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삶의 마지막 식(式) - 죽음을 기념하다 3
첫째 아이가 얼마 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졸업사진을 찍는다며 이런저런 준비에 분주했습니다.
평소에 입지 않던 옷도 입어보는데, 사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신경을 쓰며 한편에서는 설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옷을 챙겨주고 간단한 화장도 알려줍니다. 아빠는 구경만 할 뿐인데,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역할들을 엄마가 도맡아 해 줍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졸업식, 결혼식, 기타 여러 행사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행사를 위해서는 장소를 예약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사진사와 약속을 잡고 행사에 입을 옷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국가 방역조치에 따라 이미 준비된 행사들도 할 수 없어 취소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한 이유
‘준비’(準備)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필요한 것에 맞추어 갖춤’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주변 조건 등을 미리 갖춤’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준비가 꼭 필요합니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기회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닐 때는 더욱 준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준비의 시작은 마음먹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동시에 준비의 끝도 마음가짐으로 마쳐집니다.
여기서 처음 마음이 시작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하다면, 마지막 마음은 일을 다 마친 후의 만족함을 위한 마음입니다. 주어진 결과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특히 마지막 마음이 중요한 것은 행사나 예식을 진행하는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요.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이 마음이 있으면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좀 아쉬워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 기뻐하려면 이 마음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래야 행사가 멋지게 마쳐질 수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예식인 장례식에도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주변 사람에게 부고 소식을 전하는 것부터, 챙겨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장례식에 대한 준비는 실제 장례식만을 생각해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나서 시작하는 것으로는 아쉬움이 남기 쉽습니다.
가족 모두를 위한, 제대로 준비된 장례식이 되기 위해서는 삶의 시간에서부터 준비가 필요합니다. 삶과 죽음에 있어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부터 말이지요. 좋은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실제적인 준비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조문보’(弔文報)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인의 살아온 인생을 가족의 회고를 통해 정리한 짧은 팸플릿 형식의 문서입니다.
고인의 생전 사진으로 만든 간단한 영상도 훌륭한 조문보가 될 수 있습니다.
조문보에는 고인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어 조문객이 고인의 삶을 이해하고 진심 어린 애도를 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 고인의 추도식에서 추도문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고인이 유명인사가 아니어도 조문보는 필요한데,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남긴 아름다운 일화를 담은 조문보는 조문객 모두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것은 고인의 삶을 추억할 수 있게 하는 뜻깊은 문서로 고인을 위한 마지막 인사가 아름다울 수 있도록 조문보를 준비해 보는 것은 뜻깊은 장례식을 위한 하나의 실제적인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와 연명의료결정법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습니다.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국가별 ‘죽음의 질’에 대한 조사에서 한국은 OECD 40개국 중에서 32위였다는 발표와 함께 말이지요.
1위였던 영국은 그 전 5년여에 걸쳐서 ‘좋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얼마나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느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역시 준비하는 일이 앞서 있었습니다.
왕실, 정부, 민간단체가 편안한 죽음에 대해 준비하며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습니다. 영국은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첫째는 익숙한 환경에서, 둘째는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셋째는 가족 친구와 함께, 넷째는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으로 꼽습니다. 이를 위해 의료 인프라, 정책, 사회 인식 등 다방면에 걸쳐 준비했습니다.
이런 좋은 죽음, 존엄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예식인 장례식에 있어 소중한 준비가 됩니다.
가족에게 남기는 마지막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되거든요. 연명의료를 통해 고통 중에 생명을 유지하는 모습이냐, 아니면 자신의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따뜻한 마지막 인사와 함께 좋은 인상을 남기며 마지막 시간을 가지느냐는 이후 장례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화려한 장례식보다도 따뜻한 공감과 소통 속에서 예식이 이루어지는 멋진 장례식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임종을 앞두고 연명의료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대비해 사전에 자신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한 단계에서는 의식이 없거나 약물치료 등으로 혼미한 상태가 되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맞게 될 마지막 단계의 의료적 처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미리 밝혀놓는 것이 당사자의 고통은 물론 치료를 주관하는 의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미리 작성하는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은 약칭 <연명의료 결정법>이라고도 하는데,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에 따라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2009년 76세의 김 할머니가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하던 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 장치에 의존해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습니다.
