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똥 종이 때문에 치앙마이에 갔다고?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3편

by 최성희

“엄마! 이 책 코끼리 똥 종이로 만든 거래. 근데 똥냄새가 하나도 안 나!”


작년 5월, 우리 집에 코끼리 똥으로 만든 재생종이 그림책 한 권이 생겼다. 직접 구입한 건 아니었고, 아이들이 환경운동연합에서 주최한 가정의 달 5월 어린이 그림 대회 ‘내가 꿈꾸는 지구’에 참여했다가 선물로 받은 그림책이다. 제목은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코끼리 아저씨》. 처음 그 책을 받았을 때,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만큼 나도 신기했다. 동물의 똥으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재료였다.



그해 가을, 첫째가 유치원에서 그림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책을 들고 갈지 함께 고민하다가, 코끼리 똥 그림책으로 결정했다. 친구들 앞에서 내용을 설명해야 하니 여러 번 읽고 연습했다. 마구 구긴 갈색 색종이 3개도 함께 가져갔다. 공처럼 동그랗게 구겨진 색종이가 코끼리 똥이라고 생각하고, 펼치면 종이가 된다는 내용을 6살 아이들 눈앞에 보여주면 더욱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첫째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별 설명 없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만 보여준 것 같았다. 그래도 갈색 색종이를 펼치는 시연은 무사히 해냈다고 했다. 사실 유치원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내가 알 수도 없고, 매번 궁금해해서도 안 될 일이다. 나름 아이의 사회생활이자 사생활이니 그저 아이가 스스로 잘 해내고 있을 거라 믿을 뿐이다. 우리에겐 결과보다 과정들이 더 중요했다. 신기하고 낯설었던 코끼리 똥 종이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하고 소중해지는 과정들 말이다.


아이들과 동네 제로웨이스트샵에 갔다가 코끼리 똥으로 만든 수첩도 발견했다. 가장 작은 미니 수첩을 사줬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렇게 똥 종이와 계속해서 가까워지던 어느 날, 태국 치앙마이에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과 코끼리 똥 종이와의 인연, 이 정도의 서사라면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치앙마이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2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이민 가서 살아도 좋을 곳이라고 말했고, 대학 선배는 천국이라고 표현한 것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딱히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아 지지부진했었는데 코끼리 똥이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거기가 어디야? 가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남편에게 고개를 돌린다. “여보! 우리 치앙마이 가야겠는걸?”


코끼리 배설물을 이용해 재생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엘리펀트 푸푸 페이퍼 파크(Elephant PooPooPaper Park)’는 치앙마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매림(Mae Rim)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방문객은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 알아보니 다행히 바로 다음 날도 예약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엘리펀트 푸푸 페이퍼 파크에 가는 날, 아침을 먹은 식당에서 그랩과 볼트로 택시를 불렀는데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한 택시가 콜을 잡아 왔는데 얼마를 더 주면 투어처럼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겨우 잡은 택시이기도 했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지 않아 승낙했고, 결과적으로는 그 기사님 덕분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2주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많은 택시를 탔지만, 투어처럼 하루치의 교통수단을 해결해 준 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비용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쾌한 가이드와 함께, 중국인 가족들과 한 팀이 되어 코끼리 똥이 어떻게 종이가 되는지 눈으로 보고 설명도 듣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치앙마이로 떠날 수 있도록 도화선이 된 곳이기에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아이들은 투어 말미에 코끼리 똥 종이로 각종 작품을 만드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나도 추억 가득 담은 수첩 하나를 꾸미던 이 시간이 가장 재밌었다.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코끼리 아저씨》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 코끼리 아저씨가 말하는 내용을 첨부한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얻게 된 메시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여러분, 이 작은 책은 여러분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었어요. 미래에 코끼리가 살아남으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우리는 힘이 없어요. 어린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친구들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어요. 여러분이 돕지 않으면 미래는 코끼리 없는 세상이 될 거예요. 미래에도 코끼리와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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