 모래 놀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려는데, 우리 부모님 연세 정도로 보이는 한국 남성분이 우리를 발견하더니 먼저 반가워하며 인사해 주셨다. 그러면서 빠이에서 한국인을 처음 만나 너무 반갑다고, 심지어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의 손자들과 같이 왔다며 자식 내외분과 손자들을 불러 인사를 시켜주셨다. 첫째는 같은 나이, 둘째는 한 살 차이인 집이었는데 아이들 데리고 하는 빠이 여행이 쉽지 않은데 우리는 해내고 있다며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집은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는 762개의 커브를 넘어오다 멀미가 심해 첫날은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값진 여행이 되지 않겠냐며 서로의 여행을 응원했다. 낯선 곳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들 덕분에 빠이에 더 정이 들었다. 반가움이 커서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작별 인사를 하고 빠이 캐년에서 내려왔다. 이제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이제 막 친해진 빠이와 작별을 시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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