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삶의 마지막 주(住) - 죽음을 살다 1
EBS 방송의 ‘건축탐구 집’은 건축 전문가와 함께 집을 둘러보면서 집주인의 삶과 집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입니다.
자연과 벗해 지은 집, 도심 한복판의 작은 공간에 자리한 집,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 2막 인생을 시작하며 마련한 집, 컨테이너로 만든 나만의 공간으로서의 집, 마당을 여러 가구가 공유하는 집까지 곳곳의 다양한 집을 소개하는데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 소개된 집들은 단지 건물로서의 집만 아니라, 삶의 이야기가 있는 사연으로 탄생한 집들이라는 점이 더 끌리게 했습니다.
또 다른 친밀함을 품은 장소
일상의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집입니다.
‘역세권’, ‘숲세권’ 등 주변 환경에 따른 선호도가 있고, 코로나19 시대에는 업무를 보는 사무공간도 되지만, 역시 집에 있어 중요한 역할은 휴식과 수면입니다.
잠은 식사와 운동과 함께 건강의 핵심 기둥, 그 이상으로 건강의 토대가 됩니다.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잠을 자면서 보내기에,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곳도 집이니, 의식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 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집에서의 질 좋은 수면은 건강에 깊은 영향을 미치므로 좋은 침대와 침실 환경을 잘 갖추는 것에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필수겠지요.
내가 잠자는 집이 숙박으로서의 건물 이상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집은 친밀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인데, 그래서 집은 따뜻한 돌봄과 양육을 포함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에 잠드는 곳을 생각하다 ‘묘지’(墓地), 다른 표현으로는 ‘장지’(葬地)가 생각났습니다. 물론 잠깐 잠들다 다시 깨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영원히 잠드는 곳입니다.
묘지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 ‘분묘를 설치하는 구역’이라고 정의하는데, 즉 시신이나 유골을 매장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구역을 가리킵니다.
묘지는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이 설치·조성 및 관리하는 ‘공설묘지’와 ‘사설묘지’로 구분되고, 사설묘지에는 ‘개인묘지’, ‘가족묘지’, ‘종중·문중묘지’, ‘법인묘지’가 있습니다.
묘지는 녹지지역이나 상수원 보호구역처럼 설치 및 조성이 제한되는 지역이 법률로 정해져 있습니다. 크기도 규정하고 있어 그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요.
그리고 정해진 설치기간을 지난 분묘의 경우 시설물을 철거하고 매장된 유골을 화장하거나 봉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토의 종합적인 관리와 다양한 활용을 위해 그리고 특정인이 과도하게 묘지를 만들거나 독점적으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률이 한계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이 건물로서의 의미 이상을 담고 있듯이, 묘지도 단지 시신이나 유골을 매장하는 장소의 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지거나 느낄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신경을 씁니다. 누구라도 고인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좀 더 주변 환경이 좋고 넓은 곳에 매장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여러 기념물도 세웠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며, 부모 또는 자녀이기에 그런 마음이겠지요.
무덤을 만드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이나 시신이 끼칠지 모르는 해로운 영향을 막겠다는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위생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묘지는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은 현세의 권력을 내세에서도 그대로 유지할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산시성의 산기슭에는 동서 길이 485미터, 남북 길이 515미터, 높이 7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산에 가까운 이 거대한 무덤 속에는 흙으로 빚은 백성과 병사, 말과 전차 모양 형상이 수천 점 배치되어 있습니다.
진시황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중국 역사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중국 대륙을 호령하면서도 죽음만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늙는 것을 막으려고 중국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로도 신하들을 보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해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실패하자 자신이 묻힐 거대한 무덤을 건설합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를 무덤 속에 재현했습니다.
또한 무덤은 고인을 기억함으로 죽은 이후에도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된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 아니라, 동시에 후손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명당’(明堂)에 묘지를 쓰면 자손이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는 오래된 믿음의 영향입니다.
일반적으로 명당은 사람의 시신을 묻는 ‘묘소’(음택, 陰宅)나 사람이 살 ‘집’(양기, 陽基)으로 좋은 곳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도 좋은 땅을 소유하는 것은 부의 창출과 증식에 효과적인 한 방법이 되어 사람마다 관심이 높습니다.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주택 값 상승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묘지를 정할 때 풍수지리에 근거해서 명당을 찾는 것도 그런 인간의 소유 확대와 미래에 대한 대비라는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시작됩니다. 살았을 때는 좋은 환경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자손들이 잘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바람이지요.
그런데 혹시 자녀와 후 세대가 잘 살기를 바라는 인간 심리와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누군가가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 하지 않을지 신중해집니다.
개인적인 안위가 아닌 공동체의 유익을 추구한다면, 또한 너와 나를 분리함으로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경계한다면 그것이 일상을 사는 집이든 또는 마지막으로 살게 될 집인 묘지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된 환경에 따른 선택의 요소들
그런데 오늘날 묘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잘 맞는 곳보다는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이 용이하며 집과 가까운 곳을 선호합니다. 묘지로 성묘하러 가는 명절에 복잡한 도로에서 고생할 일이 부담스럽고, 매번 벌초 등 살펴야 할 일들이 번거로운 이유에서지요.
또 매장보다 화장이 월등이 많아지고 보편화되면서 크고 다양한 석상을 세운 무덤보다는 봉안당과 같은 화장한 골분을 모아 둔 유골함을 모시기에 좋을 데를 찾습니다.
