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순수한 눈높이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13.

by 소년의 초상

첫째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순수하다는 것을 느낀다. 동해바다의 옥돌같이 아주 청량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첫째를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첫째는 가끔 고민한 듯한 말을 하곤 한다. 스스로 정제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 또한 순수한 말이다.


최근에는 "아빠 빨리 돌아가면 안 돼. 알았지?"라고 말을 하길래, 말이 조금 이상해서 "아빠가 죽으면 안 된다고?"라고 대답했더니 "죽는다고 말하면 안 돼. 속상해. 그래서 나도 죽는다고 말하지 않았잖아. 취소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순간에는 '왜 그런 걸로 화를 내고 그러지'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 다시 생각해 보니 고민하다가 말을 한 것이 느껴졌다. 아빠가 빨리 죽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걸 표현해 주고 싶은데, 죽는다는 말은 싫으니, 고민 끝에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을 했던 것이다.


요새 교회를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다니면서 공과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수업에서 그러한 표현을 배운 것인지, 동화책에서 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감동이었다.




집에서 반주를 자주 하는 편이다. 요새 외식물가가 너무 비싸니, 밖에서 술을 마시면 돈과 시간이 모두 아까워서 집에서 마신다. 소주는 몸에 안 좋으니 그나마 나은 막걸리를 마시는 편인데, 술이 당기는 날이면 아이들을 하원하면서 마트에 들러 막걸리를 산다.


하원하면서 "오늘은 마트 가자!"라고 말을 하면 첫째는 이제 눈치를 챈다.


"아빠 오늘 밤에 일 안 가네?! 좋다. 좋아."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밤에 출근하는 날이 잦아, 첫째가 많이 속상해하는 편인데 아빠가 막걸리를 사는 날이면 밤에도 집에 있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기특하다. 첫째는 마트에 가는 내내 재밌는 스텝을 밟으며 총총총 뛰어가고, 둘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초코 살 생각에 언니를 종종종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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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이자 상처가 많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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