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2.
초등학교 1학년 때, 날이 너무 추워서 손이 찢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정말 손이 찢어진다'라는 표현 말고는 정확한 묘사가 없다.
엄마는 24시 해장국집에서 야간 서빙일을 했다. 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쭉 해왔다. 낮에는 누나와 나를 돌봐야 하니까 선택한 일이었다. 아니, 진짜는 아빠가 강제로 떠밀어서 그 일을 택했다.
그렇게 일을 한 지 4년은 됐을 것이다. 엄마는 퇴근한 아침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성질 더러운 아빠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우리 집은 세탁소의 문간방이었다.
아빠의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오히려 아빠가 낮잠을 자기 위해 엄마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게 손님들을 봐야 했다.
오후에는 나와 누나가 하교를 했고, 곧바로 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되니 엄마는 정말 고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문간방 구석에 이불을 하나만 깔아놓고 누워서 잠을 청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엄마를 깨우기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새우처럼 자고 있으면 그 품에 파고 들어서 조용히 누워있곤 했다.
그 따뜻했던 느낌과 엄마의 숨결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생각난다.
엄마는 그날도 아침에 퇴근하여 간신히 잠을 자려고 했고, 아빠는 며칠 째 술을 마셔서 여전히 취해있었다. 엄마는 비몽사몽 했다. 잠이 너무 와서 한 쪽 켠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나는 술에 취해 가게를 보지 않는 아빠를 대신해 미싱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오후, 아빠가 문간방으로 들어갔다. 찰싹 소리가 강하게 났다. 내 온 몸에 퍼지는 그 소름. 그 무서움. 굳이 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예상할 수 있었다.
누나도 없지만 용기를 내어 나 혼자 문간방 커텐을 젖혔다. 엄마는 비몽사몽해서 이불을 절반쯤 덮은 채 앉아 있었고, 아빠는 그 옆에 앉아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엄마를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엄마가 입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한 마디 내뱉었다.
"흐... 앞니가 좀 깨졌네."
상처와는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차분함은 내가 아는 차분함이 아니다. 여기서 호들갑을 떨거나 큰 소리를 내면 더 큰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엄마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정을 숨긴 것이다.
뺨을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앞니 맨 아랫부분 조각이 조금 뜯어졌을까.
세월이 지나도 난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고, 이따금 나이가 들어 씹는 것이 불편한 엄마를 보면 그 앞니를 살펴보곤 했다. 제때 치료도 하지 않아서 그 살짝 뜯어진 부분은 여전히 보였다. 내 눈엔 정말 잘 보였다.
그렇게 낮잠도 자지 못한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빠도 엄마를 찾았다. 화장실에도 가보고, 뒷 동네에도 가봤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도망가 버린걸까?' 너무 무서웠다. 그러다 장농이 살짝 열리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였다. 엄마는 도저히 잠을 못이기고 장농에 숨었다. "엄마 여깄으니까 걱정마. 밖에 나가서 애들이랑 놀다 와. 집에 있지마." 엄마는 장농 이불 위에 몸을 포개어 누워서 옅은 잠을 자고 있었다.
밤이 됐다. 엄마의 체력이 조금은 회복이 됐다. 아빠는 저녁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문간방 한 칸이 전부라 누나와 내가 도망갈 곳도 없었다. 한 쪽 귀퉁이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누나와 난 숨죽이고 있었다. 자는 척 하면서.
엄마는 아빠의 술 시중을 들며 옆에 계속 앉아 있었다. 아빠는 그냥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된 술버릇. 술만 먹으면 엄마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거는 못된 행동. 심지어 소주병도 아무데나 던지는 사악함.
결국 사달이 났다. 낮에도 엄마 뺨을 때려서 이빨이 깨지게 하더니 또 뺨을 때린다. 엄마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우리에게 귓속말을 남기고 나서 아빠에게는 화장실을 간다며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문간방이라서 화장실은 외부에 있었다.
엄마는 귓속말로,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누나는 외투를 챙겼지만 나는 겁이 나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잠옷 채로 그냥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 날씨에 당황했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나를 업고 그대로 택시를 탔다. 작은 친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돌아가신 친할머니 남동생의 집.
예전엔 근처에 살았지만 세탁소를 이전하면서 택시를 타야만 하는 거리로 멀어졌다. 가까이 살았을 때는 걸어서도 닿을 거리여서 아빠의 폭력을 피해 자주 숨어 있던 곳이었다.
아무리 택시를 타고 갔어도 날이 너무 추웠을까. 어린아이가 잠옷만 입은 상태로 감당하기엔 추운 날씨였다. 손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엄마는 충분히 힘든 상태니까.
작은 친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가장 따뜻한 구들장 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셨다. 그 따뜻한 온기. 지금은 재개발이 된 오래된 집의 고소한 분위기. 잊혀지지 않는다.
손이 녹아들자 찢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세월이 30년도 더 흘렀지만 그 아팠던 느낌은 여전히 생채기처럼 내게 남아있다.
다음날이 됐다. 집에 가야 하는데, 택시비가 없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난 잠옷만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어린나이에도 창피함이 밀려와 자는 척 하며 엄마의 등에 업혀 버스를 탔다. 출근길이라 만원버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기억은 끊겼다. 그 날 아침, 집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궁금하지 않다. 뻔한 기억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