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3.
'아빠는 너희들과 항상 함께 있고 싶긴 하지만, 모든 게 불안해~!'
육아휴직을 하지는 않았지만 2년 전부터 첫째와 둘째 등하원을 거의 전담하고 있다. 해가 지났으니 이제 3년 차다. 많이 적응을 한 것 같지만, 여전히 힘든 것이 아이들과의 등하원이다.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라는 것이 있다. 동시에 아이들이 보고 싶은 기대감도 존재한다. 이 찌릿한 간극이 중독과도 같아서 내가 꾸준히 도맡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은 불안감이 1% 정도는 좀 더 커서 집에서 쉬고 있어도 다가올 등하원 시간들이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등원 시간은 항상 전쟁이다.
나는 저녁에 출근하기 때문에 등원 시간을 여유롭게 가져도 되지만, 맨날 늘어지는 준비를 하면 아빠가 없을 때 엄마가 출근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기엔 시간이 촉박해진다. 그래서 오로지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군대 같이 틀을 정해 등원준비를 한다.
그러나, 매번 똑같은 틀로 준비를 해도 항상 옆으로 튀는 사건이 발생한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컨디션에 의해서 변하는 사건이다.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월요병이 있는 월요일이라든지, 날씨가 추워서 이불이 따뜻한 날이라든지, 그냥 혼자 밤늦게 까지 찬송가(둘째)를 부르다가 자서 늦잠을 잔 날이라든지, 이런 날 다음에는 내가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여유를 부리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몸이 늘어지면 안 된다. 나는 3차까지 경고를 한다. 1, 2차는 부드럽지만 3차는 폭발이다. 오은영 박사님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가르치라고 했지만 난 그게 안 된다.
일단 편하게 쉬도록 놔둔다. 하지만 5분 뒤, 10분 뒤라는 표현을 꼭 해주는 편이다. 다짜고짜 "빨리 해! 늦었어!"라고 말하면 시계도 잘 못 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생각해서다.
단호한 교관의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다가도 아이들이 귀여워서 그 따뜻한 품속으로 뛰어 들어본다.
"읏차!! 첫째, 둘째 뽀송해, 따뜻해~~~~"
아이들은 진짜 싫은 것인지 "끼이이이잉" 소리를 낸다. 그래도 꼬순내를 잔뜩 맡으면서 도파민을 마구 분비해 본다.
자, 이제 다시 2차 지도를 할 시간이다.
"얘들아 이제 진짜 거실로 나가야 돼. 거실로 나가서 누워있든지 해. 부엌에 블루베리 주스랑 빵이랑 계란밥 해놨으니까 한 숟갈씩이라도 먹어."
"끼이이이이잉~~~" 타이어 끄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니 아이들을 이불에 꽁꽁 싸매서 부엌 식탁 앞으로 한 놈씩 배달해 놓는다.
아내는 경극 배우처럼 화장을 잔뜩 한 후 향수 냄새를 푹푹 풍기며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고 떠난다. 나는 뽀뽀를 거부한다. 본능처럼.
"여보 다녀올게~ 호호. 고생해요~. 호호호."
아내도 떠났다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속도를 높여야 한다.
"빨리 세수하고, 내복 위에 원복 입고, 물통 가방에 집어넣고, 식탁에 앉아서 밥 먹어. 로션 발라줄게. 양치부터 해라!!"
첫째는 훈련이 되어 있어서 이 소리를 들으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째는 눈만 뻐끔거리다가 언니가 움직이니 식탁에 앉아 빵을 와구와구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탄수화물이 들어가서 기분이 좋은지 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한다.
"삐용이가 뿡 하고 했는데, 운전차가 꽝 해쪄"
이걸 해석하면 경찰차가 출동했는데 자기 유모차와 부딪혀서 사고가 났다는 뜻이다.
아, 늦었다. 아침 08:40 까지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 것인데 시간초과다. 그럼 난리 나는 것이다.
"아빠가! 맨날! 다 해주고! 응! 옷도! 다 입히고! 양말도 다 신기고! 응! 목도리도 다 해주고! 응! 아빠 없으면 어떡할 거야. 첫째 내년에 초등학교 가는데 어떡할 거야. 응! 이리 와! 둘째 너도 얼른 양말 신어!"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에 빙의가 된다.
한 바탕 소리치고 나면 후다닥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3차 경고였다. 둘째는 양말을 스스로 잘 신는다. 불편하게 신어도 그냥 다니는 쿨녀다. 첫째는 양말이든 내복이든 뭔가 잘 안 빠지고 불편하면 "끼이이이잉" 소리를 내는 불편녀다. 그래도 어찌어찌 둘 스타일대로 준비가 다 끝났다.
자, 출발~ 집 밖을 나올 때가 제일 상쾌하다. 우리 셋은 1층 공동현관을 나가면서 큰 숨을 들이쉰다.
