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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14. 2021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곳, 묘지(墓地)와 웰다잉

3장 삶의 마지막 주(住) - 죽음을 살다 3

영화를 보다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부모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앞에서 이미 고인이신 부모님에게 말을 건네거나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어냅니다.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한참을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어 삶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리고 해결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고향을 생각하면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의 하나가 무덤입니다.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고향이란 부모님이 계신 곳이고 또 고향은 무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자리한 묘지

과거에는 대부분 매장을 하면서 고향의 산천에 묻혔고, 그곳은 지나가던 사람이면 누구라도 잠시 쉬며 머무는 장소였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삶의 마지막 집인 무덤은 고인을 모시는 특정한 장소와 공간으로 한정되고 있습니다. 즉 일상의 삶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된 것이지요. 


그리고 꽉 막힌 복잡한 길을 인내하며 가야 하는 고향 길, 벌초를 비롯해서 무덤을 돌봐야 하는 일들까지 이제 고향을 찾는 것은 그리움과 뿌듯함보다는 부담스러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무덤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림-묘지(墓誌,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 등을 기록하여 묻은 판석(板石)), 국립민속박물관)

세계 각국의 1년간 평균 성묘 횟수를 조사해 보니 일본이 8회, 미국이 4회, 유럽 등에서는 대체로 연평균 10회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연평균 1.5회를 밑돌고 있다고 하니, 명절에는 누구라도 찾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는 거의 찾지 않는 것이지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먼저는 일상의 삶이 너무 바빠서 그 먼 곳까지 찾아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대부분 멀리 지방에 무덤이 있거든요. 또 시간을 내서 찾아 가도 묘지 앞에서 잠시 고인을 생각하며 서있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점점 찾아가는 일이 적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효 정신을 강조해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찾아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고 현대인의 삶입니다.


이런 삶과 사회의 변화 속에 이제 죽음이라는 주제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일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죽는다는 말을 자주, 일상에서 너무 쉽게 하면서도 말이지요. 그만큼 우리의 삶에 죽음은 피하고 싶고 숨기고 싶은 주제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그 결과 죽음이라는 용어는 점점 일상과는 무관한 추상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거나, 가상의 세계인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이 실제가 아닌 허상의 이미지로 더 쉽게 그리고 더 자주 접합니다. 

오늘날 위기 사회가 되면서 일상에 수많은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은 무뎌지고 곧 잊어지며 죽음 없이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갑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은 1924년 ‘개벽’ 6월호에 발표되었는데,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비참한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인공 김 첨지는 인력거꾼으로 며칠간 허탕만 치다가 어느 날, 연달아 큰돈을 법니다. 그는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들어갈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내는 기침으로 쿨룩거린 것이 한 달이 넘었지만, 약 한 첩 써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나올 때 앓아누운 아내가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었던 생각이 떠올라, 김 첨지는 계속되는 행운에도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김 첨지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내를 향해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아내의 누운다리를 발길질 하자 나무 등걸 같은 느낌이 전해졌고, 아기 개똥이의 울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김 첨지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세계문학전집 10, 『한국단편문학선Ⅰ』, 믿음사(2017), 69쪽.)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죽음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고 또 모든 것이 소멸되는 삶의 부조리가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을 갖습니다.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의 소중함이 절절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리고 직면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필연성 앞에서 죽음 이후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삶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고인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돌아보면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말이지요.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무관한 일로 여겨지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인이 경험하는 오늘의 상황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새로운 접근

이러한 변화된 사회적인 상황을 반영한 한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8-2022 제2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18년 3월 21일)입니다. 

앞서 제1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13-2017년)이 국가의 전체적 장사시설 기반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그 초점이 변화된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급속한 고령화와 1인 가구 및 고독사(무연고 사망자)의 증가 추세로 국가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해졌습니다. 

묘지를 관리할 후손의 부족, 장사에 있어 편리성의 추구 및 친환경에 대한 관심 증대로 화장 중심의 장례문화의 확산, 그리고 자연장 선호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게 된 요인입니다.


이 보고서는 ‘아름다운 마무리, 품위 있는 친자연적 장례문화 확산’라는 목표 아래 4개 핵심 정책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장사시설 인프라 확충'입니다. '친자연적, 수요자 맞춤형 장사시설 조성'을 위해 조경 보완 등 공간 재구성과 지역 공원화, 명소화를 추진합니다.


둘째는 '장사 관리체계 및 제도 개선'입니다. 기존의 획일적인 장사방법에서 산골 등 변화된 장례문화 수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합니다.


