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코스]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성산일출봉

by 임 윤

올레의 리드오프(lead off), 말미오름과 알오름


첫인상, 첫 만남, 어디에서나 처음은 중요하다. 야구 경기에서는 공격 타순의 맨 처음인 1번 타자를 리드오프(lead off)라 한다. 리드오프는 공격의 물꼬를 터야 하므로 출루율이 높고 발이 빠른 선수를 배치한다. 제주 올레 첫 코스에서 맨 처음 만나는 ‘제주 올레의 리드오프’는 말미오름과 알오름이다. 야구에서 리드오프는 한 명인데, 올레의 리드오프는 두 개의 오름이다. 그것은 두 오름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 말미오름 안에 알오름이 포개진 이중화산(二重火山, double volcano)이기 때문이다.


오름은 제주어로 산을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제주 사람들은 섬 중앙에 우뚝 솟은 한라산을 제외한 섬 도처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을 오름이라 부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작한 ‘제주 오름 지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빼곡히 표시돼 있다. 제주의 마을 수가 203개이니(31개 행정동, 172개 행정리) 제주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보다 오름이 더 많다. 제주도는 오름의 왕국이다.


그동안 오름은 기생화산(寄生火山, parasitic volcano)이라고 알려져 왔다. 기생화산은 마그마가 주 화산의 측면 혹은 주변의 약한 곳을 뚫고 분출하면서 생긴 작은 화산을 말한다. 그러니까 제주 도처의 오름이 한라산의 기생화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레 10코스의 산방산이 한라산의 백록담보다 먼저 형성된 것이 확인되는 등 오름은 기생화산이 아니라 엄연히 독립적인 화산체임이 밝혀지고 있다. 이제 ‘오름은 기생화산’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2024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보전지역 대상의 명칭을 ‘기생화산’에서 ‘오름’으로 변경하였다.


올레 1코스 안내소를 지나 걷다 보면 말미오름 측면에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해식절벽이 보인다. 그렇다. 지금 이곳은 옛날에는 바다였다. 말미오름은 얕은 바다에서 발생한 마그마 활동으로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이다. 바다 밑에서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과 접촉하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생성되면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한다. 물이 수증기로 기화하면 부피가 약 1700배 팽창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폭발과 함께 분화구에서 바닷물과 수증기를 머금은 화산재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분화구 주위에 쌓인다. 이렇게 쌓인 화산재가 엉겨 굳으면 응회암(凝灰巖, tuff)이 된다. 글자 그대로 재(灰)가 굳은(凝) 바위(巖)이다. 말미오름은 형태적으로는 분화구 주위에 응회암이 고리처럼 형성된 응회환(凝灰環, tuff ring)에 해당한다.


화산재가 분화구 주위에 쌓이면서 응회환 내부로 바닷물 유입이 차단되면 분화 형태가 수중 분화에서 육상 분화로 바뀌게 된다. 폭발 양상도 수증기 폭발이 아닌 마그마 속 휘발 성분에 의한 폭발로 바뀌면서 용암 파편이 분출되고 화산재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분출된 용암 파편이 식어서 만들어진 다공질의 화산석(제주에서는 '송이'라고 부른다)들이 분화구 주위에 쌓여 봉우리를 형성한다. 이를 분석구(噴石丘, scoria cone)라고 하는데, 분화구에서 분출된(噴) 돌(石)들이 쌓인 언덕(丘)이란 뜻이다. 알오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처럼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일련의 화산 활동 중에 분화 환경이 수중에서 육상으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이중화산이다. 수중 화산 활동으로 응회환 형태의 말미오름이 형성되었고, 응회환의 내부 환경이 육상으로 바뀐 후에도 계속된 분화는 알오름이라는 분석구를 만들었다. 항공사진을 보면 고리 형태의 말미오름과 알의 노른자 같은 알오름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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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과 알오름(‘두산봉’과 ‘말산메’라고도 불림)

주: 말미오름은 침식 등으로 응회환의 반 이상이 소실되었지만 고리 윤곽은 뚜렷하다.

