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도 필요한 감정이구나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5.

by 소년의 초상

넌 내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드라마 질투가 나왔을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는데 왜 흥얼거리게 되는지... 90년대 감성은 역시 세월을 초월하는 듯하다. 질투하면 생각나는 드라마 질투.


나는 어린아이에게서 질투라는 감정이 튀어나왔을 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을 보았다.




첫째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반대로 둘째는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는 전형적인 한국인 스타일이다. 불도저에 가깝다. 그래서 첫째는 항상 둘째의 등쌀에 밀린다.


그런 첫째가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너무 착해서 못된 남자를 만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첫째는 정말 혼자 큰 것처럼 말 잘 듣고, 밥 먹으라고 하면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말도 예쁘게 하고, 뭐든 척척 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 이 조심스러운 성격을 타파해 주기 위해서 고민이 많았다. 태권도라도 보내볼까 싶어서 물어보면 대뜸 싫다고 한다. 대답도 안 해준다.


결국 며칠 뒤에 본인 스스로 대답을 해주는데, 이유는 별게 없다. 본인은 태권도를 잘 못하기 때문에 다리 찢기가 어려워서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모르니까 배우러 가는 거라고 해도 싫다고 한다. 이것도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의 한 부분 같다.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운 적이 있다.


우리 첫째는 이마가 너무 예뻐서 동양스러운 미가 있다. 그래서 올빽머리를 하면 잘 어울리고, 몸도 늘씬하고 다리도 쭉쭉이라 발레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런데 몇 번 다니고 나니 또 싫다고 투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냥 싫단다. 선생님이 싫으냐고 물어보니 싫다고 하고, 재미가 없냐고 물어보니 재미가 없다고 한다. 오로지 쿠키 만들기만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 본인의 성향이 있는 것이니까. 정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색종이 접기 좋아하고, 티니핑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은 한편에 걱정이 앞선다. '아, 벌써부터 이렇게 본인의 한계를 정하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도전을 안 할까.'


사실 큰 문제는 아닌데,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쓸데없이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내가 기독교 모태신앙이다 보니 얼렁뚱땅 우리 가족 모두 매주 일요일 교회를 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유아부 예배를 드리면서 공과공부도 하고 하나님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있다.


나 스스로의 믿음은 그렇게 큰 것처럼 느끼진 않지만, 딸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어린 딸들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제법 마음이 놓인다.


교회 생활을 하면 무대에 설 기회도 많다.


예배 전에 율동도 하고, 기도도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무대에 서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공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어릴 때 이런 기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항상 첫째와 둘째가 출연할 수 있도록 독려를 했다.


그런데 첫째는 머리가 크면서 무대출연 거부를 선언했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었다.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 난 무대에 서지 않을 거야." 라며 선언을 해버렸다.


난감했지만, 한 달안에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교회를 갔다 올 때마다 매주 거부의사를 재차 표명했다. 이렇게 강하게 말을 하니 정말 무대에 서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라도 무대에 서보면 조심스러운 성격이 조금은 개선이 될 것 같았는데, 어린아이가 강하게 나오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무대연습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됐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행사가 열렸다. 어린아이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모두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무대를 준비했다.


리허설을 시작했다.


첫째를 살살 달래서 리허설이라도 참석해 보자며 무대에 올려 보냈다. 그런데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첫째가 의욕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고, 율동을 선보였다.


으엥?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갑자기.


첫째의 눈빛을 보니, 옆에 서 있는 한 살 동생 여자애에게 꽂혀있었다. 그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좀 나대는(?) 성격으로, 무대 체질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도 가운데로 대차게 나와서 다리를 쭉쭉 찢으며 주인공 행세를 했다.


첫째는 질투를 느꼈던 것 같다.


어른들이 가운데서 다리를 쭉쭉 찢는 그 동생을 보며 호응하며 박수를 치자, 본인도 모르게 질투라는 감정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의욕적으로 공연에 참가 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 나는 놀라웠다.


연습을 안 했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잘하는 건지. 어깨너머로 배웠다기에는 너무 세련되게 잘했다. 역시 내 딸이다.


본 무대 시간이 왔다.


아이들은 맨 뒷줄에 앉아 있었고, 나는 남전도회 회원으로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옆으로 왔다.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아빠, 언니들 공연하는 거 앞에서 보고 싶어."


그렇다. 우리 딸은 이제 질투로 촉발된 의욕이 활활 타올라서 언니들이 하는 율동을 보면서 나중에 있을 본인 율동에 참고하려고 한 것이다.


'벤치마킹까지 해가면서 율동 애드리브를 하려고 하는 우리 딸, 너무 멋져.'


그렇게 본 무대 시간이 됐을 때 그 동생은 마이크를 휘어잡고 가운데로 밀면서 들어왔다. 첫째는 절대 밀리지 않기 위해 긴 다리로 그 동생의 진입을 차단하고 열심히 율동을 해댔다. 장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눈물이 날뻔했다.


연신 외쳤다. "잘한다 우리 딸!! 여윽시 잘한다!!"


질투라는 감정, 나쁜 감정이 아닌 것 같다. 어린아이에겐 아주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는 감정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우리 딸들을 위해 이 감정을 적절히 활용해 보려 한다.


넌 내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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