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어느 날,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할 강렬한 경험을 했다.
점심을 먹은 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동료(지금은 이미 이전 직장 동료가 되어버린)와 함께 회사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산책이라 해도, 사실 공원이라기보단 도심 속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줄기를 따라 걷는 코스였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상점이 가득한 흔한 도시의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날따라 더운 날씨 속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 건너편 풀숲 사이로 묘하게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통나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급하게 다시 안경을 쓰고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것은 결코 통나무가 아니었다. 말도 안 되지만, 도시 한복판에 저렇게 거대한 무언가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기심은 언제나 두려움을 이기는 법. 나는 동료와 함께 조심스럽게 강 반대편으로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통나무라고 믿었던 것이 선명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굵직한 꼬리, 거대한 몸통,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 우리가 마주한 것은 놀랍도록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그 순간, 마치 영화 속 공룡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공포가 우리를 덮쳤다. 게다가 도마뱀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전력을 다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오늘은 싱가포르에서 뜻밖에 만난 야생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는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자연환경을 세심히 보호하는 탓인지,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놀라울 만큼 다양한 야생 동물과 마주치곤 한다. 마리나 베이 샌즈 앞에서 만난 수달, 포트 캐닝 공원에서 만난 닭 가족,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큰 달팽이 등 많은 동물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들보다 가장 임팩트 있는 동물은 바로 도마뱀이다.
싱가포르에 와서 도마뱀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국에도 도마뱀은 있지만, 이곳 도마뱀은 그 규모 자체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처음 마주친 이 도마뱀은 "물왕도마뱀"이라고 하는 종인데, 싱가포르 강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처음 물왕도마뱀을 만났을 때 느낀 공포와 경악은 마치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본 듯한 충격이었다.
물왕도마뱀은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작은 개체도 내 팔 길이만큼은 되고, 큰 것은 2미터를 넘으며 심지어 내 몸통보다 두꺼워 보이기도 했다. (큰 녀석들은 회사 근처 강가에서 종종 일광욕을 하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매우 위협적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겁이 많아 사람만 보면 도망치기에 바쁘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마뱀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놀라 같이 도망을 치곤 한다. 나 역시 처음 이 녀석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후로, 한동안 물만 보면 도마뱀을 찾아 사진 찍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별생각 없이 지나친다.)
이 외에도 집 근처 공원에서 다양한 도마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작은 녀석들은 나무 기둥에 매달려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긴다. 물왕도마뱀과 비교하면 무척 귀여워 보이지만, 이들조차 길이가 20센티미터는 넘는다. 새끼 손가락만 한 분홍색 도마뱀도 자주 보이고, 심지어 주롱 새공원에서 화려한 외모를 가진 이구아나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왜 새 공원에서 이구아나를 봤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싱가포르의 야생은 예상치 못한 놀라움들로 가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도마뱀을 키우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런 분들이라면 싱가포르에서 도마뱀 찾기 여행도 충분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