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의 인간 추모 5, 영화 <코코>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 널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으면, 넌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 영화 <코코>(Coco) 중에서
요즘은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만 아니라, 다양한 가상의 경험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나이언틱(Niantic)이 내놓은 포켓몬 고(Pokémon GO) 게임은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가지고 거리를 다니다가 만화 속 캐릭터인 포켓몬을 만나면 잡는 게임입니다.
현실 공간 속에서 가상의 물체와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신기한 경험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포켓몬을 잡기 위해 낯선 사람이 하나 둘, 아이부터 노인까지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것을 보고는 정말 놀랬습니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라는 기술을 이용한 가상 경험입니다.
일상에서 증강현실을 활용하는 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증강현실은 현실 이미지에 디지털 가상 이미지를 중첩해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영상합성기술입니다.
이런 증강현실 기술은 게임, 교육, 여행, 군사 분야만 아니라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할 때 각 부품의 데이터를 보며 가상의 이미지를 따라 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사용됩니다.
요즘에는 자동차 앞 유리에 길 안내 이미지를 보여주는 HUD(Head Up Display)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자막, 효과음, 이모티콘 등에까지 활용됩니다.
현실 상황에서 이런 시청각적 장치를 통해 많은 정보를 편하게 전해줌으로 감각을 증강시킵니다.
현실과 동일한 이미지의 해상도 구현과 오감의 경험 그리고 현장감과 몰입의 기술이 중요한데, 앞으로는 시각적으로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시대가 올 것입니다.
실제 같은 가상 경험의 세계
4차 산업혁명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은 현실 세계의 정보를 가상의 경험으로 확장하여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그리고 혼합현실(MR, Mixed Reality)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 구축한 가상공간에서 오감을 활용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졌고, 현실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마치 현실 같은 현장감과 몰입 속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는 1987년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재런 래니어(Jaron Lanier)가 가상현실과 관련된 고글과 장갑을 파는 회사인 VPL 리서치를 만들면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가상현실은 “사용자가 완전한 상태로 몰입하고 상호 작용할 수 있는 100퍼센트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말합니다. (정동훈, 『가상현실, 너 때는 말이야』(파주: 넥서스, 2021), 68-69.)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 구축한 가상공간 속에서는 인간의 오감을 활용한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현실에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과 몰입 경험 속에 영상 속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가상현실의 구현으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거나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는 것이나 이상형인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등 신체적인 한계와 시간의 간극을 넘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비디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마치 공연장에서 직접 와 있는 것 같은 체험을 제공합니다. 관광에서 가상현실은 외국, 낯선 도시, 섬 등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줍니다.
산업분야에서는 컴퓨터응용가공(CAM)과 컴퓨터이용설계(CAD) 시장 모두에서 활용됩니다.
소매업에서는 가상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차량 딜러와 건축가들을 위한 가상 쇼룸으로도 활용됩니다. 부동산에서 구매자는 중개인 없이도 집이나 땅을 둘러보며 사거나 임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4차 산업혁명 6개의 미래지도』, 131-133.)
이런 가상의 체험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법칙을 초월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할 수 있던 많은 일들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상에서 가능해졌습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던 경험도 이제는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상의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의 발달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상의 경험이 주는 편리와 효율은 뛰어납니다.
과거의 경험을 다시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정보를 보다 구체적이고 회화적으로 시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미래적 상상을 현실화시켜 지금 여기서 만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상 경험을 시각적으로만 아니라, 촉감을 비롯한 오감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또 다른 새로운 가상 경험을 만들어 내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가상세계가 스스로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모니터에서 또는 고글을 비롯한 특수 장비를 착용해야 경험할 수 있는 이미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인간이 정보를 모으고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로 디자인해서 만들어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주어진 정보 안에서 구현되는 경험이며 세상이므로 만든 사람의 의도와 계획이 관여됩니다.
결정적으로 배터리나 전기 공급이 멈추면 중단되는 세상,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상의 세계가 영구적이며 무한할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창의적인 능력 안에 한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상 경험이 가지는 절대적인 한계점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삶에 스며들며 더 많은 사람이 기억을 공유하고 상호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 공감하며 공유하는 정서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만남이 더욱 구체화되는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서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하는 일들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죽음 이후의 세상,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영화적 상상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영화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코코>(Coco , 미국/2017)입니다. 이 날은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에 열리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입니다.
이때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멕시코 전역에서 진행되는데, 집집마다 그리고 공원과 건물 곳곳에 금잔화로 제단을 꾸밉니다. 이 꽃은 죽은 자들의 저승과 이 땅을 연결시켜주는 오렌지 색 꽃으로 멕시코에서 추모의 뜻을 가집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코코는 아빠 헥터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기였을 때, ‘기억해줘’(remember me)라는 노래를 불러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아주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헥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음악으로 세상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가족을 떠납니다.
