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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09. 2021

주머니가 없는 수의와 메멘토 모리

1장 삶의 마지막 의(衣) - 죽음을 준비하다 3

옷은 종종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요즘은 자유복을 선호하지만, 하는 일이나 직업에 따라 입는 옷이 정해지는 경우들이 있지요. 일반적으로 학교, 관청, 회사 등에 소속된 사람들이 규정에 따라 똑같이 입는 옷인 유니폼(uniform)처럼 말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입는 조리복, 군인들이 입는 군복, 판사들이 입는 법복, 의사들이 입는 가운과 같은 옷은 그 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때로 조직에서의 역할에 따라 다른 옷을 입거나, 특정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는 옷이 있고, 반대로 입기 싫지만 입어야 하는 옷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감옥에서 수감자가 입는 수의(囚衣)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옷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주머니입니다. 주머니의 형태나 용도에 따라 옷의 모양조차 달라지니 주머니는 옷의 기능만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도 정말 중요합니다.      


주머니가 필요 없는 홀가분한 옷

개인적으로 목공 일을 하는 분의 작업복을 볼 때면 그 옷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져 보였습니다. 각양각색의 도구들을 다 집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주머니들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또 등산복을 보면 일상복과 다른 주머니들이 여럿 있습니다. 각종 장비를 갖춰야 하거든요. 

시장에서 상인들이 입는 옷에도 여러 개의 주머니가 있습니다. 돈을 받는 데로 넣고 거스름돈을 바로바로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옷에 있어 주머니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입게 될 한 가지 옷으로 주머니가 없는 옷이 있으니, 바로 수의(壽衣)입니다. 

모양은 좀 다르고 옷을 만드는 재료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옷만큼은 언젠가는 다들 입게 됩니다. 그런 유일한 옷이 수의인데, 이 옷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주머니가 없는 옷으로 거의 유일합니다.




평생 주머니가 많은 옷을 찾아왔지만, 수의를 선택할 때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주머니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넣을 것도, 특별히 간직할 것도 또 해야 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홀가분한 그런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입관, 국립민속박물관)

어떤 단체에서는 죽음교육을 실시하면서 ‘입관체험’을 한다고 합니다.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도록 관속에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그냥 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수의를 입습니다. 그만큼 ‘수의’는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입니다. 수의를 입음으로 정말로 죽은 것 같고 그리고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이지요.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보면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를 때 입는 장례식 옷이 수의와 비슷해 보입니다. 

단색에 간단한 디자인, 흡사 수의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기 위해 같은 옷을 입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괴로워 그렇게 같은 옷을 입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 옷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곧 가족의 슬픔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다’는 의미를 가진 이 라틴어는 여러 가지 깨달음을 전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공포나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이유가 아닙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함으로 우쭐한 마음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불필요한 욕심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면, 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면 빠지기 쉬운 집착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일어나는 마음과 몸의 변화입니다.     


맞이하는 죽음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아는 중에 자신의 죽음만 아니라, 남겨질 가족을 가장 밀도 깊게 생각하게 되는 공간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말기 환자가 이용하는 곳이니 죽음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말기 환자의 질환에 대해서는 <연명의료결정법> 제2조에서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생애말기에는 신체적·심리적 고통, 돌봄 부담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은 부족해서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생애말기와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임종을 앞둔 시기에도 고통 완화나 편안한 돌봄 대신 무의미하게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진료가 지속되면서 사망 전 의료비 지출이 높은 현실입니다.     


이에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환자와 가족을 돕는 제도입니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팀이 말기 환자의 통증 및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영적 고통을 경감시켜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연명의료를 이어가며 어떻게든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도록 돕는 것이지요.


호스피스(Hospice)의 어원은 라틴어 Hospitalis(guest), Hospitium(host)으로 ‘주인’이라는 뜻에서 ‘병원’의 의미로, ‘주인과 손님 사이의 따뜻한 마음’에서 이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소’로 의미가 변천해 오늘날의 호스피스란 말이 탄생했습니다. 

초기에는 여행자, 병든 환자 혹은 임종환자를 돌보는 활동이었습니다. (한국의학논문데이터베이스(KMBASE), ‘호스피스 완화의료’(Introduction to Hospice Palliative Medicine) 참고)




1967년 영국 런던에서 의사 시슬리 선더스(Cisly Saunders)가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St. Christopher's hospice)를 개설하고 현대의학을 호스피스에 접목시키면서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완화의료 개념을 확립합니다. 

