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문학적 올레로 걸어 들어가기

by 임 윤

‘올레’는 제주어로 골목을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그러니 제주에 ‘올레길’이 처음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는 특색 있는 골목길을 찾아가 걷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자연스레 쌓아 올린 현무암 돌담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올레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 고유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레는 제주의 골목길은 물론 해변 길, 산길, 들길들을 이어서 만들어졌다. 이제 올레는 제주를 걷는 도보여행길에 붙여진 고유 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 올레’를 본떠 일본에 ‘규슈 올레’, ‘미야기 올레’, 몽골에는 ‘몽골 올레’가 생겼으니 ‘올레(olle)’는 제주어 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단어가 되었으며 의미도 골목이 아닌 트레일(trail)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제주 올레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순례(pilgrimage)는 종교적 의미로 성지를 찾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순례길은 찾아갈 목적지가 있는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서부 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대성당이 그 목적지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지금은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가 아닌 비종교인들도 많이 걷는다. 그들은 성지를 찾아서라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걷는다.


그런데, 삶의 의미는 어디를 찾아간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절로 찾아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틸틸과 미틸 남매가 (비록 꿈속이었지만) 파랑새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파랑새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그러니 별수 없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길은 사전적으로 사람이나 우마, 자동차 등이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말처럼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상에 사람이 출현하면서 비로소 길이라 불리는 공간이 생겨났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개인이 만들어 온 삶의 궤적 역시 우리는 (인생)길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사람은 길 위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삼 년 전 2년여에 걸쳐 제주 올레를 완보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내려가 1~2개 코스를 걸었다. 춘삼월 초에 걷기 시작해 이듬해 가을이 다시 돌아왔을 즈음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걷다 보니 길의 끝은 시작과 이어졌다. 걷는다는 것은 결국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순례이다.


제주 올레를 완보하고 나서 그 여정을 개인 블로그에 정리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코스의 풍광을 소개하고 여기저기서 관련 정보를 찾아 내용을 보충했다. 찾아서 정리하다 보니 올레에는 겉으로 보이는 풍광 이상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매 코스에 한둘씩 포함돼 있는 오름마다 지질학적 특징이 달랐고 지나치는 마을에는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미리 알고 걸었다면 걸음걸음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게 다 걷는 데, 완보하는 데에만 욕심을 내었기 때문이다. 교통편이나 맛집은 찾아봤지만 올레에 켜켜이 쌓이고 얽힌 이야기들은 정작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의미 있게 바라봤을 장소들을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


이제 만시지탄하며 제주 올레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 나선다. 삼 년 전 완보가 제주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걷는 일이었다면 지금 제주 올레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인문학적 공간에서 올레를 걷는 일이 될 것이다. 부디 기억 속에서는 시간적 선후를 뛰어넘어 두 공간의 올레가 순일하게 하나로 합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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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를 완주하고 받은 인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