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4.
첫째는 두 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 A가 있다.
막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단짝인데, 하원 후에도 서로의 집으로 가서 놀기도 하고 쉬는 날 날짜를 맞춰서 키즈카페도 함께 다니는 그런 친구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또 한 친구가 존재했다. B와 관련된 이야기다.
첫째와 A는 말을 잘 못할 때부터 친했다. 그냥 눈빛으로 통하는 그런 친구가 있는데 딱 그러했다.
A의 아빠와 엄마도 우리 부부 나이대와 비슷하고 성격도 좋아서 크게 거부감이 없이 지냈다. 부모님들도 서글서글 잘 지내니 아이들의 마음은 더 편해서 자기들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첫째와 A는 1월 생이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키도 약간 크고, 말도 빨랐다. 그런데 B는 12월생이었다. 셋이 같이 다니면 B는 동생으로 보였다.
하원을 할 때면 첫째와 A는 항상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다. B도 하원을 하면 놀이터에서 노는데, 첫째와 A는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B가 불쌍해서 첫째에게 함께 놀아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첫째가 적극 나서서 B를 돌봐주고 A와 함께 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첫째가 열심히 친구가 되어주었다.
첫째가 두 살 때부터 그랬으니 어린이집을 다니는 내내 B를 챙겼던 것 같다. B의 아빠는 바빠서 거의 B의 엄마가 등, 하원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놀도록 내버려 두곤 했다.
아이들이 5살이 됐을 때 어린이집을 계속 다닐지, 유치원으로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우리 집은 첫째와 둘째가 3살 차이라서 첫째가 5살까지만 어린이집을 더 다니도록 선택을 했다.
A는 동생이 없었고, 학업에 대한 욕심이 있던 터라 곧바로 동네에서 공부 열심히 시키기로 소문난 유치원으로 떠나 버렸다. 첫째는 엄청 상심이 컸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 인근에 함께 살기 때문에 하원할 때는 종종 만나서 여전히 함께 놀곤 했다.
B는 12월생이었고, 연년생 동생이 있어서 첫째처럼 어린이집에 그대로 남았다. 그때부터 첫째와 B가 좀 더 함께 노는 시간도 많아지고, 절친이 되어가는 듯했다.
마냥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아빠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B를 잘 챙겼다. 내 눈에는 잘 챙기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6세가 되면서 유치원을 선택해야 했다. 우리는 당연히 A가 다니는 곳으로 정했다. 그런데 B는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A의 유치원은 특별활동비가 따로 부과되기도 했지만, 크게 영향은 없었는데 왜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B도 A의 유치원으로 가게 됐다.
첫째는 A의 유치원으로 가는 것에 엄청 들떠있었다. 그리고 B가 함께 가는 것도 즐거워 보였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가 함께 간다는 것이 위안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유치원에 가고부터 B와 B의 엄마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B의 엄마가 첫째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한 것이다. 첫째가 B에게 항상 무언가를 지시하고, 통제하려고 들기 때문에 반을 바꿔주라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우리 세 가족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들끼리는 단톡방도 만들어서 가끔 커피도 마시곤 했다. 그런데 곧바로 민원사항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친다고? 기분이 나빴다.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아내가 B의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부터 첫째가 B를 항상 싸고 돌아서 B가 주체적으로 크지 못했다고. 그래서 항상 눈치만 본다고. 자신감도 없고. 이 모든 것이 우리 첫째 때문인 것 같아서 둘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첫째를 잘 타일렀다.
"첫째야, 네가 B를 잘 챙기는 거 이해해. 그런데 언니처럼 이거 해, 저거 해, 우리 B는 밥도 골고루 먹어야 해. 하면서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안 돼. 첫째가 어렸을 때부터 B를 챙긴 거 아는데, B도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해주자."
첫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여느 때처럼 유치원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첫째도 있고 B도 있었다. 그 외 여러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B의 엄마가 폭주를 하는 것이다. 분명 내 딸을 보고 폭주를 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돼. 지. 함께 놀 때는 이거 하자가 아니라 우리 이거 할까?라고 말을 해. 야. 지. 버릇없는 행동이야. 그럼 상대방이 싫어하지. 왜 마음대로 하려고 그러니?"
