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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10. 2021

기념사진과 영정사진(影幀寫眞)

2장 삶의 마지막 식(式) - 죽음을 기념하다 1

가족이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날인데, 대표적으로 돌잔치, 졸업식, 결혼식, 칠순이나 팔순 등이 손에 꼽힙니다. 

각각의 날들은 생애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남깁니다. 

(그림-남자 영정사진)

이런 기념사진은 대부분 예식이 끝난 후에 찍는데, 기념사진의 중심에는 주인공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주변에 둘러 모입니다.     


생애 마지막을 기념하는 시간

이런 기념예식을 위해서는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축하하기 위해 모이는 손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예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 시간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 주어서 고맙고 축하한다는 의미와 함께 이를 위해 수고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모두에게 가슴 뿌듯한 시간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100일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면서 하는 잔치, 백일잔치와 돌잔치는 유약한 생명이 잘 살아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 아이를 돌본 부모의 수고를 칭찬하는 시간입니다. 

성년식은 이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나이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예식입니다. 권리와 함께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식은 새로운 가족을 이룰 두 사람을 축하하며 이 가족이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칠순이나 팔순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해주셨음을 감사드리는 예식입니다. 앞서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신 그분의 삶에 존경을 표하는 소중한 예식입니다.     




모든 예식에는 주인공이 꼭 참석합니다. 

참석해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기억에 남을 한마디 말도 합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요. 주인공이 없으면 예식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주인공이 참석은 물론 함께 이야기하지 못하는 예식이 있으니 바로 생애 마지막 예식인 장례식입니다.


종종 생전 장례식에 대한 소식을 신문기사와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살아서 하는 장례식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식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 어쩌면 가장 뜻깊은 예식이라 싶습니다.  


모든 장례식의 주인공이 고인(故人)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고인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꽤 많이 참석한다는 것이지요. 자주 보던 가까운 사람만 아니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 심지어 서로 불편했던 사이의 사람도 모입니다. 이처럼 장례식은 사람을 모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고인이 살아 있는 가족에게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함께 모이게 하는 연결고리가 됨으로 가족 간의 관계가, 사람들 사이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장례식의 주인공은 이 예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또 누가 오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장례식의 주인공은 평소 밝게 웃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영정사진이라고 부르는 액자 속 사진으로 말이지요.     


죽음의례의 변화가 가져온 것들

오래전 신문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장례식장에서 소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위.每日新報社, 1943. 10. 01/ 아래.馬山日報社, 1963. 09. 06)  

(그림- “지나친 범절의 폐 결혼식과 장례는 간략하게”)
요즘 같은 때도 초상집에 가보면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야단법석이다. 지나친 음식을 차려서 먹고 술주정을 하는 등 때로는 싸움까지 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별세한 사람의 혼이 있다면 도리어 귀찮아할 것이다.

화장장에서 거행된 장례예식까지 따라왔던 걸인 13명이 음식을 많이 안 준다고 문상객에게 트집을 부리다 드디어는 이들 13명의 걸인들은 문상객을 집단으로 폭행까지 가하여 1주일의 상처까지 입힌 걸인 집단폭력사건이 일어났다.
- “葬禮서 푸대접 트집 乞人들 集團行悖 : 問喪客에 傷害까지 13名中 主動三名 拘束”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1969년 1월 제정·공포됩니다. 이 법률은 가정의례를 행함에 허례허식을 없애고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청첩장 발송, 신문 부고, 화환 진열, 답례품 증여, 굴건제복 착용, 만장 사용, 주류 및 음식물 접대 등 7개 항목에 대해 금지 조항을 두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처벌 규정을 두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내용에 수정을 거쳐 1973년 벌칙 규정을 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고 대통령령으로 공포합니다. 

여기서 혼례, 상례, 제례, 회갑연, 주상, 제주에 대한 준칙을 설명합니다. (연합뉴스, 1991. 01. 23)   


보사부는 23일 허례허식을 추방하고 절제하는 사회분위기의 확산을 유도하기 위해 오는 2월 1일부터 혼. 장례식 때 기준에 어긋나게 많은 화환이나 조화를 진열하는 혼. 상주를 고발하고 업소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하며 보낸 사람에 대해서는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혼, 장례식장의 화환, 조화 진열기준은 예식장 2개, 장례식장 10개이다.