그녀는 통증 조절을 위한 진통제를 통해 불치병이나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돌봄을 제공하면서 환자와 그 가족에게 관심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후 말기 환자에 대한 의학적인 치료와 연구가 발전하면서 완화의학(palliative medicine)이란 전문분야가 생깁니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적극적이고 총체적인 돌봄으로 통증과 다른 증상들,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문제들을 조절하는 것을 완화의학이라고 정의하고, 그 목표는 환자와 가족이 최상의 삶의 질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림-호스피스)

세계보건기구는 호스피스에서 이루어지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의 범위를 2002년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임종 6개월 이전의 환자에서 2014년 제58차 총회에서는 ‘만성질환’으로 그리고 질환 진단 이후 언제든지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합니다. 

동시에 호스피스 기관만 아니라 다양한 제공 장소에서 다양한 제공체계에 의한 서비스를 장기요양제도 등과 연계해 제공하는 것으로 확장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호스피스·연명의료 서비스는 연명의료제도의 안정적 정착과 양질의 호스피스 서비스 확충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2019. 6. 24)에 따라 시행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에 보고한 <2018-2019 중앙호스피스센터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암으로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경우,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을 희망한 경우가 2017년 70.6%에서 2019년 89.8%로 증가했습니다. 10명 중 9명이 해당합니다.


또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인식은 35.9%(2017년)에서 11.9%(2019년)로 급격히 감소했고,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은 31.8%(2017년)에서 40.4%(2019년)로 증가했습니다. 곧 죽을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 센터, http://www.hospice.go.kr/)


죽음을 생각하며 준비할 시간

말기 환자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기회는 종종 있습니다. 큰 병에 걸리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한 경우입니다.

또 뉴스나 주변 사람을 통해 누군가 죽는 소식을 접하는 경우 그리고 장례식장에 갔다 오는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죽은 이후의 나의 재산에 대한 처리를 적은 ‘유언장’을 작성한다든지,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향을 밝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자서전을 쓰거나, 사용하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누구라도 죽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1949년 8월 ‘문예’(文藝)지에 발표된 염상섭의 『임종』은 임종 직전의 환자와 가족의 심리를 잘 풀어놓았습니다. 환자의 살고자 하는 마음, 죽음이 두렵고 거부하고 싶은 태도가 곳곳에서 생생하고 나타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이겠지요.  (세계문학전집 10, 『한국단편문학선Ⅰ』, 믿음사(2017), 384쪽.) 

 

“그러나 금시로 드르렁 하고 코 고는 소리가 나다가 그 소리에 소스라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본다. <…응, 잠이 들었던 게로군!> 그는 죽는 것이 아니었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잠이 들었다가 그대로 숨이 넘어가지나 않는가 하여 잠이 드는 것도 겁이 나고 싫었다.”


소설은 한 가장이 뇌일혈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환자는 처음부터 불만인데, 그는 진통제를 비롯한 약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병을 고치려고 합니다. (세계문학전집 10, 『한국단편문학선Ⅰ』, 믿음사(2017), 378쪽.)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아이들의 교육과 취직이며 생활 방도를 의논한 끝에 이러한 유언도 하고 어떤 때는 유골을 갈아서 정한 산에 올라가 날려 보내도 좋겠다는 지나는 말도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유언은 언제나 한 번은 죽을 것이니 이 기회에 미리 자기의 의사 표시를 해두려는 것이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결국 의사와 가족의 설득에 못 이겨 환자는 퇴원을 결심하는데, 아쉽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인의 장례에 대한 논의의 핵심, 그것은 고인의 유언도, 종교가 무엇인지도 아닌 비용이었습니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장례식 1건당 평균 1,381만 원을 지출해 1인당 GDP의 49%가 넘는다고 합니다. 반면 유럽에서 화장률이 가장 높은 네덜란드에서는 1인당 GDP의 10~15%만 장례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림-오낭(염습할 때 시신의 머리털과 손발톱, 치아를 담는 주머니), 국립민속박물관)

죽음은 피하고 숨기기만 할 것이 아닌,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며 준비해야 할 중요한 순간입니다. 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불필요한 일이거나 일부 사람의 현학적인 대화의 주제도 아닙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상기하는 시간입니다.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지위와 명예, 나의 존재 자체도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지요. 영원할 것 같은 건강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확신이 사라집니다. 

가늘어지는 머리와 침침해지는 눈까지 신체적인 변화는 생명의 유한함을 몸으로 깨닫게 합니다. 


돈만큼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급격한 기후변화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출몰에 내가 알던 지식과 삶을 위한 준비도 영원하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 옷인 수의가 이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삶이란 나의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우는 것임을요. 결국에 흙이나 불을 만나 사라져 버릴 이 옷은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게 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고, 사랑의 기억을 남기고 갈 수 있도록 따뜻한 관계를 준비하도록 말이지요. 

죽음을 생각함으로 삶의 보다 중요한 것에 마음을 두게 하는 옷이 바로, 수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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