어 뭐지? 미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찰나에 첫째가 나를 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맞아. 저 이상한 여자가 내 딸한테 한 소리잖아. 아빠가 뒤에 버젓이 있는데.' 화가 치솟았다. 오랜만에 내 꼭지를 돌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그간 봐왔던 정이 있어 아닐 거야, 딸한테 한 것이 아닐 거야, 애써 부정해 봤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다른 할머니, 엄마들도 싸함을 감지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표정관리가 안 됐다. 나는 B의 엄마에게 돌진했다.
"왜 내 딸한테 말을 함부로 합니까? 뭐 하는 행동이에요?"
"제가 뭘요? 첫째한테 말한 게 아니라 애들 모두한테 말한 거예요"
"아니 거짓말하지 마시고, 왜 내 딸한테 그러냐고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아니라니까요 왜 말을 함부로 해요?"
'오냐, 맞는구나. 네 행동을 보니 내 딸한테 한 거 맞네.' 다짜고짜 부정부터 하는 걸 보니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그냥 고개를 홱 돌려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부랴부랴 뛰어 들어왔다.
"여보. B엄마랑 싸웠어? 전화 오고 난리다. 받아 말어?"
"받아봐 뭐라 하나 보게."
아내와 B의 엄마 간에 전화통화가 이어지는데 착한 아내도 뭔가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니,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뭐가 그래요."
내가 전화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헛소리를 대신 들어보았다. 그냥 망상에 빠진 여자였다. '몇 년 동안 지켜봐오니 첫째가 B를 부하처럼 하는 것 같네, 어쩌네, 맨날 통제하려고 하네, 양말 신는 것도 첫째가 개입하네, 반찬 먹기 싫은 것도 있을 텐데 첫째가 다 먹을 때까지 보고 있네, 어쩌네...'
첫째의 행동 때문에 B는 주눅이 들고 무엇이든 엄마에게 물어보고 행동을 한다며 무한 첫째 탓을 했다. 그래 좋다. 다 떠나서 우리 딸이 잘못했다면 내가 사과해야지. 그런데 감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 딸에게 면박 준 것은 용서가 되질 않았다.
"아니 다 됐고, 첫째한테 윽박지른 거 인정해요 안 해요. 대화가 안 되네."
"맞아요. 내가 어느새부턴가 첫째가 미워 보였나 봐요. 미안해요. 됐죠? 당신도 사과하세요. 따진 거."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냥 사과하고 끊어버렸다.
그렇게 불편한 생활이 시작됐다. B의 엄마를 마주치기 싫었다. B의 엄마는 계속해서 유치원 선생님에게 반을 바꿔달라 민원을 넣었다. 유치원 선생님도 중간에서 되게 힘들어했다.
그러다가 결국 B가 다른 유치원으로 가버렸다. B의 엄마가 본인들이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와... 마치 우리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것 마냥 하는 행동이 더욱 화가 났다.
B 가족이 떠나자마자 유치원 선생님과 연락을 해보았다. 그제야 유치원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 주었다. 첫째의 행동은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B의 엄마가 유난이었던 것도, 너무 힘들게 했던 것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맞다. 난 항상 B의 엄마가 '비뚤어진 애정'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하원을 거의 도맡아 하다 보니 누구 엄마는 어떻더라, 하는 부분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는 것으로.
보면, B의 엄마는 일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였다. 나이도 나와 비슷할 정도로 노산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12월생이고, 딸인데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아 6세까지 미용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얼굴도 까맣게 생겼다.
이런 단점들을 내 앞에서 항상 이야기했다. 자기 딸의 단점을 왜 다른 사람 앞에서 열거하는 것인지. 그럴 때마다 B가 더 안쓰러웠고, 첫째를 시켜서 B를 더 잘 챙기도록 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항상 안아주었다.
한편, 이 모든 게 내가 우정을 강요해서 만들어진 일 같기도 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데, 왜 굳이 첫째 보고 애를 챙기라고 해서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까.
다른 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B의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첫째가 많이 개입했겠네. 둘 다 말을 들어봐야 해.'
그렇지만 나는 B가 자주 하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되게 속상한 말이다.
"엄마가 그랬어요. 나는 안 예쁘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줄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젤리 먹으면 안 돼요. 젤리 먹으면 더 나쁘니까."
과연 누가 B의 자존감을 꺾어 버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