  

그리고 2008년 10월 14일에 공포·시행된 것이 <건전가정의례준칙>입니다. 

여기서 ‘가정의례’는 가정의 의례로서 행하는 성년례, 혼례, 상례, 제례, 회갑연 등을 가리킵니다(제2조). 


상례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장삿날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망한 날부터 3일이 되는 날로 하고(제12조), 상복은 따로 마련하지 아니하되, 한복일 경우에는 흰색으로, 양복일 경우에는 검은색으로 하고, 가슴에 상장(喪章)을 달거나 두건을 쓴다고 합니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평상복으로 할 수 있다(제14조)고 상복에 대해서 명시합니다.     

(그림-가정의례준칙 홍보물,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날 ‘상’(喪, 잃을 상), ‘장’(葬, 장사지낼 장), ‘제’(祭, 제사 제)의 죽음의례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연명의료가 가능해지면서 어디서부터가 죽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겼습니다. 

또 대부분 집이 아닌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다 보니 가족이 ‘상’(喪)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합니다.


고인을 추억하며 기억하는 의식

고령화라는 사회적 상황을 일찍부터 경험했던 일본에서는 ‘종활’(終活, 임종 준비 활동), ‘직장’(直葬, 장례과정을 간소화하는 것) 그리고 ‘가족장’(家族葬,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지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장례)과 같은 장례문화가 있습니다.


‘직장’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밤샘이나 고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화장해 하루 만에 장례를 끝내는 것입니다. 비용적인 부분과 더불어 홀로 살다 죽음을 맞는 노인들이 많아 장례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리고 ‘가족장’은 장례식 참석인원을 미리 소규모로 확정 지어 두고 장례지도사가 그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고인의 장례식을 준비합니다. 적은 비용과 가족과 친지가 장례식 준비에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고인만을 위한 장례식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1인 가구의 증가와 수명연장으로 인한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장’(葬)에 있어 편의성이 강조되고 의례는 간소화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꼭 장례식장을 찾지 않고 인터넷 추모관을 통해서도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어려운 시기에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접촉하지 않는 언택트(noncontact)로 슬픔을 나누고 조의를 표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시대에 장례식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고, 사람들은 추모의 글을 인터넷 댓글로 올립니다. 예식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손님과 예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이들도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시자와 요의 소설 『아마리 종활 사진관』은 주인공 구로코 하나가 할머니의 유언장에 적힌 재산상속 내용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내용입니다. 그녀가 찾아간 아마리 종활 사진관은 ‘영정 전문 사진관’입니다. 


여기서 ‘종활’(終活, 슈카츠)이란, ‘인생을 마무리 짓기 위한 활동’의 줄임말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태도와 그와 관련된 행동을 가리킵니다. (아시자와 요, 『아마리 종활 사진관』, 엘리(2017), 174쪽.)    


‘마칠 종’(終)에 ‘활동’ 할 때 ‘활’(活)을 붙여서 ‘종활’이에요. 인생을 아쉬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예를 들면 유산상속과 관련된 확실한 유언장을 마련한다거나 묘지를 준비한다거나 원하는 장례식에 관해 가족에게 의견을 전해 두기도 하죠. 그중에, 조금 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생전사진이라고 부르는데, 자기 영정사진을 살아있는 동안 찍어두는 활동도 포함돼요.

    

사람들은 장례식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유가족은 추모객들과 함께 슬픔을 다스립니다. 이 장례식에 주인공인 고인은 사진, 즉 영정사진으로 참여합니다. 비록 그 자리에 실제로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장례식에 모인 이들은 사진으로나마 고인을 추억하며 이 시간의 의미를 찾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이제 사람들에게 잊어지고 사라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인은 사진과 여러 추억을 통해서 여전히 존재하고 기억됩니다. 삶의 마지막 의식인 장례식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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