자료: 네이버 지도(왼쪽), 말미오름 입구 안내판(오른쪽)



시와 노래의 배경이 된 성산포 바다와 성산일출봉


올레 1코스를 걷다 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바라보이는 해안가에 이생진 시비 공원이 있다. 1929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이생진 시인은 젊은 날 모슬포에서 군대 생활을 한 게 인연이 되어 제주 올레가 생기기 훨씬 전에 제주도를 걸어서 두 번이나 일주했다. 1978년 성산포를 배경으로 한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냈지만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다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연작시 형태로 낭송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고 한밤의 라디오 프로가 인기 있던 시절이었다. 파도 소리와 잔잔한 음악을 배경 삼아 진중하고 처연한 목소리로 낭송되는 시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성산포에서는/바람이 심한 날/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한다/그러다가도 해 뜨는 아침이면/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2001년 이생진 시인은 제주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2009년에는 일출봉 북서쪽 해안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 공원이 만들어졌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김민부 작시, 장일남 작곡의 가곡 ‘기다리는 마음’에는 님을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첫마디에 ‘일출봉’이 나오는 이 가곡의 가사는 제주어로 쓰인 옛 시(詩)가 원전이 되었다. 작곡자인 장일남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고향인 황해도 해주를 탈출해 연평도에서 약 1년 정도 머물렀다. 거기에서 이 시를 보게 됐는데, 제주어로 쓰여 있어서 정확히 해석하기 어려웠지만, 대강 제주의 한 사내가 돈을 벌기 위해 육지로 나갔는데, 제주에 남은 여인이 일출봉에 올라 언제 올지 모르는 님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장일남은 님을 그리는 여인의 애달픈 마음에 깊은 연민을 느끼고 이 시에 곡을 붙였다. 바다 건너 해주의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작곡자 자신의 애틋한 심정도 함께 담겼다. 세월이 흘러 1960년대 말 이 가곡이 발표될 때 시인인 김민부가 옛 시의 가사를 현재의 표준어 가사로 재탄생시켰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UNESCO World Natural Heritage)은 2024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231개가 지정돼 있다. 한국은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에 이어 2021년 ‘한국의 갯벌’이 등재되면서 두 개를 보유하게 됐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로 지정된 지역은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세 곳으로 제주도 면적의 약 10%이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에 의해 형성된 만장굴 등 동굴들이 주가 되므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오름은 성산일출봉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은 말미오름처럼 얕은 바다 밑에서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형성된 수성화산이다. 말미오름이 화산재가 둥근 고리처럼 엉겨 굳은 응회환(tuff ring)이라면 성산일출봉은 그보다 높이가 높고 경사가 급한 원뿔 형태의 응회구(tuff cone)라는 차이가 있다. 수성화산에서 응회환과 응회구의 형태적 차이는 주로 물과 마그마의 비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응회구가 응회환보다 물의 비율이 더 높다. 물의 비율이 높으면 폭발력이 약해지고 분출된 화산재의 점성은 강해져서 경사가 급한 응회구가 형성된다. 모래성을 쌓기 위해서는 모래가 물기에 충분히 젖어야 쌓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한 번의 마그마 분출로 형성된 반면, 성산일출봉은 세 번의 마그마 분출로 형성됐다. 1,2차 분출은 성산일출봉 중심에서 약 600m 떨어진 해저에서 발생했다. 이후 현재 위치에서 3차 분출이 발생해 세 개의 화산이 중첩된 복합 화산체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형성된 화산체는 오랜 기간 파도에 의해 상당 부분 깎여 나가고 지금의 형태만 남았다. 성산일출봉 외벽에는 세 번의 마그마 분출에 의해 생긴 응회암 퇴적층이 뚜렷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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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성산일출봉

