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면 녹산로
밤새도록 요란하게 쏟아지던 소낙비가 잦아든다.
빗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짙은 안개가 살그머니 스며든다.
평소라면 시원하게 트여 있던 시야마저 흐릿하게 가려지고, 익숙했던 풍경은 그리다 만 그림처럼 한구석이 비어있다. 시간은 흐른다. 짙은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그 순간, 마치 커다란 무대의 막이 걷히듯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샛노란 유채꽃과 선분홍빛 벚꽃이 서로를 끌어안듯 어우러진 풍경, 그 사이를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까지...
어느 유명한 화가의 멋진 풍경화가 완성되어 눈앞에 처음으로 펼쳐진 듯 놀람과 감탄이 이어진다.
휴일이면 사람들로 북적이고 차량들로 분주했을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유채꽃과 벚꽃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고요만이 이 공간을 채운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끝이 있을까 싶을 만큼 길은 계속 이어지고, 점점 더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시선을 돌리자, 유채꽃이 가득한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유채밭, 그곳은 온통 노란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발걸음을 늦추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꽃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다. 유채꽃밭 한가운데에 커다란 현무암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바윗덩어리지만 이곳에서는 멋진 풍경에 풍미를 더해주는 귀한 존재가 된다. 화사한 꽃들 사이에서 더 깊은 멋을 더한다.
그 너머에는, 마치 이 모든 풍경을 지켜보는 듯 풍차가 웅장하게 서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천천히 움직이는 날개는, 이곳의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게 만드는 듯하다.
유채꽃과 현무암,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풍차—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것들이 한데 모여,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