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구
검은 구름에 잠시 가려졌던 태양이 마침내 환한 얼굴을 내민다.
오랜 기다림 끝에 쏟아지는 빛은 바다 위에 천천히 번지며, 더욱 짙고도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 낸다. 붉은빛이 물결마다 스며들어,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주항과 김녕항 등 여러 항구에서 출발한 수십 척의 갈치잡이 배들이 황금빛 바다 위로 하나둘 모여든다. 잔잔한 물결은 숨을 고르듯 일렁이고, 배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든다. 더 밝은 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경쟁 대신 여유로운 미소가 번진다. 오늘도 함께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지난번 자리를 양보했던 철수네가 먼저 닻을 내리도록 모두가 기꺼이 길을 비켜 준다. 그다음은 영희네, 그리고 또 다른 배들. 말없이 오가는 배려 속에서 바다는 더욱 따뜻해진다. 서로를 향한 응원은 파도처럼 번지고, 그 위에 실린 마음들은 조용히 서로를 감싼다.
태양빛이 온 세상을 붉고 포근하게 수놓는다. 그 빛에 이끌리듯 갈치들도 은빛 몸을 반짝이며 모여든다. 하늘과 바다, 사람과 물고기가 한순간 같은 숨결로 이어진 듯하다. 바다는 더 이상 일터만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품처럼 느껴진다.
낚싯줄을 드리우자마자 은빛 갈치가 힘차게 튀어 오른다. 물방울이 햇빛을 머금고 반짝이며 흩어진다. 어부들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바다보다 넓고, 노을보다 따뜻하다. 잘 자란 갈치는 정성스레 보관하고, 아직 작은 갈치는 다시 물결 속으로 돌려보낸다.
“다음에 더 크게 자라 다시 만나자.”
그 한마디에는 바다를 향한 고마움과 내일을 향한 믿음이 담겨 있다.
길동이네 배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구성진 가락이 파도를 타고 번지자, 이웃 배들에서도 하나둘 화답하듯 따라 부른다. 밤바다는 어느새 커다란 무대가 되고, 별빛은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웃음과 노래가 어둠을 밝히며, 서로의 마음을 단단히 이어 준다.
밤새 이어지는 갈치잡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손끝은 거칠어지고 어깨는 무겁지만, 곁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서로를 향한 눈빛이 다시 힘을 불어넣는다. 태양은 저물었어도, 그들이 나눈 온기는 여전히 가슴속에서 빛난다.
어이어차, 어기야차!
어이어차, 어기야차!
낚싯줄을 당길 때마다 펄쩍이는 갈치와 함께, 가슴속에서도 희망이 힘차게 뛰어오른다. 오늘 흘린 땀은 내일의 웃음이 되고, 함께한 시간은 오래도록 추억이 된다.
붉은 해가 깊은 빛을 남긴 채 서서히 사라지고, 바다는 다시 어둠을 품는다. 그러나 그 어둠은 외롭지 않다. 서로의 노랫소리와 따뜻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늘 시간은 흐르지만, 오늘의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과 웃음은 마음 한편에 오래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