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도 고장 난 차디찬 바닥.

가정폭력 생존기 4.

by 소년의 초상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 무렵에는 특히나 아빠의 주사가 심했던 것 같다. 폭력도 심했고.


운영하던 세탁소도 접었고, 영업용 택시기사도 안 하다 보니 출근할 곳이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본인은 내세울 게 없으면서 집 안에서만 시끄럽게 굴던 '방구석 여포' 같던 사람이었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처음 살아본 주택은 너무 추웠다. 세탁소의 문간방이 좁았지만 오히려 더욱 따뜻했던 것 같다.


주택에 살던 두 번째 겨울이 돌아왔다. 그 해도 너무 추웠다. 엄마는 여전히 식당 일을 열심히 했고, 아빠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열심히 술만 마셨다. 그리고 엄마만 괴롭혔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엄마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새벽녘에 마의 시간이 와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와 나, 누나는 밖으로 도망쳤다. 추운 겨울이었다.


갈 곳이 없어 일단 고모집으로 향했다. 고모는 도심보다는 살짝 떨어진 곳에 살았다.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추운 날, 몸은 녹여야 하니 고모집까지 간 것이다.


고모는 동네 '점방'을 운영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제대로 된 시스템도 없던 시절, 그냥 견출지로 가격을 붙여놓고 물품마다 500원씩 얹어서 팔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살만했다. 요즘처럼 쿠팡이나 컬리가 있었다면 먹고살지 못했을 장사다.


여하튼, 고모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고모가 나왔고, 고모는 안방을 내주고는 작은 누나 방으로 가서 잤다. 안방은 바닥은 춥고 침대 하나에 전기장판만 있는 오래된 집구조였다. 엄마와 나, 누나 셋은 킹사이즈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가로로 자기에도 애매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와 누나가 세로로 잠을 자라고 했다. 엄마는 우리 발 밑에서 가로로 새우잠을 잤다. 엄마는 제대로 잠이나 잤을까. 엄마가 불편할까 봐 누나와 나는 다리를 오므리고 잤다. 어떻게든 서로를 아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 날, 토요일이라 누나와 나는 학교를 가지 않았고 엄마만 버스로 그 먼 거리를 출근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가는 길이 얼마나 속상하고 서글펐을까. 30대 중반의 여성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삶의 무게였을 것이다.


엄마는 출근하면서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빠가 분명히 고모집에 올 테니 안방에서 나오지 말고 있으라고.


나와 누나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저녁 무렵까지 안방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화장실도 참았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으려고 거실에 나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딱 그 순간에 아빠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밥을 계속 먹었다. '엄마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도 쉽지 않았다.


아빠가 집으로 가자며 나와 누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빠는 술에 절어서 제대로 씻지도 않아 냄새가 났고, 특히나 술 냄새나는 날숨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끌고 갔다.


동네 어귀, 택시에서 내렸다. 언덕길을 한참 걸으며 집으로 가는데 누나가 갑자기 반대로 달려 내려가버렸다. 나를 놔두고 뛰어가버렸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나는 그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며 뒤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 눈은 동생이 따라오길 바라는 눈빛이었을까.


나는 영특했고 눈치가 빨랐다. 아빠 옆에 쏙 붙어서 말했다. "누나가 가버렸네. 집에 가야겠다." 아빠는 이 말에 누나를 쫓아가지 않고 나만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난 이기적인 새끼였다.




아빠와 나만 집에 있었다. 의외로 무섭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빠가 우리를 욕하거나 때리진 않았다. 그 와중에 난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제발 집으로 오지 않기를. 엄마가 오면 술 취한 아빠만 있는 상태에서 내가 엄마를 지켜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일이 끝나고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신 듯하다. 아마도 고모가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 전화를 했겠지. 아빠가 나와 누나를 잡아갔다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연하게 하고자 엄마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딸이 없다.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엄마는 무너졌다. 홍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엉엉 울며 누나를 찾았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어떻게 달래줄 수도 없었다. 나는 배신자였으니까. 누나를 배신한 동생.


그런데 집이 점점 추워진다. 또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이다. 그 무렵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났다. 우리는 월세를 살았기 때문에 집주인이 고쳐줘야 하는데, 맨날 술 먹고 시끄럽게 하는 우리 집이 미워서 고쳐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집주인한테는 아빠가 소리치지 않았다. 집에서만 소리쳤다. 방구석 여포 같으니.


울고 있는 엄마를 누나와 내방으로 데려왔다. 제발 울지 말라고 하면서. 누나는 아마도 선희 누나집에 갔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점점 추워지는 냉기 때문에 엄마에게 이불을 두 겹, 세 겹 덮어줬다. 그래도 엄마는 누워서 하염없이 울었다.


아빠는 웬일로 작은방으로 오지 않고, 괴롭히지도 않았다. 나는 문쪽에 누워서 엄마를 온전히 지켜냈다.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보일러도 고장 난 그 차디찬 바닥에서.


다음날에 누나가 언제 집에 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누나는 집 근처에 사는 선희 누나집에 있었을 것이다. 선희 누나도 잘은 모르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20대 초반에 시집을 가버릴 정도로 집을 싫어했던 것으로만 기억한다.


유유상종이라던가. 불쌍한 소녀들끼리 친구가 됐고, 서로 지켜줬을 것이다. 누나의 결혼식에도 선희 누나가 왔었다.


그러나 서로 불쌍했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나와는 서먹한 사이였다. 그래도 힘든 시절의 누나를 보듬어줘서 지금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누구나 기억하기 싫은 상처가 있다. 애써 잊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진해지는 못된 기억. 난 여전히 그 기억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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