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14.
어디서 보니까 5-7세 때 자식과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그 순간의 기억이 아이를 평생 지탱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강력한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빠들은 젊은 나이이고 회사에서 직책이 낮기에 평소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어려운 시기다. 그래서 주말에 올인하는 아빠들도 있지만 그마저도 피곤하다며, 전날에 술을 마셔서, 나도 스트레스 풀어야 하니 게임해야 되니까 등 핑계로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다.
조잘.
조잘.
우리 딸들은 항상 조잘 조잘한다. 조잘대는 아이들은 아이큐가 높다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 같은데, 똑똑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아빠 옆에 딱 달라붙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면 아가들 냄새가 나서 행복하다.
아이들의 사춘기는 금방 온다.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다. 그 시기에 아빠가 뭐라도 해보겠다고 자식한테 다가가면 자식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아니, 갑자기 웬 친한 척? 평소에 뭐 하다가? 어이가 없네.'
"아빠 뭐야. 나 바빠. 문 닫고 나가. 저리 가."
아빠는 머쓱하겠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 옆에 없다가 본인이 좀 편해지니까 자식 곁을 맴도는 것인데, 이건 일방통행이다. 상호 교행이 될 수가 없다.
나 스스로도 문만 닫아주는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요리를 해서 맛있는 것을 먹여주려고 노력하고,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면서 지루한 시간을 가지려고도 한다.
첫째는 멀미 때문에 차를 타고 놀러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러도, 어떻게 해서든 차에 태워서 벚꽃구경도 시켜준다.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설탕 잔뜩 묻힌 핫도그도 사준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한다.
'이 정도면 기억에 나는 주말이었을까?!'
나는 딸들의 기억 속에 한 자리하고 싶다. 이것저것 기억 중에서 아이들의 마음에 각인이 되는 기억이 생겼으면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이 아이를 지탱해 주길 바란다. 나는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아이들 곁을 맴돈다.
최근 유력한 사건을 접했다. 첫째를 지탱해 줄 만한 기억.
요즘 시, 군 등에서는 노는 땅들을 개발해서 친환경 놀이터로 만들고 있다. 가족단위가 체류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료로 놀러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겨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주말마다 골라서 가도 될 정도이니 지자체 담당 공무원분들 칭찬해~!
아무튼, 신상 놀이터에 도착했더니 이미 동네방네 소문이 났는지 주차할 곳도 없었다. 아이들 까르르 소리가 온 천지가 진동을 했다.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김밥을 먹고 있는 가족들, 뽑기하고 싶다며 울며 떼쓰는 꼬마, 구석에서 자고 있는 아빠 등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아내는 둘째를 마크하고 첫째와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는 중이었다. 그러다 첫째는 적응이 됐는지 혼자서 놀이터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만 시선은 분주하게 아이를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잠깐 놓치고 말았다.
'아 뿔사!'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이 많은 꼬마들 사이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자리를 뜨기도 애매했다. 아내도 보이지 않는 데다 첫째가 아빠 있는 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기에 불안한 시선으로만 아이를 찾았다. 한참을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바로 뒤에서 "아빠" 소리가 들렸다. 딸이었다.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난 아빠 계속 보였는데. 나는 작지만. 아빠는 크잖아."
맞다. 애들은 고만고만했지만, 난 180cm가 넘는 백곰이었다. 나는 잘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불안함을 느끼고 첫째가 노는 곳을 놓치지 않고 곧장 따라다녔다.
그러다 첫째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끄럼틀을 쉽게 타서 자만했는지 착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대로 흙에 엉덩이를 찧어버렸다. 미끄럼틀 바로 아래 흙은 아이들이 발로 밟아서 잘 다져진 단단한 흙이어서 꽤 아팠을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첫째는 엉덩방아를 찧자마자 고개를 두리번 하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울면서 내게 뛰어와서 안겼다.
"아빠 엉덩이가 너무 아파. 피나는 것 같아."
"괜찮아 그냥 부었을 거야. 피 안나."
"아빠 나 안겨있을래"
"그래, 다시 놀고 싶을 때 내려줄게"
첫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느꼈다.
'이 기억이 너를 지탱해 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참 소중하다. 사춘기가 오면 아빠를 떠나겠지만 지금은 옆에서 골골송을 부르며 자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손은 오동통하니, 자고 있을 때 한없이 내 손과 포개어 본다. 따뜻함이 전해져 와 내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첫째는 내년이면 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래서 올해는 시간이 별로 없고 정말 중요한 시기다. 학원을 보낼 시간에 아빠와 흙파먹기를 더 해야겠다. 첫째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더 많이 해줘야겠다.
우리 아이가 지탱할 수 있는 순간을 더 찾아줘야겠다. 사랑하는 만큼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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