이때 할머니의 가족은 평소 할머니의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고,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치료의 지속 여부 및 치료 내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 법이 시행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2호)
이와 관련한 법적 서식으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가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 둘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하면 됩니다. 등록기관이 이것을 연명의료 정보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함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후 회생의 기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인 ‘임종과정’에 있음을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중단되게 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자신의 의사를 평소에 가족에게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의료기관에 있는 말기 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지 않고 중증 질환으로 입원한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작성하게 됩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https://www.lst.go.kr/)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말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73만 명이 넘는 사람이 등록했고, <연명의료계획서>에 등록한 사람도 5만 명이 넘습니다.
이러한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경우가 12만 건에 이릅니다. 위의 두 서식은 <연명의료 결정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할 때 만나게 되는 것들
다음으로 ‘유서’(遺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는 평소 작성한 <사전장례의향서>를 통해 앞으로 있을 장례식을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법적 서식은 아니지만, 여러 단체에서 예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언’은 죽음에 이르러 부탁하여 남기는 마지막 말입니다. 법적으로는 주체적으로 작성한 공식적인 문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여 행하는 단독의 의사 표시”라고 합니다. 만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때 유언의 방식으로는 자필 증서, 녹음, 공정 증서, 비밀 증서, 구수(口授) 증서 등이 있습니다.
유언이란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밝히는 문제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가족에게 전하는 소중한 말을 남기는 것입니다.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후회가 없도록 꼭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지요.
일상의 많은 일들의 시작과 끝이 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말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이 말은 참 소중합니다.
부고(訃告)의 범위, 장례 형식과 절차, 매장과 화장의 여부, 장지 등에 대해 미리 작성하는 사전장례의향서는 남은 가족들이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장례식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 이것을 통해 고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선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묘비명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묘비명은 단지 자신의 묘비에 적을 기록만 아니라, 자신의 지난 삶을 스스로 성찰하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미리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죽음을 위한 준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를 돌아봄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묘비명은 가족을 비롯하여 가까운 지인 등이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기록합니다. 그런데 비문을 스스로 직접 쓰는 경우를 ‘자찬묘비명’이라고 합니다.
‘자찬묘비명’(自撰墓碑銘) 또는 ‘자명’(自銘)이라는 것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소회를 남기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맞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선비로서의 삶을 다잡고자 하는 하나의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스스로 쓴 묘비명인 자찬묘비명(自撰墓碑銘)에서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가 유배에서 돌아온 지 4년 뒤인 회갑을 맞을 무렵,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지었습니다.
임금의 총애 한 몸에 안고 궁궐에 들어가 곁에서 모셨네. 임금의 심복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섬겼네. / 하늘의 총애 한 몸에 받아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쳤네. 육경(六經)을 정밀하게 연구해 미묘한 이치를 깨치고 통했네. / 간사한 무리들이 기세를 떨쳤지만 하늘이 너를 사랑해 쓰셨으니 잘 거두어 간직하면 장차 멀리까지 날래고 사납게 떨치리라.
또 한 사람,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자찬묘비명입니다.
나면서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도 많아 중간에 어찌하다 학문을 즐겼는데, 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받았던고! 학문은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더 주어졌네. 나가서는 넘어지고, 물러서서는 곧게 감추니, 나라 은혜 심히 부끄럽고 성현 말씀 진실로 두렵구나. 산은 높고 또 높으며 물은 깊고 또 깊어라. 관복을 벗어버려 모든 비방 씻었거니, 내 마음을 제 모르니 나의 가짐 뉘 즐길까! 생각건대 옛사람은 내 마음 이미 알겠거늘, 뒷날에 오늘 일을 어찌 몰라줄까 보냐. 근심 속에 낙이 있고 낙속에 근심 있는 법, 조화 타고 돌아가니 무얼 다시 구하랴.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소설 『페스트』(La Peste)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은 죽음이란 존재가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고 또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카뮈(Albert Camus), 『페스트』(La Peste), 김화영 역, ㈜민음사(2011), 401-402쪽.)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여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죽은 사람은 모두 죽음을 이해하고 대하는 태도에 따라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거나 평안한 모습을 또는 당황하거나 준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지식인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정서를 관리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의지적으로나 행동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죽음교육은 인생에서 경험해야 할 필수 교육과정입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이라면 여러분은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사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하며 동시에 오늘을 제대로 살게 합니다.
분명 꼭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꼭 해야 할 일 그리고 1분, 1초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소중한 일에, 정말 가치 있는 일에, 가장 행복한 일에 사용하겠지요. 자신의 삶의 마지막인 장례식에 대한 준비는 오늘의 삶의 깊이와 밀도가 충만해지는 기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