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에게 선물로 건넨 필름 카메라

<아이들과 함께한 치앙마이 2주 여행> 1편

by 최성희

치앙마이에서의 첫 번째 해가 떴다.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신이 나는지 짹짹거리고 날아다닌다. 남편은 아무 데서나 머리만 붙이면 잘 자는 편이라 이번에도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가 불편한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나름 다섯 시간 넘게 하늘을 날아왔으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자고 싶었는데, 짹짹이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차피 엄마가 된 후로 제대로 늦잠을 자본 적이 없는데, 괜한 기대를 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둘째 나온이가 배가 고프단다. 첫 일주일은 님만해민이라는 지역에 있는 저렴한 콘도에서 묵기로 했기 때문에 조식 따위는 없었다. 침대에 누워 피식 웃으며 널브러져 있을 상황이 아님을 깨닫고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전날 밤에 잠깐 봐둔 파니니 가게로 향했는데 오픈 시간은 아침 9시였고 우리는 5분 전쯤 도착했다. 9시에 오픈하려면 주인이 가게 안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할 텐데 마치 9시가 되어도 문을 열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그 골목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2층짜리 빵집이 나왔다. 버터 향이 솔솔 풍겼고 꽤 세련된 브런치 메뉴도 있어서 모닝커피 한 잔과 아침 식사를 하기에 딱이었다. 바로 그 빵집이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들어간 상점이자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샀던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건넨 곳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우리 네 가족만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다. 전년도에 친정엄마 환갑 기념 여행으로 나트랑에 다녀오긴 했지만 이렇게 넷만 비행기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고(미루고 미루다 4개월 뒤에 쓰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림일기를 그리기로 했으며, 마지막으로 ‘필름 카메라’를 챙기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나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모두가 앞으로 빠르게만 가는 세상에서, 나 혼자 뒤로 천천히 가고 있는 느낌을 주는 필름 카메라. 사진 전문가도 아니고 번듯한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필름 카메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힘을 당하며 자라난 우리 아이들에게 필름 카메라는 어떻게 다가올까? 처음이니 우선 일회용을 써보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누군가는 이런 장난감 같은 필름 카메라를 찾고, 그러니 누군가는 팔고 있구나 싶다. 희소성이 생겨서일까, 예상했던 것보다 가격이 꽤 나가는 것도 신기했다.


아담한 2층 빵집에서 첫 끼니를 먹고 아이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건넸다. 둘 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네모난 작은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당장이라도 버튼을 여러 번 눌러댈 기세였다. 차근차근 사용법부터 알려주는데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건지는 둘째치고 나부터가 낯설어서 이게 되는 건가 싶었다.


다시 빵집 앞 거리로 나왔다. 도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푸릇푸릇한 나무와 꽃들이 곳곳에 있고, 쾌쾌한 매연 냄새가 맡아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의 거리. 그 거리에서 아이들은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회용 카메라 버튼을 처음으로 눌렀다. 드르륵드르륵 필름 이송 레버까지 돌리고 우리 가족 네 명 모두 눈을 크게 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렇게 하면 된 건가? 라는 표정들. 생각 해보니 나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디지털카메라를 썼으니 필름 카메라가 낯설 수밖에.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필름을 맡기고 다시 받아야 알 수 있다. 방금 찍은 사진과 영상을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하는 시대에 이렇게 긴 기다림은 오히려 반갑다. 아이들이 그 기다림을 기대감으로 느끼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든 사항은 사실 나 자신에게 바라는 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나만의 속도로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아름다운 장면이나 물건은 충분히 들여다보며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보자고, 그 과정에서 사색하는 시간도 꼭 가지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첫 필름카메라 사진 (왼쪽은 둘째, 오른쪽은 첫째가 찍은)
남편이 남긴 첫 필름 사진. 둘째가 필름카메라로 나와 첫째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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