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3.
바닥에 굵게 떨어져 있던 선홍빛의 혈흔.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마주한 그 진한 핏자국. 그 다급한 순간에도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지 못하고 아빠를 제압해야만 했던 불쌍한 엄마.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아빠는 세탁소를 접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본인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방랑자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은 영업택시기사.
영업택시기사를 세 달 정도 했을까. 그것도 적성에 맞지 않는지 그대로 접고 말았다. 생업은 엄마의 몫. 엄마는 새벽 해장국집 일을 그만두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는 식당 서빙일로 전직하였다.
한 달에 이틀만 쉬는 게 허락된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취해있는 아빠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새벽 내 잠을 자지 않고 술만 마시고 시비를 거는 아빠를 달래느라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식당 일을 하러 다녔다.
엄마는 이 짓을 30년 넘게 했다. 아빠가 죽을 때까지. 이것 때문에 엄마는 부정맥을 얻었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아빠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탁소와 문간방을 뺀 전세보증금으로 술만 마시며 지내고 있었다.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또 일어나서 날 새도록 술 마시고. 밖에서 먹을 일이 없으면 집에서도 술을 사다 날 새도록 마셨다. 내일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날밤도 엄마는 아빠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누나와 나는 작은방에 누워 있으면서도 안방을 향해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늦어져 둘 다 잠에 들고 말았다. 그런데 안방에서 쿠당탕. "이 나쁜 새끼야!!!" 엄마의 악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와 난 당장 일어나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안방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빠의 두 팔을 제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선홍빛의 혈흔이었다.
선홍빛의 혈흔... 정말 붉은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닌 그 사이의 애매한 혈흔 색깔. 떨어진 혈흔의 두께는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피가 어디서 나는 것일까. 그 짧은 1초 안에 모든 상황을 살펴본다. 엄마의 정수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 피는 엄마의 이마를 거쳐 광대뼈로, 광대뼈에서 순간 피가 낙하하여 장판 바닥으로 뚝뚝 떨어 지고 있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엄마 머리에 소주병을 던졌던 것이다. 엄마는 졸고 있다가 불현듯이 맞았을 텐데. 얼마나 아팠을꼬.
얼른 수건을 가지고 와서 엄마 머리에 올려준다. "엄마, 피 닦아 피!!!"
엄마는 한 손은 아빠의 왼팔을 잡고, 한 손은 수건으로 머리의 피를 지혈했다. 누나는 아빠의 오른팔을 두 손으로 붙잡고 매달렸다. 나는 아빠의 두 다리를 나의 팔과 다리로 꽁꽁 묶었다.
아빠는 충분히 우리를 다 때리고 뿌리칠 수 있었지만,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저 당해주었다. 간간이 힘을 빡 주었다가 빼는 장난도 치면서.
"흐흐흐흐"
소름 끼쳤다.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정말 실성한 것일까.
엄마는 일반전화로 얼른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난리가 났으니 빨리 와달라고.
고모는 멀리 살았지만 정말 일찍 도착해 주었다. 그동안 우린 아빠를 꽁꽁 싸매고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 아니, 제압했다고 믿고 있었다.
고모는 별일 아닌 듯, 아빠를 타일렀다. 역시 남매지간답다. 고모와 함께 우리 셋은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지금과는 달리 응급실에서는 왜 다쳤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가정폭력인지 뭔지... 관심도 없다. 그저 조용히 머리만 꿰맬 뿐이었다.
엄마의 정수리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땜빵이 생겼다. 머리를 꿰매기 위해 머리를 밀었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고모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냥 잠을 잤다. 엄마는 다음날 아침에도 식당으로 일을 하러 갔고, 나와 누나는 학교로 등교를 했다. 우리에겐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이 큰일이 있고도 아빠는 계속 술을 마셨다. 머리에 땜빵이 나 있는 아내를 보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엄마의 정수리에 잔털이 나기 시작해도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셋의 겨울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