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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산책 Oct 29. 2023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아빠의 부재일까, 아빠라는 자리의 부재일까,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던 기억이 있는지, 가족들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언제였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기억을 되짚어보니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기억이 없다.

다만, 중앙공원 근처 공원당이라는 메밀과 돈가스를 파는 집이었는데 그때 온 가족이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난생처음 생아이스크림, 이란 것도 먹어보았었다.

슈퍼에서 파는 막대아이스크림이 아닌 직접 스쿱으로 커다랗게 동그란 모양으로 담긴 예쁜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빠는 포클레인 운전을 하셨기에 출장이 잦으셨고, 그래도 감사했던 건 우리들의 생일이면

케이크를 사서는 오셨던 것 같다. 왜 그때는 케이크가 버터케이크에 딱딱한 설탕가루로 만든 꽃모양의 과자가 있었고, 케이크가 포장지에 싸여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네모난 박스에 포장지를 뜯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어떤 모양의 케이크일지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아빠는 가끔 만나는 사람, 생일이면 만나는 사람, 그냥 아빠, 였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설날연휴, 그때 동생들과 시장놀이며, 패션쇼며 정말 신나게 놀았었다. 딸 셋 아들하나, 첫째였던 나는 온갖 것들을 함께 해보자고 동생들을 설득하여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중1이었지만 여전히 초등학생 같았던 나의 14살,  그때가 정말 행복했던 그리고 소중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 우리 가족은 어린아이가 나오는 방송은 보지 않게 되었다. 자꾸만 막냇동생이 생각이 날 것만 같아서.

나의 14살, 막냇동생의 8살이 되던 해의 마지막 설날은 병원에서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렇게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동생이 없어졌다.

나와 여동생들에게는 그랬지만, 엄마와 아빠에게는 가슴에 묻는 일이었으니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엄마가 되고 보니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어느 날 옷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엄마의 일기장.

눈물로 군데군데가 얼룩이 져 있었다. 막내는 없지만 또 다른 자식들이 셋이나 있었기에, 엄마는 장례식 이후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사고로 아빠는 일을 못하셨고, 대신 엄마가 일을 하게 되셨다. 



가슴뼈가 금이 가서 한동한 일을 못하시게 되면서 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빠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지?

사고 전에 가끔 집에 오시는 아빠는 잠을 많이 주무셨고, 엄마랑 언성이 높아질 때면 밥상을 엎는 아빠였다. 폭력을 쓰진 않으셨으나 가끔 잿털이가 날아갔던 날도 있었고, 그저 화를 내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던 아빠가

어느 순간 집에서 놀고먹는 아빠의 모습으로 전락되는 순간. 

어? 아빠는 이런 사람인가? 엄마를 힘들게만 하는 사람인가? 어? 왜지? 아빤데 왜지?라는 의문이 자꾸만 늘어만 갔다.

음식이 있으면 자식들 먹으라고 남겨주는 것이 부모 아닌가?

그런데 아빠는 본인 드시기에도 바빴다. 쩝쩝 소리와 흔적까지 남기면서. 

어느 순간 아빠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들을 지나,

칠순을 넘어선 아빠는 여전히 엄마를 힘들게 하지만, 

자신이 안고 있던 아들을 먼저 보낸 아빠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죄책감들로, 차마 일어설 힘을 내지 못했던 그 순간들이 어쩌면 지금 그렇게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유한한 시간이 아님을 아닌데,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아빠,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아빠 때문에 동생이 그렇게 된 게 아니야,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들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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