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에 살아있는 고인과의 이별 준비

메타버스 시대의 인간 추모 2, 영화 <아카이브>

by 박인조

2019년 코로나19의 발생 이후, 확진자의 추이에 따라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여러 대책이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모임 인원이 제한되고 야외활동과 이동 자제를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단속이 이루어지고 벌금이 부과되며 고발이 이루어졌습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중의 하나가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에 장사시설을 폐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방문을 막았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묘지를 비롯한 봉안당과 자연장지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는 시기에 이러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림-사회적 거리두기)

그와 함께 마련한 것이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였습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 시스템’에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추모와·성묘를 가능하게 만든 웹 사이트입니다.


이 서비스의 등장으로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면 영정사진 등록, 차례상 꾸미기, 헌화와 분향, 사진첩 만들기를 할 수 있는 ‘추모관 꾸미기’가 가능합니다. 이것을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SNS)을 통해 가족과 친지와 공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차례상 꾸미기는 밥(국), 탕, 전·적·포, 나물, 생선, 과일, 떡, 과자 등 다양한 음식 중에서 원하는 것을 차례상 이미지 위 빈칸에 드래그해서 놓는 형식으로 구성을 갖출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죽었지만 여전히 소통할 수 있는 시대

사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명절이 되면 꽉꽉 막히는 도로 사정을 알면서도 전국 각지로 성묘를 위해 고향과 추모시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면 모임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인터넷 기반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방법을 대안으로 찾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방식이 점차 확대될 것입니다.


사실 해외에 사는 한국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서는 벌써 갖추어졌어야 할 서비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관심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바이러스의 전파와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일상과 미세먼지와 황사를 비롯한 대기오염 그리고 태풍과 한파 등의 기후변화에 따른 야외활동 제한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방식이 일상화될 수 있습니다.


고인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추모’(追慕)는 ‘애도’(哀悼)에 있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며 시간입니다.

특히 사고로 인해 갑자기 죽음을 맞는 경우와 같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당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과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죽음을 맞아야 하는 아쉬움, 동시에 더 함께 하지 못하는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실제로 죽었지만, 그 죽음을 잠시 미루어둘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시간을 벌 수 있어 그 시간을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죽었지만 여전히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의 영화가 <아카이브>(Archive, 영국/2020)입니다.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는 기술은 인간의 의식, 기억, 인성 등 개인의 정신 내용을 복사해 전산장치로 전송해서 저장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인간은 글로벌 네트워크 상의 프로그램으로 존재하고 개인은 뉴런 간의 상호작용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은 사람을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음을 로봇 안에 이식하는 마인드 업로딩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마음이 몸에 결부되거나 특정한 신체 패턴을 고수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Hans Moravec,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 박우석 역, 『마음의 아이들: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서울: 김영사, 2011), 121-122.)


몸과 마음의 분리가 가능해 인공 신체 안에 놓인 마음이 인간 마음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해 기계가 인간 의식의 저장소가 됨으로 인간 정체성은 정보 패턴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을 인간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로봇에 주입하여 인간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에서 나노기술로 지금처럼 인간의 신체가 존재해도 뇌 업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비 생물학적 경험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사실 현재는 인체라는 하드웨어가 망가지면 개인의 삶과 마음이라는 파일도 함께 사라집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음 파일을 잘 관리하고 자주 백업해 최신 하드웨어로 옮겨준다면 인간은 소프트웨어의 패턴으로 영원히 살아남아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Ray Kurzweil, 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 김명남 외 역, 『특이점이 온다』(파주: 김영사, 2007), 446-449.)


마인드 업로딩을 통한 죽은 사람과의 대화

movie-Archive (6).jpg (출처-영화 장면 캡처)

‘아카이브’란 역사적 가치, 장기보존의 가치가 있는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카이브 시스템’은 죽은 사람의 의식을 일정기간 저장해 영상통화 방식으로 유족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일면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실현한 것입니다.


인공지능 엔지니어인 조지는 기업으로부터 단독 연구실 지원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아내에게 이야기하며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그만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습니다.

조지는 '하우스'라고 불리는 천해의 요새 같은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 죽은 지 3년이 다되어가는 아내 줄스와 통화하며 소통합니다.


아카이빙 된 고인과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유족은 기계 앞에서 화면을 통해 서로에게 연락하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자기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작별인사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지는 5-6세 지능을 가진 로봇 J01을 시작으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종종 꿈을 꾼다고 말하는 15-16세 정도의 로봇 J02를 만들어 이 연구소에서 같이 지내며 기업의 연구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그의 실제 관심은 아내를 다시 살릴 로봇, 사람과 똑같은 모습과 행동에 사람의 인격을 이식받고 생물화학적 요소까지 포함한 인공뇌를 가진 로봇 J03을 개발해 죽은 아내를 로봇으로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카이브 시스템 회사에서 찾아와 줄리가 아카이브에 들어 간지 2년 8개월 4일이 지났다며, 한계 기한인 3년이 가까워져 저장소의 봉인이 풀릴 경우 법적으로 저장소를 제거하고 사망자를 매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거기에 연구소의 보안시스템이 고장을 일으키고 침입자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면서 기업의 위험 평가인인 태그로부터 비상 시스템이 든 가방을 전달받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총이 들어 있었는데, 이 가방을 열면 위기 대응팀이 출동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시간이 급해진 조지는 줄스의 기억을 서둘러 J03에게 업그레이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J02는 조지가 J03 개발에 매진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질투심과 억울한 마음이 점점 심해지며 거짓말까지 합니다.

