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봉
많은 이들이 바쁜 하루를 마치고 저마다의 안식처로 향할 무렵,
제주의 서쪽 바다는 조용히 하루의 마무리를 시작한다.
동쪽 성산일출봉에서 떠올라, 높고 웅장한 한라산을 넘어 제주의 하늘을 천천히 가로질러 온 태양은,
이제 애월의 바다를 지나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간다.
마치 하루 동안 쌓인 수많은 이야기들을 차분히 풀어내듯,
태양은 바다 위에 붉은 비단을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수놓기 시작한다.
그 빛은 잔잔한 파도를 따라 부드럽게 번져와 제주항까지 고요히 스며들고,
이내 바다는 온통 따뜻한 붉은 숨결로 가득 찬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 그 붉은 기운은 바다를 넘어 하늘로 이어져
세상을 더욱 깊고 포근한 색으로 감싸 안는다.
사라봉 언덕에 앉은 사람들은 자연이 빚어내는 이 풍경을 바라보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그 속에 천천히 마음을 담근다.
눈앞의 소나무와 수풀은 자연이 마련한 액자가 되어 이 장면을 더 또렷하게, 더 따뜻하게 비춘다.
온통 붉게 물든 이 풍경은 그 어떤 화려한 장면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