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극복과 불멸이라는 인간 욕망

인공지능 시대에 생명과 죽음 2, 영화 <서복>

by 박인조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심장, 콩팥, 폐, 간, 망막, 심지어 뇌까지도 인공장기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 나노로봇으로 몸속의 손상된 세포를 고치고 암세포는 즉시 없애며 DNA 복제 오류까지 복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림-인체 연골과 DNA)

이처럼 생명공학과 기계공학은 질병을 치료하고 인지·정서·신체 능력이 일상적 범위를 넘어선 인간 강화를 이룰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의 근원을 찾아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미래학자들은 생명공학이 일으킬 변화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습니다. 오늘 함께 보려는 영화에서 한 미국인 연구자가 한 말은 한번 깊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언젠가 죽는다는 두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만들죠. 그런데 그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는 건 욕망뿐입니다. 죽음이 사라진 무한한 삶에선 욕망도 무한해지고 갈등도 무한해질 겁니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죽지 않으면 인류는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겁니다.


생명공학의 밝음과 어두움

영화 <서복>(SEOBOK , 한국/2020)은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존재,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실험체인 서복과 그를 보호하려는 시한부 생명의 전직 요원 민기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서복’이라는 이름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신하의 이름과 같습니다. 서복은 수천 명의 동남, 동녀와 함께 바다 끝 신산으로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인 그룹은 정부의 묵인 하에 인간복제실험을 통해 서복이라는 인간에게는 없는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종과 같은 존재를 탄생시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배아줄기 세포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제대혈에서 분리한 조혈모세포를 핵 치환과 DNA 삽입술을 통해 수정란에 삽입시킵니다. 이렇게 형성된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켜 7개월의 임신 과정을 통해 실험체인 서복이 만들어졌습니다.

서복-SEOBOK (7).jpg (출처: 다음 영화)

서복의 골수에서 생산되는 역분화 줄기세포인 IPS 세포는 인간의 모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특별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거창한 목적과 달리, 이 목적에 대한 태도와 과정은 비인격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서복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는 연구 책임자 신학선의 말에서 드러납니다.


글쎄요.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토마토 줄기에서 감자 뿌리가 자란다면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복은 우리와 다른 종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거든요.

그는 서복을 사람이 아니라, 인슐린을 추출하기 위해 키우는 돼지와 같이 보았습니다. 서복의 몸에서 골수를 추출해 거기서 IPS 세포를 분리하려고 합니다. 서복을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눕히고 하루에 40㎖, 한 달에 약 1리터의 물질을 생산해낼 계획입니다. 서복은 이 일을 영원히 하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복은 서인 그룹 김천오 회장의 욕망과 욕심으로 탄생했습니다.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나쁜 동기로 과학기술을 이용했습니다.


난 이제부터 권력을 가진 영생을 살 거야. 그리고 내가 아무나 살려 줄 것 같아? 살려주는 건 오로지 내 마음이야.


전직 요원이었던 기헌은 뇌종양으로 고통 중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날도 1년 남짓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과거 정보국에 이용당해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무서워 혼자 살겠다고 비겁하게 도망쳤던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날입니다.

시간이 흘러 정보국에서 나왔지만, 어느 날 정보국 부장으로부터 서복을 원주의 벙커로 옮기면 병을 고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임무를 맡습니다.


그렇게 둘은 처음 만났는데, 이동 중에 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잡혀갑니다. 사실 정보국은 서복을 미국에 넘기려는 계획으로 원주 벙커로의 이동을 추진했는데, 미국은 서복을 넘기지 않으면 이 실험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을 만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서인 그룹의 회장은 군사기업의 조직원을 용병으로 보내 중간에서 납치합니다.

하지만 서복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군인들을 제압하고 탈출해 기헌과 같이 도망치는데, 계획이 실패한 정보국은 이제 서복을 죽이려고 군인을 보냅니다. 서복과 기헌은 서로를 의지해 도망 다닙니다.


서복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은 새로웠습니다. 이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제한된 삶을 살던 때와 달리, 훨씬 넓은 세상에서의 일상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라면을 처음 맛본 서복이 계속해서 라면을 먹는 모습은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출처: 다음 영화)

그때 서복이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함께 간 곳은 서복이 태어난 고향이었습니다.

서복을 만드는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자 엄마인 임세은은 사고로 아들 한경윤를 잃었고, 자신의 난자로 복제 실험을 통해 태어는 것이 서복이었습니다.


바닷가 마을 한 성당 내의 '베다니의 집' 안에 마련된 봉안실, 경윤의 유골함 앞에 선 서복은 슬프면 울어도 된다는 기헌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서복은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서복은 어쩔 수 없이 연구소로 돌아갑니다. 세포분열 속도가 너무 빨라 24시간에 한 번씩 억제제를 맞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연구소 앞에서 정부 측 군인들과 싸우며 엄청난 힘으로 군대를 압도한 서복이지만,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한 이런 수많은 사람이 죽는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며 기헌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서복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외로움을 안 기헌은 서복의 바람대로 해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현대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대에는 전염병의 창궐과 기아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단기간에 죽는 일이 보건위생의 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상당히 극복되었습니다.