심지어 J03을 숨기는데, 화가 난 조지는 J02의 전원을 꺼버리고 J03 다리 제작에 필요한 시스템을 얻기 위해 J03의 다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합니다. 전원이 들어왔을 때 깊은 절망에 빠진 J02는 스스로 호수 안으로 들어가 죽음을 선택합니다.

(출처: 영화 장면 캡처)


그런데 아카이브 시스템 회사에서 J02를 발견하고는 자신들의 아카이빙 기술을 훔쳤다면 조지의 회사에 배상을 요구하면서 조지의 로봇 개발이 발각됩니다.

지금까지 기능공 로봇, 애견 로봇 정도까지 개발된 상태에서 조지는 기업에 알리지 않고 감정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이식한 로봇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로봇을 회수하러 직원을 보냅니다.


그런 와중에 J03은 미각 테스트와 언어 연습, 공감 경험과 함께 줄스의 의식을 이전할 때 생길 수 있는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작업 등을 거쳐 완전히 줄스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잠시 서로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아 어색했지만, 곧 이전처럼 다시 교감하게 됩니다.

(출처: 영화 장면 캡처)

그런데 아카이브에 있던 줄스의 기억을 옮겼음에도 아카이브 시스템에서 전화가 울립니다. 얼마 전부터는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 되고, 아카이브 안의 줄스가 전화를 해야만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 순간 줄스가 된 J03의 만류에도 전화를 받은 조지는 전화기 너머에서 줄스와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번이 당신과 통화하는 마지막 통화야. 당신 아카이브 시스템이 이제 만료된대.


아빠? 엄마가 우리가 더 이상 아빠를 보러 올 수 없다고 했어요. 사랑해요, 안녕.




영화의 마지막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즉 아카이브 속에 저장된 것은 줄스가 아니라, 조지였습니다. 조지는 자신이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아카이브 안에서 아내를 살리겠다고 로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줄스는 조지를 아카이브 스시템에 보존했습니다.

하지만 아카이브 기간이 만료돼 장례준비 단계로 접어들면서 줄스와 딸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제 조지의 유품을 받는 줄스는 딸을 안고 걸어 나가며 영화는 끝납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오늘의 만남

인간의 의식과 기억, 인성까지도 데이터화해서 복사해 로봇이나 인공물에 옮기는 것은 죽지 않을 불멸의 방법으로 인류가 과학기술을 통해 모색하는 방법입니다.

이와 함께 유전공학을 통한 인간복제나 인공장기로 질병이나 기능을 다한 신체 장기를 교체하는 생물학적 변화의 기술은 죽지 않을 인간이 되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전까지도 인류는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식을 통해 비록 죽었지만, 후손의 기억 속에서 남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추억 속의 기억이 전부였지요.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기록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그 사람은 아닙니다.


(그림-아이트래커(eyetracker))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죽은 사람을 실제 모습을 가진 인간, 아니 로봇으로 다시 살립니다.

영화에서 조지가 사고로 잃은 아내 줄스를 모든 것이 담긴 기억저장소 아카이브를 통해 인공지능 로봇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사실 불멸을 이룰 사이보그 또는 인간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한 비 생물학적 존재가 되어갈 인간이라도 언젠가는 활동 중단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때, 누가 그것을 결정할 것일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여기서 인간 삶의 가치를 가늠하는 자기 결정권의 문제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을 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됩니다.

결국 죽기 위해서는 인공적인 장치가 고장 나기를 기다리거나 임의로 정지해야 하는데, 이런 선택과 기다림이 생명연장의 이유 중 하나인 행복한 삶에 부합하느냐 하는 문제가 논의되겠지요. 여전히 죽지 않고 남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에 앞선 질문, 즉 죽은 인간을 대신해서 의식과 기억 및 인성까지도 옮긴 그 무엇이, 정말 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외모만 아니라 기억과 인성까지도 다운로드하였으니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기억은 고정된 데이터 이상의 것입니다.


그래서 듀크 대학교 교수인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는 마음을 이식한 로봇은 이전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억과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프란시스 후쿠야마도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Human Future)에서 인간의 의식은 개인적 선호와 도구적 이성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식과 도덕적 평가에 의해 상호 주관적으로 형성된다며 이런 마인드 업로딩 방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Francis Fukuyama, Human Future, 송정화 역,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서울: 한국경제신문, 2003), 261-62.)


인간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소통하며 변화하기에 사실 복제가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하는 존재이며, 예상하지 못하는 수많은 우연과 내재된 한계로 인한 변동성을 특징으로 하므로 원래부터 인공지능 로봇이나 인간을 닮은 그 무엇과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누군가와의 대화, 소통은 정말 소중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이므로, 그 사람과의 더 깊은 삶이 있을 때 헤어짐을 감당할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두터워질 것입니다.


keyword
이전 07화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시 쓰는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