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부끄러웠던 엄마

가정폭력 생존기 14.

by 소년의 초상

엄마가 부끄러웠던 기억이 몇 조각 있다.


아니,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내가 더욱 부끄러웠던 기억들이다.




엄마는 내가 유년기 때 굉장히 피곤한 삶을 살았다. 24시 해장국집 야간서빙 일을 했음에도 낮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아빠 때문도 있지만, 누나와 나를 돌보려면 잠도 반납해야 했다.


특히, 학교나 유치원 행사가 있으면 엄마가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잠은 호사였다.


유치원 때 일이다.


나는 유치원 때 대장이었다. 덩치는 제일 크지 않았지만 성질은 제일 더러웠다. 뭐든지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등원버스 안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있어도, 항상 제일 먼저 하차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곧 열리는 웅변대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무조건 1등을 해야 했다. 연습도 엄청했다.


웅변대회 당일이 됐다. 1994년도에는 학생들이 어마어마했다. 웅변대회에도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는 먼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출발하고, 부모님들은 나중에 현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비몽사몽 한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짠했다. 하늘색 빈팔 카라티를 입고 왔던 것 같다.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온 느낌이었다.


같이 웅성거리며 놀던 친구들의 부모님들도 하나, 둘 도착했다.


다른 부모님들 모두가 차려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머리에 뽕을 하나씩 얹고, 어깨에는 대포알 같은 걸 넣었는지 어깨가 엄청 넓은 재킷도 입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가 부끄러웠다. 몸에 힘도 없이 축 쳐져 있는 모습이 더욱 부끄러웠다.


이유를 알면서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엄마를 두고 친구들 손을 잡고 일부러 뱅뱅 돌아다녔다. 엄마가 날 못 찾게끔.


나는 그날 웅변대회에서 입상을 했다. 당연하다. 웅변대회장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무대 체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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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이자 상처가 많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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