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저녁노을

제주시 애월읍 다락쉼터

by Happy LIm

장소 : 제주시 애월읍 다락쉼터(제주 올레길 16코스)



애월읍 다락쉼터 바닷가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흔적처럼, 굽은 줄기와 뒤엉킨 가지들이 제주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 가지 사이로 붉은 노을이 스며든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붉은 태양이 가지 하나를 골라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순간,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이 탄생한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장면이다.


소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계절에도,
아무도 찾지 않던 적막한 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바다 역시 매일 같은 자리에서 파도를 보내고, 다시 거두며 하루를 반복한다.


겉으로 보기에 변함없는 풍경.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는 것 같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은 자리에서 숨을 고르며 살아가는 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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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는 매일 다르게 진다. 어제의 노을과 오늘의 노을은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구름의 모양이 다르고, 바람의 결이 다르며, 빛이 머무는 시간 또한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바다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지만, 풍경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 바닷가의 소나무는 말없이 가르쳐 준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니라고.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은 포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을 견뎌낼 뿌리를 이미 깊이 내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태양은 매일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약속이다.
어둠을 지나 다시 떠오르겠다는, 다음 날을 준비하겠다는 조용한 약속.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소나무와 제주 바다는 서두르지 않는다.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속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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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언제나 거창한 변화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하게,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어제와는 조금 다른 빛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조용히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이 반복처럼 느껴진다 해도 괜찮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져도 괜찮다.

제주 바닷가의 소나무처럼, 바다처럼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존재다.


해는 오늘도 진다.
하지만 그 노을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내일의 빛은,
오늘을 살아낸 우리를 향해 다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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