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의 인간 추모 3,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포기해요. 진우는 죽었어요. 아니 삭제된 겁니다. 이제 안 돌아와요.” -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중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의 정보와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디지털화입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상에서 가능해졌고 실재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실제 세계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상세계의 구현도 예상됩니다.
고전적 형태의 가상현실은 1957년에 이미 모턴 하일리그(Morton Heilig)가 만든 ‘센소라마 시뮬레이터’(Sensorama Simulator)라는 기기로 등장합니다.
‘경험 극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기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한 3차원 입체 영상, 스트레오 사운드와 함께 향기와 바람, 진동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68년에는 컴퓨터 과학자 이반 서덜랜드(Evan Surthurland)가 천정에 매달린 선과 연결된 디스플레이 장비(HMD, Head Mounted Display)를 머리에 착용하고 3D 영상을 경험할 수 있게 구현했습니다.
그런데 장비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나타나는 신체 평형기관과 시각 정보 사이의 괴리, 3D 화면 구현에 있어서의 시간 지연으로 인한 가상현실 멀미(VR Sickness), 화면과의 초점 거리가 짧아 사용자 눈에 픽셀 간격이 두드러지는 스크린도어 현상(Screen Door Effect), 비싼 가격으로 대중화가 어려웠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4차 산업혁명 6개의 미래지도』(서울: 토트, 2018), 123-126.)
그리고 오늘날 가상현실 경험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1986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우주인 훈련용 기기인 ‘바이브드’(VIVED, Virtual Visual Environment Display)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기기는 HMD로 작동되는 완전 몰입형 장치로 마이크와 헤드셋, 장갑을 착용한 교육생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형태로 상호작용하며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가상세계 속의 또 다른 나
이미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에 기반을 두거나 또는 전혀 관계없는 디지털화된 가상세계가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현실을 초월한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계를 의미합니다.
기술 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은 메타버스를 ‘증강현실’,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로 설명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에 일상을 올리거나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것 등이 그 예입니다. (김상균, 『메타버스』(화성: 플랜비디자인, 2020), 23.)
가상현실은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 구축한 가상공간에서 오감을 활용한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마치 현실 같은 현장감을 느끼며 몰입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가상세계에서는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한 사람의 성격, 성 정체성, 정치성향까지도 구현해 현실과 똑같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정확한 가상인물인 아바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래에는 자신에 대한 정보와 기억을 지속적으로 인공지능에 직접 업로드하거나, 가상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는 언제든지 삭제하고 불러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한국/2018)은 tvN에서 만든 16부작 드라마로 증강현실을 배경으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드라마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IT 투자회사 제이원 홀딩스의 유진우 대표는 공학박사로 박사 시절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IT 회사를 만들어 10년 만에 업계 최대 회사의 대표가 됩니다.
스페인 출장 중에 증강현실 게임을 개발한 익명의 프로그래머의 연락을 받고 그라나다로 향하는데, 약속 장소인 호스텔 보니따에서 게임 개발자는 만나지 못하고 그의 누나이며 전직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지금은 낡은 호스텔의 주인인 정희주를 만납니다.
희주의 아버지는 딸의 기타 실력을 특별하게 보고 유학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해 온 가족이 함께 스페인으로 옵니다.
그런데 희주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으로 할머니와 두 명의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며 호스텔 운영은 물론, 식당일과 여행 가이드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합니다. 그러면서도 클래식 기타를 만드는 공방에서 제작 기술을 배우며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공방을 열 꿈을 키웁니다.
그라나다에 온 진우는 게임 전용 렌즈를 끼고 프로그래머가 보내온 게임을 거리에서 직접 해보고는 사실적인 몰입감에 감탄해 어떻게든 게임 개발자를 만나 계약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증강현실 게임을 개발한 정세주는 많은 의문만을 남긴 채 그라나다행 기차 안에서 실종됩니다. 세주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프로그램의 권리자가 보니따의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세주의 누나인 희주에게 1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주고 계약합니다.
그 시기 진우의 경쟁자이자 자취방 시절 동료였던 차형석도 이 게임을 계약하려고 그라나다에 왔습니다. 개발자가 사라지며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진우와 게임에서 만나 결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에서 진우의 칼을 맞아 죽은 형석은 다음 날 아침, 공원에서 실제 죽은 상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나 진우에게 결투를 신청해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게임의 오류를 잡기 위해 끝없이 전투를 하며 레벨을 올리던 진우는 게임에서 동맹을 맺은 비서 서정훈의 죽음도 경험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칼이 아니라 렌즈로만 보이는 게임 속 칼인데도 칼이 부딪칠 때면 충격을 느끼고, 화살이나 총에 맞으면 죽습니다. 진우는 주변 사람에게서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다 결국 회사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한편 제이원에서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렌즈를 눈에 끼고 증강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넥스트’ 출시를 준비합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와 대한민국 서울, 두 도시의 거리와 건물을 배경으로 이 렌즈를 착용하고 조선 시대 무사, 테러리스트, 탈영병 등과 싸워 레벨을 올려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위험성을 진우가 경고했음에도 일반인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필요했던 죽음
진우는 게임의 버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년여를 고군분투 레벨을 최대한으로 올립니다. 레벨 90에 도달하자 시타텔의 매를 통해 마스터가 보낸 48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비밀 퀘스트를 받고 그라나다로 갑니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 지하 감옥에서 천국의 열쇠를 획득하자 실종되었던 게임 개발자 세주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게임의 공간인 인스턴트 던전(Instance Dungeon)에 숨어있었는데, 보이지도 않고 나올 수도 없는 상태로 내내 있었던 것입니다.