어느 날, 헥터는 가족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딸이 보고 싶고 가족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함께 음악을 하던 동료 델라 크루즈에 의해 살해됩니다. 헥터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술잔에 독을 넣어 죽이고, 헥터의 노래들로 전설의 음악가가 됩니다.
이렇게 헥터는 딸 코코와 아내의 기억에서 잊어집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코코의 자녀의 자녀의 자녀인 소년 미구엘은 고조할아버지의 이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12살 미구엘의 꿈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지만, 그의 가족은 음악을 철저히 금지합니다. 고조할아버지의 사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구엘은 마을 광장에 세워진 전설적인 음악가 델라 크루즈의 동상을 보며 음악가의 꿈을 키웁니다.
미구엘의 집에는 오랜 선조부터 가족들의 사진을 한 곳에 모아두는 공간, 선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증조할머니 코코가 있는 사진 액자에서 코코의 아빠 얼굴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구엘은 우연히 사진의 접힌 부분을 펼치다 거기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 델라 크루즈의 기타를 보고 그가 고조할아버지다고 확신합니다.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날’ 음악 경연대회에 참가하며 고조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델라 크루즈의 기념관에 있는 기타를 가져다 씁니다.
그때 신기하게도 미구엘은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금잔화가 깔린 길을 걸어 저승에서 여러 조상들을 만납니다. 이때 처음에는 몰랐던 진짜 고조할아버지 헥터를 만나 여러 경험을 함께 합니다.
그런데 죽은 자가 산자의 기억에서 없어지면, 죽은 자의 땅에서조차도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헥터는 그런 상황에 놓였습니다. 자신을 기억하는 유일한 한 사람 딸 코코가 나이가 많아 곧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의 사진도 없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니 곧 사라질 운명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사라질 절박한 순간입니다.
하자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미구엘은 죽음을 앞둔 증조할머니 코코 앞에서 기타를 치며 코코의 아빠가 불러주던 '기억해 줘'(remember me)를 부릅니다.
순간 코코가 미동을 보이고 미구엘의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노래의 일부분입니다.
기억해 줘 지금 떠나가지만/ 기억해 줘 제발 혼자 울지 마/ 몸은 저 멀리 있어도 내 맘은 네 곁에/ 매일 밤마다 와서 조용히 노래해줄게
기억해 줘 내가 어디에 있든/ 기억해 줘 슬픈 기타 소리 따라/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널 다시 안을 때까지 기억해 줘
그리고 영화의 끝, 1년 후 이제 미구엘의 동네 광장에는 델라 크루즈가 아닌 헥터의 기념관이 세워집니다. 또한 금잔화 다리 앞에서 만난 헥터와 아내 이멜다는 코코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기억을 통해 가상에서도 현실처럼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코코가 경험한 아빠와의 사랑의 기억은 코코가 성장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것들에 비하면 너무도 작고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코코는 그 기억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분명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고, 그런 아쉬움과 서운함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그 따뜻한 경험은 그의 마음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코코의 아빠 헥터의 죽음은 여러 이유로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먼저 집이 아닌 외부에서 죽은 죽음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음악을 위해 집을 떠나 집이 아닌 어딘지 모를 곳에서 죽은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종의 객사라고도 할 수 있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죽음이었습니다. 꼭 집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함께 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죽음이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가족 중 누구도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년 수를 다 살고 자연스럽게 죽은 죽음이 아닌, 타살에 의한 죽이었습니다. 그 사실도 오랜 후에나 알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오해와 비난 가운데 있었고요.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배신에 의해 이용당해 억울하게 죽은 죽음이기에 불쌍한 죽음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호상(好喪)과 악상(惡喪)이라는 말로 정상적인 죽음과 비정상적인 죽음을 구분합니다. 이 구분은 생애의 중요한 의례인 통과의례를 잘 마쳤는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죽음을 맞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런 전통적인 기준으로 살펴보았을 때 코코의 아빠 헥터의 죽음은 정말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죽음은 다시 좋은 죽음으로 바뀝니다. 고인에 대한 가족 간의 오해가 풀리고 갈등이 해소되면서 오래도록 기억할 죽음이 되면서 말입니다.
특히 여기에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랑의 기억이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아픔을 풀어냅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써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마음을 쓰는 것 중의 하나가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남긴 유언을 지키고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기록에 많이 의존했습니다. 그가 쓴 글이나 또는 그에 대해 기록한 여러 기록에 의해서 말이지요. 자신이 스스로 쓴 삶에 대한 이야기인 일기나 자서전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통해 고인이 생각하는 것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전하고 기억했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고인에 대한 기억을 사라지는 일회적 사건이 아닌 언제든지 불러내 회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얼굴과 모습은 물론,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더 마음을 쓰며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