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와 저녁노을

화북포구

by Happy LIm


낮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을 환히 비추던 태양이 뉘엿뉘엿 제주항 너머로 넘어가면,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고 하늘엔 붉은 노을이 번진다.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날아다니던 새들도 하나둘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산 할머니 새와 할아버지 새가 목을 가다듬는다. 이제 저녁 이야기 마당이 열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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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오늘은 제주항을 품고 서 있는 두 봉우리 이야기란다.”

할머니 새가 날개를 접으며 가리킨 곳은 사라봉. 그 아래에는 김만덕기념관 이 자리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정조 임금님 시절에 제주에 큰 흉년이 들었단다. 먹을 것이 없어 많은 백성이 굶주렸지. 그때 김만덕 할머니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쌀을 사서 사람들을 살렸어. 나라님도 쉽지 않은 일을 한 것이지.”

새들이 “와!” 하고 감탄하자 할아버지 새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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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이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단다. 임금님이 할머니를 한양으로 불러 ‘소원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글쎄 금은보화가 아니라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다 하셨대. 그래서 정말로 금강산을 구경하게 되었지. 나라님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한 사람이었으니, 제주 사람들이 그 뜻을 기려 기념관을 세워 지금까지 추모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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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이 더 짙어질 즈음, 이야기보따리는 또 하나 풀린다.

사라봉에서 제주항을 내려다보며 별도봉으로 이어지는 둘레길, 그 길가에는 ‘애기업은 돌’이 있단다.


“옛날에 말이야,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있었단다. 아기를 업은 채로 바다만 바라보며 돌아오기를 기다렸지. 하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 그 슬픔이 얼마나 깊었던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고 전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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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들이 조용해진다. 파도 소리가 대신 이야기를 잇는다.

어느새 태양은 수평선 너머 바다로 서서히 들어가고,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새들도 가만히 날개를 접고, 내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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