자료: 기진석, 윤우석, 고선영, 손영관, 윤석훈(2024). 제주도 성산일출봉의 다단계 화산 분출. 지질학회지 제60권 제3호, p. 245-259


성산일출봉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제주도에서 1km 정도 떨어진 섬이었다. 하지만 파도에 의해 침식된 화산체 잔해들이 밀려와 쌓이면서 길이 1.5km의 사주(모래톱)인 광치기해변이 생겨나 성산일출봉은 썰물 때면 본섬과 연결되는 육계도가 되었다. 그런데 1940년을 전후로 일제가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이 드나들던 길이 50m 남짓의 길목인 ‘터진목’을 메워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성산일출봉은 본섬과 완전히 이어졌다. 성산도(城山島)가 성산반도(城山半島)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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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찍은 성산일출봉 모습

주: 원래 섬이었으나 지금은 광치기해변과 갑문 교량(성산포항 쪽)으로 본섬과 이어졌다.

자료: 한국관광공사



역사의 현장이었던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에 형성되었다. 제주도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한반도와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대략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해수면이 상승하기 전 제주로 걸어 들어왔던 선사인들은 꼼짝없이 섬사람들이 되었다. 성산일출봉은 6700년 전에서 5000년 전 사이에 형성되었다. 6700년 전 1,2차 분화가 일어났고 5000년 전쯤 3차 분화가 발생했다. 당시 제주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은 바다에서 성산일출봉이 생겨나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봤을 것이다.


육계도인 성산일출봉은 사람들이 들어가 충분히 정착할 만했지만 마을이 형성된 것은 조선시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결정적으로 성산일출봉에는 지하수가 솟아나지 않아 식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고려 시대 삼별초가 성산일출봉에 토성을 쌓았다고 전해오지만, 천연 요새로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성산일출봉이 결국 삼별초 항전의 근거지가 되지 못했던 것도 물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삼별초 항전의 근거지는 올레 16코스에 있는 항파두리 토성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삼별초가 진압된 이후 성산일출봉은 몽골의에 의해 포구로 이용되었다. 몽골이 제주 동부 지역에서 키운 말들을 성산일출봉에 있는 수마포에서 육지로 실어 보냈던 것이다. 육계도인 데다 응회구 화산체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말들을 가둬 놓았다가 배에 실어 보내기 편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주 목사가 성산포 바다에서 5km 정도 내륙에 있던 방어 기지인 수산진을 성산일출봉으로 옮겼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성산일출봉이 방어에는 유리하나 왜적이 본도에 들어와 웅거하면 주인이 도리어 객이 되는 형세가 되므로 좋은 계책이 아니라며 수산진을 원래 위치로 환원시켰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성산일출봉을 요새화하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본토 사수를 위해 총 7개의 방어선을 설정하고 항전 계획을 수립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군의 제주도 점령을 막는 것이었다. 제주도가 일본 공격의 전초 기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은 성산일출봉을 비롯해 제주도 해안 절벽 곳곳에 자살 공격정과 어뢰정을 매복하기 위한 동굴을 팠다. 특히 성산일출봉 해안의 진지 동굴은 모두 18개, 총길이 514m로 제주도 내 일본군 동굴 진지 중 규모가 가장 컸다.


광복 이후 해방 정국에는 제주도 전역에 4.3이라는 유례없이 끔찍한 광기가 휘몰아쳤다. 성산일출봉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산일출봉 매표소 옆 우뭇개동산에서는 일제가 버린 폭약을 어업용으로 쓰려고 보관했던 게 빌미가 되어 20여 명의 주민이 서북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 광치기해변의 터진목은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수시로 총살을 자행하던 곳이었다. 1948년 10월 27일부터 약 4개월 동안 30여 차례의 양민 학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적게는 한두 명씩, 많게는 삼사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성산 지역 4.3 희생자의 절반에 가까운 200여 명이 터진목에서 학살되었다. 성산일출봉은 경관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 길이길이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세계자연유산이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아픈 역사도 마땅히 오래오래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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