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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그리고 믿음

다니엘의 무덤

by 푸른산책

사마르칸트, 그리고 믿음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그곳에서 나는 다니엘의 무덤을 만난 적이 있다.
관이 굉장히 길어서 놀랐었는데, 긴 터널을 닮은 형태였다.
아미르 티무르, 혹은 티무르 왕이라 불리는 이가 다니엘 선지자의 유해를 이곳으로 옮겼다지.


원래는 페르시아의 수사에 있던 무덤. 사마르칸트에 번영을 주리라는 믿음이 왕의 선택을 이끌었다고 한다.

관을 휘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다니엘의 무덤은 무려 18미터나 되는데, 해마다 몇 센티미터씩 자라난다는 믿음이 내려온다.
그래서 관의 길이도 점점 늘어났다는 이야기.


정말 그럴까?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저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제는 전설이 아닌 신앙이 되어, 굳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믿음이란 것엔 늘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신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관계, 친구, 가족, 직장,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는 형태를 바꾼 믿음이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리라.
"사람은 믿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정말 누군가를 믿는 건 쉽지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정이 있어도,
배신은 한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저 믿음이 저버려지는 것일까,
아니면 언제나 그 자리엔 가면이 있었던 것일까.

가면,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동료의 기대에 응하려고,
친구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웃으며,
교회나 다양한 모임에서는 정해진 역할에 맞추어,
그리고 가족들 안에서,
아니, 사실 가족 사이에서도 우리는 때로 가면을 쓸 수 있다.
부모에게 행복한 척 하는 아이,
아이들을 위해 힘든 티 내지 않는 부모.
후자의 경우, 어쩌면 가면이라기보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친구와의 관계,
오랫동안 가까웠다고 믿었던 친구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문득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와의 때가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는 것.
반대로 내가 아니어도
그 시절이 오면 다시 만나는 법.


너와 나의 거리는,
지금은 아닌가보다.
거기까지인가보다.


믿음은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거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를 바꿔 간다.
때로는 신비로운 무덤처럼 길어지고,
때로는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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