또 지진을 비롯해 태풍과 해일 등 자연재해로 인한 예기치 못하게 겪어야 했던 죽음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미리 감지하고 통신기술의 혁신으로 더 빨리 광범위하게 알리면서 앞서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술의 발전으로도 이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윤리학자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기술 의학 윤리: 책임 원칙의 실천』(Technik, Medizin und Ethik-Zur Praxis des Prinzips Verantwortung)에서 오늘날 기술은 “삶과 죽음, 사고와 감정, 행위와 고통, 환경과 사물, 욕구와 운명, 현재와 미래에 침투해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기술은 인간이 지구 상에서 영위하는 삶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현대 기술은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한다며 그 구체적인 이유를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형이상학적 물음의 제기’로 설명합니다. 그는 그 결과 책임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졌다고 강조합니다. (Hans Jonas, Technik, Medizin und Ethik-Zur Praxis des Prinzips Verantwortung, 이유택 역, 『기술 의학 윤리: 책임 원칙의 실천』(서울: 솔, 2005), 17, 41-50.)

(그림-과학)

즉 현대 기술은 그 결과를 추측할 수 없고 우연에 맡겨야 할 형편이며 때로 선하고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위협적인 요소가 들어 있을 수 있는 ‘결과의 모호성’이 있습니다.


또 ‘적용의 강제성’으로 과학기술에 의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행위를 통해 구체화되면 적용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고 지속적인 욕구로 자리 잡게 되면서 윤리적 부담을 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공간적 광역성’의 특징으로 현대 기술은 이전의 행동방식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에서 거대화되고 지구적으로 과거와 미래의 수많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윤리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기술의 영향력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지구 생명의 미래로까지 확대되므로 ‘인간중심주의의 파괴’가 요청되고, 가시적인 위협과 실제적인 파괴 조짐 그리고 수치심의 인식 속에서 전체와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다시 ‘형이상학적 물음의 제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술의 묵시론적 잠재력은 전통 윤리학에서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던 물음이기에, 다시 인류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을 던져야 현대 기술의 위험에 대해 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요나스는 이전의 기술이 소유와 상태, 도구와 숙련의 창고였던 것과는 달리 현대 기술은 사업과 과정, 역학적 동인을 특징으로 한다고 진단합니다. 즉 과거의 기술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우연에 의한 것이었고, 변화의 속도도 느렸습니다.

반면 현대 기술에서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됩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기술은 더 큰 만족을 얻게 하고, 이제 더 나은 만족을 위해 다시 새로운 기술을 낳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기술이 이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목적을 부여할 뿐 아니라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결과로 일상을 위협하는 위험의 정도가 과거보다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과학기술의 무한한 혁신과 발전, 그로 인한 삶의 변화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인간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편의성과 욕구의 충족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무시되거나 그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될 수 있어 현대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욱 요청됩니다.


인간 죽음이라는 명제적 진실

과학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인 ‘특이점’(singularity)은 1953년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이 처음 언급한 이래로 앨런 튜링(Alan Turing), 버너 빈지(Vernor Vinge),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등에 의해 주장되었습니다.


앨런 튜링은 인간 지능의 기계화를 목표로 미래의 컴퓨터가 지적 사유의 작업을 자동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버너 빈지는 인공지능에 의해 100만년이 걸릴 발전이 100년 안에 이루어질 시대가 열릴 것이고, 특이점을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낳는 현재와는 다른 자아 관념과 자기 인식을 가진 새로운 초인간적 존재의 출연과 연관시켰습니다.


그리고 레이 커즈와일은 인간은 생물학적 몸과 뇌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 신체 안에 혈액 세포 크기의 수많은 나노로봇이 무선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부족한 영양분을 자동으로 신체에 전달하고, 심지어 내부 장기의 기능을 대신해 인간이 신진대사 과정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2045년쯤이면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면서 불멸이 가능할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Ray Kurzweil, 『특이점이 온다』, 277-278.)


영화 <서복>에서 인간을 초월한 서복은 인류에게 불멸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서복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 사라집니다.

특이점에 이른 존재는 인간의 통제와 판단을 벗어나서 자기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에 어울리는 연구자와 그 결과물을 이용하며 편의를 활용하는 이용자의 윤리의식이 중요합니다.


단순 복제를 넘어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개량된 인간으로 등장하는 서복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류 의지의 상징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멸에 대한 목적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려는데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예입니다.


사실 서복 자신은 불멸의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총알을 피해서 괜찮을 뿐이지, 언제든지 차에 치이거나 총에 맞으면 죽습니다. 인간을 초월한 서복마저도 죽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다만 서복은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며 인간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물질을 인간에게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복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인간이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인간은 서복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잘못된 영화 속 상황은 결국 파괴와 멸망을 불러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낳은 현대 기술의 양면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서복-SEOBOK (5).jpg (출처: 다음 영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을 이미 오래전에 비판했습니다.

특히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신을 냉동해 다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저온 상태로 특수 건물에 보존하는 것처럼 죽음을 부정할 미래사회를 예상했는데, 이것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알코어(Alcor) 생명연장재단이 연구하는 인체냉동보존술은 시신을 액체질소가 담긴 영하 196도의 거대한 통에 보관해 나노의학과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로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 냉동상태로 보존합니다.


퀴블러 로스는 이런 미래를 예견하며 죽음은 “여러 면에서 좀 더 외롭고 좀 더 기계적이며 좀 더 비인간적인 것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Elisabeth Kübler-Ross, On Death and Dying, 이진 역, 『죽음과 죽어감』(파주: 청미, 2018), 40, 54-55.)


인간은 죽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유전공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과 기술은 이 명제적 진술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적인 존재로 인간됨을 지켜가며 세상과 더불어 자신을 보존하며 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keyword
이전 12화고객의 요구에 따른 맞춤형 인간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