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2편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상 루틴은 잠시 뒤로한 채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것들에 푹 젖어보는 것이 아닐까. 특히 해외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였는지 의욕과 열정이 넘치고 새로운 자극의 짜릿함을 즐기던 20대에는 거의 매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갔다. 30대가 되자마자 첫 출산을 했고, 연이어 코로나가 터지면서 잠시 해외여행을 멈췄을 뿐인데 고민이 생겼다.
아직 학령기를 맞이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자극으로 가득한 해외여행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은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꾸준히 운영해 오면서 하게 됐다. 이런저런 육아서를 읽으면서 나만의 육아 방향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도 재정립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일상 속 ‘리듬’이 나에게 중요해졌다. 가정 내 리드미컬한 생활 또한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고 믿게 되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리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은연중에 지루하다고 치부해 버렸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의 리듬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채로 살고 있었다. 그 결과, 내 몸이 보내주는 신호나 리듬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육아와 나의 일상을 힘겹게 만들었다. 인지학의 창시자이자 발도르프 교육을 만든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간은 자신의 가장 내적인 존재로부터, 그리고 스스로의 진취적인 창조력으로부터 리듬이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 나부터 자신의 가장 내적인 존재를 들여다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을 단조롭고 리드미컬하게 가져가는 것이 필요했다. 시간과 상황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내가, 10번 여행 가고 싶을 때 5번 정도는 참았고, 해외여행은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은 일상의 리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어쩌다 한 번 놀이동산에 다녀오는 것도, 갔을 땐 재밌다고 느낄지 몰라도 다녀온 후에는 새롭고 강한 자극에 힘들어서 떼가 늘거나 울음이 많아지기도 한다. 아이 기질과 예민도에 따라 다를 테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비교적 둔한 편임에도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를 자극으로 느끼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친정엄마의 환갑을 맞아 온 가족이 나트랑 여행을 다녀왔다. 시드니에 살고 있던 남동생도 먼 거리를 날아와 함께했던 여행,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도 어디서든 잘 놀았다. 물론 세 돌이 안 된 둘째가 피곤한지 종종 크고 긴 울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나트랑에서의 추억을 꽤 오랫동안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어쩌다 한 번씩은, 아니면 이런 여행조차 연례행사처럼 리듬을 가지고 간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다녀온 치앙마이 여행기를 글로 남기며, 해외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좋지 않은 것처럼 구구절절 나열한 이유는 그만큼 이번 치앙마이 여행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안정적인 리듬도 지키고 싶지만, 어둡고 긴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드릉드릉하고 있었기에 둘 중 어느 마음이든 욕심이거나 고집은 아닌지 여러 번 점검했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긴 시간을 내고 여행을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엄마 선배들의 말이 자꾸 떠올랐고, 올해부터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게 되어 일을 시작하면 나부터가 긴 휴가를 내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남편의 “그렇게 고민할 거면 그냥 가!”라는 아주 단순한 대답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우리 가족만의 일상 루틴을 이어가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치앙마이에서도 매일 집에서 하고 있던 한글 공부와 그림일기와, 자기 전 책 읽어주기를 이어갔다. 개인적으로는 요가 수련과 운동도 빼먹지 않았다.
첫째는 올해 7살이 되었지만 아직 한글을 모른다. ‘발도르프 육아 철학’에 매력을 느끼는 엄마 때문에 학령기 전까지는 팽팽 놀게 될 예정이다. 이정희 작가의 『발도르프 육아예술』에서는 “부모의 불안증을 달래는 용도로 시작한 소소한 사교육은 어린 자녀에게 공부의 짐을 일찍부터 무겁게 지우는 것으로, 마침내 아이 개인의 특성을 죽이는 사교육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나 또한 상업화된 사교육의 기존 흐름을 따르기보다 내 아이 안에 있는 고유성과 잠재력을 믿고 기다리고 싶었다. 어떤 엄마가 아이가 공부 못하는 아이로 컸으면 하겠냐만은,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는 강박증과 불안감을 내려놓고 영유아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게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 한글을 배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았고 공교육에 보내지 않을 것도 아니었기에 학교 입학 전에만 한글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첫째가 6살 끝무렵부터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이다. 조금 더 천천히 시작하길 바랐지만, 아이의 의지를 외면할 수 없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발도르프 한글 첫걸음』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겨울방학을 맞이한 첫째와 그 책을 가지고 나름 발도르프식으로 한글 공부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그 옆에서 5살밖에 안 된 둘째도 같이 하고 싶어 해서 곤란했지만, 막을 수 없어서 대충 함께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 책과 아이들이 직접 그림 그리고 한글을 써보는 각자의 노트를 여행 가방에 챙겼다.
치앙마이에서는 오후 4~5시쯤이면 일정을 마무리하고 근처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카페 테이블에 둘러앉아 『발도르프 한글 첫걸음』 책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외웠다. 아이들에게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장면들이 특별하게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그림일기와 자기 전 책 읽어주기, 요가 수련과 운동을 이어간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글로 정리해 봐야겠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의 해외여행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나는 결국 다녀왔고, 미루고 싶었던 한글 공부도 시작해 버렸다. 모순적인 엄마의 변명글처럼 되어버렸지만 이렇게나 고민하고 흔들렸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이 조금 더 단단해졌고 더 의미 있어졌다고, 그렇게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