진우는 천국의 열쇠를 게임 내에서 기타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엠마에게 가져다주면서 퀘스트의 보상으로 새로운 마스터가 됩니다.
그런데 천국의 열쇠를 손에 든 엠마는 그 안의 칼을 꺼내 진우의 심장을 찌르면서 버그 삭제를 진행시키지만 완료되지 못한 부상당한 채로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수많은 NPC(Non Player Character)를 비서였던 정훈의 도움을 받아 피합니다.
앞서 진우는 희주로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첫 번째 입구인 정의의 문에 그려진 파티마의 손 그림에 대한 전설을 듣습니다.
파티마는 마호메트의 딸로, 파티마의 손이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의 역할을 하는데, 천국의 열쇠와 파티마의 손이 맞닿으면 문이 열리고 성은 무너진다는 전설입니다.
파티마의 손인 엠마에게 가슴이 찔린 진우는 천국 열쇠의 용도를 알게 되었고, 다시 손에 쥔 천국의 열쇠로 버그가 된 사용자의 가슴을 찔러 삭제해 결국 사라지게 합니다.
성당에서 동료였던 차병석, 교수 차병훈, 비서 서정훈을 천국의 열쇠로 가슴을 찔러 삭제하자 한 줌의 가루가 됩니다. 비서의 버그를 삭제하려는 순간에는 머뭇거리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고 떠나보내야 하는 깊은 슬픔에 괴로워하며 삭제를 실행합니다.
버그를 삭제 한 진우는 가져갔던 천국의 열쇠를 다시 엠마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엠마에 의해 죽습니다. 엠마는 게임에서 버그를 죽이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게임의 모든 기록이 초기화되면서 제거된 버그의 흰색 가루 잔해와 게임 NPC(Non Player Character)들은 사라집니다.
1년이 흐르고, 제이원에서 출시한 증강현실 게임 넥스트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진우는 게임 마스터가 위급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던전에 숨어 있다 다시 활동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됩니다.
드라마 속 게임에서 대결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연주됩니다.
이 곡은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1896년에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 말라가에서 작곡한 클래식 기타 연주곡입니다. 그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요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는데, 클래식 기타의 중요한 기술인 트레몰로 기법으로 연주합니다.
드라마에서도 설명하듯이 증강현실 게임은 주의할 점들이 있습니다.
증강현실 게임 ‘넥스트’가 출시되면서 여의도 공원을 비롯한 곳곳에서 사람들이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두르는 행동을 합니다. 칼과 총으로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편의점으로 사람들이 몰려가 특정 햄버거를 먹고 음료수를 마셔 생명력을 회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게임이 단지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사회 전반에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결국 정부차원에서 법규를 마련하고 게임 시간과 장소를 제한합니다. 제이원은 4차선 이상 도로, 학교 주변, 10층 이상 고층건물은 게임 존에서 제외시키고,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과 6시 이후에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해서 게임이 일상생활을 해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가상세계 속 아바타의 죽음
드라마 속 증강현실 게임인 넥스트는 전투를 테마로 합니다.
많은 인터넷 게임이 그렇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증강현실을 경험하는 이 게임도 혼자 또는 팀을 이루어 다른 사람과 싸우는 내용입니다.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수없이 몰려오는 게임의 인물들을 죽여 레벨을 올리고 더 좋은 무기를 획득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이미 가상세계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음악공연을 비롯해 대학교 입학식 등의 행사와 명품을 구입하고 얼굴 화장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이전에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가상세계는 새로운 삶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안에만 존재하는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가상세계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공연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것과 관련된 여러 일자리도 생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나’인 가상세계 속 아바타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게임에서 인간의 죽음은 프로그램에서 삭제되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죽음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언제든지 다시 살릴 수 있고 불러올 수 있습니다.
드라마 끝에서 제이원 박선호 대표는 진우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희주의 말에 이런 충고를 합니다.
포기해요. 진우는 죽었어요. 아니 삭제된 겁니다. 이제 안 돌아와요.
그럼에도 희주는 진우가 언제든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증강현실 속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동일시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존재인 아바타는 가상세계에서 또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활동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나를 대신했던 아바타는 어느 순간부터 실제 나처럼 느껴질 것이고, 그 때는 아바타를 죽고 살리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이 현실의 인물과 똑같은 이름과 인격을 가진 존재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가상세계의 경험과 현실세계에서의 일상이 혼합되는 순간에 허상이 아닌 진짜 나와 너로 받아들여질 가상세계의 인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무렇게나 삭제 또는 초기화 버튼을 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순간 머뭇거리게 될 것이고, 가상세계 인물의 죽음을 프로그램에서의 중지나 삭제로만 이해하지는 않게 되겠지요.
그만큼 가상세계 속 나는 현실의 나와 동일 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현재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게임 스토리가 주로 사람들 사이의 결투와 전쟁이라는 점은 아쉬운 일입니다.
게임 ‘넥스트’의 버그는 게임에서 죽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실제상황과 게임 속 상황이 서로 혼재된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었지만 죽지 않고, 살았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수많은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등장인물의 마음의 세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해결되지 않은 질투심과 죄책감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애정이라는 감정 말입니다.
마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들의 현실세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지배하고 있던 것으로 말이지요.
가상세계에서의 경험과 현실세계에서의 경험이 점점 같아져 구분이 어려워질 4차 산업혁명시대에 죽음에 대한 성찰과 담론을 통한 폭넓은 논의와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이제까지처럼 가상세계 속에서 삭제와 정지, 초기화로 쉽게 생각하고 당연시 여기며 게임에서 습관화되었던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