셋째는 '대국민 장사서비스 질 향상'입니다. 이 중에서 '국가재난대비 지정장례식장 운영'은 몇 년 사이에 있었던 대형 사고에 대한 부족한 대응을 보안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넷째는 '국민의식 개선'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장례문화 조성', '웰다잉 장례문화 확산', '친자연적 장례문화 대국민 홍보 강화'를 추진합니다. 

장묘 공간을 생활공간 가까이 설치하여 추모와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여론주도층이 참여하는 웰다잉 문화로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제2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을 통해 화장률 90% 및 자연장지를 30%로 늘리는 목표를 세우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장례는 문화이고 삶의 습관이기에 목표를 수치로 세운다고 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장사 관련법 외에 산골 등 다양한 장사 방법에 대한 수요에 따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산골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장사 방식으로 영구적으로 장사 지낼 수 있습니다. 관리나 시설물 유지를 위한 추가 비용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화장 시 1,000℃ 이상의 고온에서 나온 유골의 골분을 뿌리는 것이므로 위생상의 문제도 없습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상징물이나 명패 등을 갖춘다면 미래적인 장사방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의뢰해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장례문화 및 장사제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2015년 10월)에서 보듯이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공공복리 등을 위한 정부 및 지자체 정책 1순위로 ‘화장시설 확충 및 이용료 추가 감면’이 32.4%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수목장 등 친자연적 장사시설 확충(31.4%)’, ‘방치되어 있는 무연분묘의 정비(13.4%)’, ‘매장을 억제하는 정책(7.8%)’, ‘불법 묘지에 대한 처벌 강화(6.6%)’, ‘마을 공동묘지 정비(5.8%)’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묘지를 선택하는 것은 풍수지리를 근거로 명당을 선호하거나, 비석과 같은 시설물의 문화적인 아름다움만 강조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묘지와 그 주변을 함께 생각하는 조경적인 측면과 미적이며 심리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미약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혐오시설로 가까이 하기 부담스러운 시설로 대합니다. 또 내 땅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묘지와 시설물을 세우겠다는 주장이 여전히 강합니다.


그러나 장묘시설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닌, 인간의 삶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의미를 갖는 공간이며 시설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공동체적인 특징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인 자연장지는 기존 장사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재(代替財)로서의 특징입니다. 자연장지가 친환경적으로 개발된다면 지금까지 흉물스럽게 생각하던 공동묘지를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삶을 성찰하는 곳으로써의 묘지

공동묘지하면 떠 올리는 한 곳, 망우리 공동묘지는 이제 망우리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중랑구에 위치한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쟁준비를 위해 이태원에 있던 공동묘지를 망우리로 이전하면서 조성되었습니다. 

이곳은 1973년 폐장하는데, 1966년에는 4만 7천여기까지 되었던 분묘가 2019년에는 7천여기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둘러싼 순환도로 5.2km는 ‘사색의 길’이라는 명칭으로 숲길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용훈, 방정환 등 등록문화재 9인의 묘를 비롯해 유명인사 묘역 46기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또 전국 13도에서 모인 의병의 항일운동을 기념하는 ‘13도 창의군 탑’을 비롯해 유관순 열사의 이태원합장비와 분묘합장표지비도 이곳에 있습니다. 

좋은 역사교육의 장으로 또 삶을 성찰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묘 공간이 공원화된 시설로 제공되면 공공의 공간이 되면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원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고 공유하여 혜택을 누리는 공공재(公共財)로, 동시에 가치재(價値財)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함으로 더 이상 장지가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이 아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말이지요. 또 유가족만 아니라, 지역주민이 자연을 즐기면서 쉼과 휴식을 통해 웰빙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사라진다’, ‘없어진다’, ‘소멸한다’고 말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죽어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공간에 대한 추억과 관계를 통한 삶의 기억으로 말이지요. 

기억됨으로 어쩌면 살았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며 오히려 영원히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다 끝나고 사라진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큰 오산이고 실수입니다. 그래서 잘 죽는 것, 웰다잉(well-dying)이 의미가 있습니다. 잘 죽어야 이후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인상, 관계된 수많은 사람에게 녹아내린 내면의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어느덧 삶의 마지막 집인 죽음과 관련된 공간이 두려움과 회피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능한 보이지 않고 보지 않아야 좋을 그런 곳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이곳은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고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생각하는 공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며 위로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마지막에 들어가 살게 될 집이기에 그곳이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쉼과 위로를 주는 친숙한 곳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삶만 아니라, 죽음도 존재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장소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삶의 의미와 죽음의 가치를 성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전 11화 고향 같은 친밀한 장소로서의 묘지(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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