"하~ 션 하다~" 둘째는 더워도 추워도 맨날 시원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항상 기분이 좋아 보인다.
첫째는 쌩콩 한 표정을 짓는다. 항상 그렇다. 천생 여자다.
그렇게 도보로 둘째부터 등원을 시키고, 첫째는 자차로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조금 기다렸다가 등원버스를 타자고 해도 첫째는 아빠와 함께 따로 등원하자고 한다. 어떤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자고 하니, 계속 그렇게 해주고 있다. 벌써 1년이 넘도록 등원버스는 한 번만 이용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집에서 쫓아냈다. 성공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아내와 짧은 통화를 하며 아침의 상황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고, 형식적인 스몰토크 후 전화를 끊어 버린다.
집에 돌아와선 얼른 식기세척기도 돌리고, 건조기도 돌리고, 간단한 먼지제거, 아이들 방 정리, 안방 이불정리 등을 시작한다. 그리고 간단한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한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개인블로그를 하면서 법과 관련된 내용의 글들을 많이 썼다. 지금은 과거 기억을 회상하며 에세이를 주로 쓰고 있다. 제법 즐거운 시간들이다.
아무튼 글을 쓰고, 개인 일도 보고, 홈트레이닝도 했더니 벌써 오후 3시 반이다. 4시 반에는 첫째와 둘째 모두 하원해야 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찌릿함과 불안감이 다시 엄습한다. 집에서 애 보고 살림하는 사람들은 절대 노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노동과 더불어 심리적 불안감도 상당하다.
그렇게 남은 한 시간을 최대한 늘어 저서 지낸다. 군대 휴가 복귀하기 전과 같은 마음이다.
4시 10분. 옷을 입고 쓰레기봉투를 입구에 빼놓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 조금과 스틱과자 조금도 챙긴다. 그럼 하원 준비 끝.
자연스럽게 쓰레기들을 투기 후 둘째부터 찾는다. 하원 1년 차 때는 둘째가 "엄마, 엄마" 하면서 엄마만 찾더니, 2년 차 여름부터는 찾지 않는다. 다행이다.
둘째는 미리 장난을 쳐주면서 하원을 시키고, 곧바로 젤리를 주어야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성격이 아니라서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집은 전쟁통이 된다.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둘째부터 찾는다. '오늘도 괜찮을 거야'
둘째 입에 먹을 걸 넣어놓고, 첫째의 하원버스 하차지로 이동한다. 첫째 하원버스 운전기사분과 하원도우미 선생님이 둘째를 엄청 예뻐한다. 멀리서부터 웃고 오는 게 보인다. 진정한 사랑꾼들이다.
첫째가 쌩콩 하게 하원을 하고, 선생님과 배꼽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히 계셔요~"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홱 돌려 오늘 있었던 일과 가방에 가져온 재미난 것들을 곧바로 나에게 쏟아낸다. 쇼미더머니에 출연시켜야 할 것 같다.
"아빠. 아빠. 내가 뭘 만들어 왔는데 봐봐."
"아빠. 아빠. 나 주머니에 뭐 있게~맞춰봐. 아이 맞춰보라고!!!"
"아빠. 아빠. 오늘 똥꾸가 나 계속 쫓아다니면서 괴롭혔어. 속상해."
"아빠. 아빠. 오늘은 어린이집 들려서 선생님들한테 인사하고 가자."
"아빠. 아빠. 오늘은 마트 들렸다가 과자 한 개씩만 사서 가자. 응? 응?"
"아빠. 아빠. 오늘은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자. 모래놀이 하자."
첫째에게 둘째는 안중에도 없다. 점점 진정한 자매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리 셋은 날씨가 좋을 때는 한량들처럼 거의 모래놀이를 한다. 다른 집들은 벌써부터 피아노학원이니 태권도니, 가정학습지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알면서도, 살짝 불안하면서도 아이들을 심심하게 놔둔다.
'네들이 살면서 언제 이렇게 심심해 보겠니. 모래나 가지고 놀아라.'
시간이 길어지면 1시간도 그렇게 모래만 가지고 논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슬슬 배고프고 지치면 마트에 가서 빼빼로와 닭다리 과자, 요구르트를 사 먹는다. 마트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고 예뻐해 주신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 같다.
그렇게 집으로 오면 아내는 몰래 퇴근해서 다 씻고, 아이들을 기쁘게 맞아준다. 그때부터 나는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뿌듯하다. 아이들을 안전하고 즐겁게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귀가시켰다는 것이.
아침 10:00.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제일 즐겁다. 아직도 6시간이나 남았다. 기분도 좋으니 아이들에 대한 글쓰기도 즐겁다. 그런데, 이 시간이 얼마나 갈까. 오후 3시 정도만 돼도 긴장감과 불안감이 다시 또 내게 찾아올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간식으로 줘야 할까. 건강한 것을 주고 싶은데, 몸은 되게 귀찮네. 그래도 항상 보고 싶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