당연히 잠시 쉴 수 있고 식사나 모임을 할 수 있는 부대시설을 갖추었는지도 살피게 됩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공간, 다양한 일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선택을 받습니다.
달라진 삶의 마지막 집에 대한 선택 기준입니다.
2015년 10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의뢰해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장례문화 및 장사제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는 매장을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 ‘묘지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가 38.1%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서 ‘전통적 관습 및 선례를 존중하기 때문에’(30.2%), ‘후손들이 성묘를 할 수 있기 때문에’(15.9%), ‘화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12.7%), ‘종교적 이유 때문에’(3.2%) 순이었습니다.
매장을 하는 이유가 적극적인 욕구보다는 전통적인 관습이나 이미 준비되어서 사용한다는 소극적인 성격이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묘지의 경우 사용기한이 법적으로 정해져 더욱 그렇습니다.
이처럼 고인을 모시는 방식에 있어 사람들의 생각과 고인을 모시는 방식이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현실적으로 변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성한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본인의 장례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화장 후 산골’ 30.3%, ‘화장 후 봉안당’ 26.4%, ‘매장’ 17.5%, ‘화장 후 자연장’ 14.8%로 나타났습니다.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응답도 8.9%나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계에서 보듯 화장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화장 후 산골이 봉안당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연령 군별로는 연령이 적을수록(65-69세) 봉안당보다 자연장(17.6%)과 산골(31.3%)을, 남자 노인에 비해 여자 노인이 산골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봉안당과 비교했을 때 산골은 배우자가 없고, 소득이 적으며, 기능 제한이 있는 노인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 일정 부분 경제적인 상황이 장례방법의 선택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연장을 선호하는 경우,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깨끗하고 친환경적 자연장법’(35%), ‘절차가 간소하고 시간이 절약되는 편리성’(27%), ‘사후 관리가 용이’(25%), ‘저비용’(5%) 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죽음의 공간이 소통과 교제의 장소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 15년 이상 런던 지역의 집들을 쇄신하는 데 헌신해온 폴 키드웰(Paul Keedwell)은 『헤드 스페이스』(Headspace)에서 건물과 그 사이에 놓인 공간들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폈습니다.
저자는 건축물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는 ‘건축심리학’(Architectual psychology)의 관점에서 건물과 공간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예술적인 부분과 실용적인 부분을 함께 고려하면서 집의 내부로부터 공공건물, 공원, 병원 그리고 광범위한 도시환경에 이르기까지 삶의 공간들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삶의 끝자락에 머무는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 등을 다루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죽음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인식 속에서 특별히 메기즈 센터(Maggie’s Centres)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이 센터는 1995년 암으로 사망한 건축학도 메기 케직 젠크스의 이름을 딴 호스피스 시설입니다.
메기는 암 진단을 선고받고 병원 복도에 홀로 남겨진 후 앉아서 충격을 정리할 아무런 공간이 없다는 경험을 합니다. 이에 자연과 빛 그리고 가족과 방문객이 머물기 좋고 개인적인 공간이 제공되는 메기즈 센터가 유명 건축가들에 의해 여러 나라에 탄생합니다.
저자는 공간이 주는 치유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폴 키드웰(Paul Keedwell), 『헤드 스페이스』(Headspace), 파우제(2017))
“자연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궁극적으로 다양한 의료 건물의 디자인은 이런 요인들과의 접근성을 제공하는 정도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햇빛과 정원을 향한 접근성과 방문객들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는 화장시설에 있어서도 특별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시신을 화장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슬픔을 받아내고 위로를 펼쳐야 하는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서경덕과 김용승은 연구에서 혐오시설의 경우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건축학적으로 ‘형태요소’, ‘빛’, ‘수 공간’의 고려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서경덕·김용승, “화장시설의 상징 표현 특성과 적용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제29권 4호(2013))
형태 요소에 있어서 주변 환경과 맥락을 잇는 자연친화적인 형태는 혐오시설로서의 시각적 자극을 덜어주어 감정 순화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빛은 공간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으로 유도될 때 공간을 보다 풍부하게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 공간에 있어 평면으로 고여 있는 물은 고요함과 안정감을 주고 고인과의 기억을 되새길 회상의 시간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매장이 어려워지면서 묘지보다는 봉안당이나 자연장을 선호합니다. 화장과 함께 대세로 떠오른 봉안당도 단지 유골함을 잘 보관하는 것만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IC칩이 내장된 회원 카드로 체크하면 화면에 유골함의 사진이 나오고 곧이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추모객 바로 앞에 유골함이 도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스마트폰 안에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묘지를 조성할 것이라고도 하는데,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고인이 좋아하는 장소나 유골을 뿌린 곳을 등록해두면 이후 그곳을 찾아 프로그램을 작동했을 때 현장을 배경으로 고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홀로그램을 통해 고인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도 등장이 예상되는 새로운 형태입니다.
이처럼 삶의 마지막 집이 고인을 모시는 것만 아니라, 유가족까지 고려한 공간으로 인식이 새롭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유가족과 고인과의 관계를 보다 깊게 하고 좋은 기억을 갖게 합니다.
실제로 보거나 만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형태와 방법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시켜 줍니다. 더욱이 빛과 자연과의 교감은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슬픈 현장인 죽음의 공간마저도 소통과 교제의 공간으로 새로운 치유와 회복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