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5.
1998년도, 아빠가 간신히 움직이는 중고 1톤 트럭을 사서 고물장수를 할 때이다. 아빠는 세탁소도 하기 싫고, 영업택시기사도 하기 싫어서 술만 먹고살았다. 그러다 1톤 트럭을 중고로 구매해서 고물장수를 시작했다. 아빠에겐 철떡 인 직업이었다.
일은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고, 시골로 바람 쐬러 다녀도 되니까.
그렇게 비누와 퐁퐁을 한 박스씩 사서 트럭 뒷좌석에 실어 놓고 시골로 고물장수를 다녔다. 확성기도 사서 본인 목소리를 녹음해 시골 온 동네에 틀어 놓고 다녔다.
'고물 삽니다~ 고물~. 고물. 고철. 비철. 심주. 일체. 삽니다~.'
아빠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안 쓰는 냄비, 농기계, 콤바인 부속품 등을 수거했다. 어르신들의 고물은 돈 대신 비누와 퐁퐁으로도 교환이 가능했기에 아주 좋은 고객이었다.
처음에는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한 번 술을 입에 대면 또 일주일은 날아가 버리는 세월을 살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 마시고, 힘들면 그만 먹고, 그런 식이었다. 남들은 주량을 술 병으로 말하지만 아빠는 며칠 먹었나로 주량을 쳤다. 정말 쓸데없는 인생이었다.
방범순찰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아빠는 고물장수를 시작했지만 한 달 남짓 열심히 일하고 바로 술을 입에 댔다. 일주일 정도 마셨을까. 일주일 내내 시달렸다. 똑같은 레퍼토리다.
아빠 혼자 내내 술 마시고, 엄마 앉혀놓고 괴롭히고, 누나와 나는 잠도 자지 못하고 아빠가 엄마를 때릴까 봐 귀는 쫑긋해서 있던 시간들.
그러다 새벽 늦은 시간이 되면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고 엄마와 나, 누나 셋은 밖으로 도망. 그리고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하룻밤을 보내는 루틴.
정말 지겨웠다. 엄마도 지겹고 힘들었을까.
어느 날은 아빠가 엄마를 앉혀놓고 했던 소리를 또 하고, 했던 소리를 또 하니, 결국 폭발해 버렸다.
"제발 그만 좀 하쇼. 어째 그렇게 일주일 동안 사람을 달달 볶는 거요. 제발 그만하쇼."
"뭐라고? 이 호로년이."
아빠는 엄마에게 욕바가지와 함께 뺨 싸대기로 대답했다. 누나와 나는 비상이었다. 뺨 싸대기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나와 난 곧바로 안방으로 뛰어왔고,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온 가족이 새벽에 안방에 앉아서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마주했다.
아빠는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잡으며 방구석 대장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 무거운 공기도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력감만 느꼈다.
아빠는 이때다 싶었나 보다. 누나와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다. 얼마나 머리채를 세게 잡았는지 엄마는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누나와 난 아빠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그 아귀의 힘은 너무 세서 도저히 떼어낼 수조차 없었다. 그 손은 오로지 아빠의 의지로만 떼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가 너무 아파했다. 고개도 들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그대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때 우리 집 앞에는 공공 놀이터가 있었다. 마침 그곳엔 방범순찰대 의경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다섯 명 됐을까? 그 당시 어린 내 시선에는 경찰로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은 방범순찰대였을 것이다.
의경 다섯 명이 곧장 우리 집으로 뛰어 왔다.
"무슨 일이냐!"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제발 도와주세요!"
의경들은 곧장 우리 집 거실 쪽으로 갔다. 아빠는 의경들을 보고도 쥐어잡은 머리채를 풀어주지 않았다. 의경들이 계속해서 설득할수록 아빠는 의기양양 대면서 가정일이니 꺼지라며 거칠게 대응했다.
엄마는 계속 소리쳤다. "제발 살려주세요."
결국 의경들이 아빠의 손을 강하게 잡고 떼어냈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한 움큼 빠졌다. 그제야 엄마는 고개를 들었고, 얼른 옷을 챙겼다. 의경들이 아빠를 막고 있는 사이 엄마와 나, 누나는 의경들 뒤로 숨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욕을 했다.
"이 나쁜 새끼야. 정말 나쁜 새끼야. 잘 살아라!!!" 하며 얼른 고개를 돌려, 누나와 내 손을 잡고 도망쳤다.
우리 셋은 집 근처 수지이모네 세탁소로 향했다. 그런데, 문을 두드려도 수지이모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늘은 술을 드신 걸까, 전혀 듣지 못하셨다. 갈 곳이 없어 우리 셋은 세탁소 입구 옆 계단 쪽으로 갔다.
지하실은 잠겨 있었고, 통로에만 쪼그리고 앉았다. 갈 곳이 없었다. 우리 셋은 그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지하실 통로와 세탁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결국 수지 이모가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수지 이모네에서 또 신세를 졌다.
엄마는 다음날 일을 가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의 일터를 알고 있었고, 어젯밤 사건으로 인해 복수하러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일단 누나와 나만 등교했다. 그런데 하교 후 엄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정하진 못했지만 일단 학교는 빨리 가야 했다.
학교에 있는 내내 멍해 있었다. 즐거운 것도 없었다. 나에게 초등학교 4학년은 뚜렷이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그저 회색빛이었던 것 같다. 힘들어도 내색하지도 못하고 웃기지도, 재밌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삶이었다.
학교가 끝났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얼마나 짧게 느껴지던지. 최대한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결국 굳게 닫힌 철문에 다 달았을 때 엄마는 어딨 을까, 걱정이 되었다.
'수지 이모네에 계속 있는 것일까? 일단 집에 가보고 엄마의 흔적이 없으면 수지 이모네에 가보자. 그리고 고모집에도 전화를 해봐야겠다.'
열쇠로 철문을 '철컹' 하고 열며 마당으로 들어갈 찰나, 1층 주인댁 외부 지하실 통로에서 사람 얼굴이 쏙 나왔다. 엄마였다. 그때의 그 불안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여름이었다. 한참 더울 때였고 장마가 지나간 후라 외부 지하실에는 물이 좀 고여있었다. 모기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런데 거기에서 얼마동안이나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왜 거기 있었던 거야.
이상하게 그 장면 이후로 엄마와 내가 집으로 그대로 들어갔는지 수지 이모네로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충격적인 장면만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나머지는 지워진 채로.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나 누나, 이 셋은 텔레파시가 통했으면 했다. 전화도 없고 삐삐도 없으니 우리 셋이 힘들 때 대화할 길은 텔레파시가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98년도의 내 소망은 텔레파시를 갖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