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과 저녁노을

김녕해수욕장 인근 해맞이 해안도로

by Happy LIm

장소 : 김녕해수욕장 인근 제주올레길 제20코스



김녕포구에서 세화해변으로 이어진 올레길 20코스, 해안을 따라 조성된 그 길을 천천히 걷는다.

먼 바다에서부터 파도가 철썩, 철썩— 쉼 없이 해안으로 밀려와 부딪힌다.


어느 구간에서는 모래언덕을 밟는 사각사각한 발소리만이 들리고, 어느 구간에서는 풀밭 사이로 스사삭, 스사각 스쳐 가는 바람 소리만이 길 위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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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말도, 그 어떤 생각도 필요 없는 시간, 그저 걷고, 듣고, 숨 쉬는 순간뿐이다.
발걸음에 리듬을 맡긴 채, 시간의 감각마저 잊고 길 위에 스며든다.

얼마만큼을 걸어왔는지조차 흐릿해질 즈음, 붉고 붉은 노을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먼 바다를 바라본다. 온 세상이 붉다.

머나먼 수평선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바다 위에서 일렁이는 파도마저 하나의 색으로 천천히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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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붉은 세상 속에서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민 현무암과 인근 부두만이 칠흑같이 검은 모습으로 남아 눈에 들어온다. 색은 다르지만 그것들은 결코 외롭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붉은 노을을 더욱 깊고 선명하게 만들어 주며 자연스럽고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붉음과 검음이 어우러진 대자연의 풍경 앞에서 말없이 감탄하고, 조용히 경이로움을 느낀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순간. 그저 가만히 서서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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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걸어온 시간과 이 노을을 마주한 순간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임을 알면서.

긴 올레길 위에서 조금씩 무거워졌던 몸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서 사르르 풀린다.
마치 바람과 파도에 씻기듯 마음까지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멋진 하루가 조용히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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