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제주시 도남동
장소 : 제주시 도남동
날짜 : 06.22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 한라산 꼭대기에서 설문대 할망이 고요히 일어난다.
그리고 거대한 비단 한 폭을 하늘 아래 천천히 펼쳐 놓는다.
할망의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비단은 오리나무 열매와 복숭아꽃, 진달래잎으로 빚어진 붉은색을 머금고
한올 한올 천연의 실처럼 하늘에 수 놓인다.
곱디고운 붉은 비단이 온 세상에 펼쳐지자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다.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이 창조해 낸 경이로움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른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추고 세상은 고요하고 따뜻한 숨결로 가득 찬다.
이윽고 붉은 비단이 서서히 빛을 거두면, 귤빛 하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금빛과 주황빛이 뒤섞여 마치 설문대 할망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처럼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빛마저 옅어질 때, 한라산의 그림자가 천천히 들판 위로 내려앉는다.
하루를 품은 산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제주의 들과 바다는 그 품 안에서 나지막이 잠에 든다.
붉은 비단은 그렇게 하루를 덮어주고, 새벽이 다시 그것을 걷어 올릴 때까지 세상은 잠시, 설문대 할망의 품 안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