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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09. 2021

이제는 그들의 일이 된 장례식(葬禮式)

2장 삶의 마지막 식(式) - 죽음을 기념하다 2

벌써 오래전 일인데,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부모와 함께 하는 운동회가 가을이면 있었습니다. 진행부터 여러 가지 일을 선생님들이 준비하고, 엄마들은 점심으로 먹을 음식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아빠들은 운동회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첫째 아이 운동회는 그렇게 선생님과 부모들이 같이 준비했습니다. 사실 진행이 좀 어색하기도 했고 수고로운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이 운동회에서는 좀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행사 전문 외부업체가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장비와 기구, 좋은 마이크와 스피커 그리고 능숙한 멘트와 막힘없는 진행까지 보고 있기에 참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몇 가지만 하라는 대로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혹시 도울 일이 없을까 살필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억의 언저리에는 항상 그 전의 운동회가 더 자리하고 남아 있습니다.


사회변화에 따른 장례예식의 변화

주변을 둘러보면 운동회만이 아니지요. 각종 행사, 예식이 전문가의 손에 의해 준비되고 진행됩니다. 

물론 행사의 주인이 알아보고 살피며 챙겨야 합니다. 좋은 점은 시간상에 여유가 생겨 좀 더 세심히 준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주인이 해야 할 가장 큰 일, 주도적인 부분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지출하는 돈의 범위 안에서 행사의 규모와 질까지도 좌우되니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장례예식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장례식장의 크기와 장례식 조문객 수가 그 사람의 성공과 신분을 보여주는 사회적인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손에 잡히는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는 문화는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무엇보다 가족을 중심으로 함께 했던 기억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잘 지내도록 지지하는 문화의 상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장례문화가 1900년대 이후로 많이 변한 이유 중의 하나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고령사회의 도래입니다. 

2018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어서면서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되었습니다.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라고 하는데, 2026년이면 진입이 예상됩니다. 

(그림-조위록(弔慰錄, 사망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문한 문상객을 기록한 방명록), 국립민속박물관)

이러한 가족 구성과 가족관계의 변화로 자녀세대인 노인이 부모세대인 노인을 봉양하고, 노인세대가 된 자녀들이 그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이제는 자녀가 중심이 되고 친척과 지인, 지역 공동체가 함께 하던 장례예식을 담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추모객을 맞는 일만으로도 벅차, 식사와 다과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일까지 감당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지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장례과정의 간소화 또는 이 일을 대신 맡아주는 외주업체가 생겨났습니다.

장례식장 풍경도 많이 바뀌어 여러 사람이 모여 밤을 새는 일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는 장례식장의 문을 닫는 마감시간도 생겼습니다. 유가족은 잠을 청하고, 조문객은 그만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하루 만에 장례를 끝내고 바로 화장을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1996. 04. 25)  


국내 처음으로 술과 도박, 밤샘이 없는 영안실이 생긴다. 연세의료원은 25일 우리나라 병원들의 영안실과 장의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형태의 직영 장례식장을 내달 1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구내에 개원한다고 밝혔다. ... 자정 이후는 장례식장에 남아있는 상주와 상주의 친족을 제외한 문상객도 모두 귀가토록 권고하고 흡연실도 별도로 설치하는 한편 사망진단서 발급 업무도 대행해주는 등 장례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키로 했다.

 

우선순위가 된 효율성과 편리성

이제는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고, 집이 아닌 영안실이 있는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거주 문화가 아파트와 오피스텔 같은 공동 주거문화로 바뀌면서 임종을 맞고 임종 후 장례를 살던 집에서 진행하기에는 번거로움과 문제가 많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그리고 효율성과 편리함을 따라 장례식장의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또한 집과 가족을 중심으로 하던 행사가 병원과 의뢰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업무가 된 것이지요. 가족과 친척, 지인이 손과 힘을 모아 하던 일들이 이제는 돈을 주고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겨집니다. 

준비하는 이들도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장례식의 전문화와 상업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집이 아닌 집 밖에서 발생한 죽음, 즉 객사(客死)는 비정상적인 죽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충분한 수를 누리고 일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쳐 자기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정상적인 죽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임종을 앞두었을 때도 집으로 모셔와 죽음을 맞게 했습니다. 또 그때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임종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타 지역 또는 외국에 있던 자녀들도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습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할머니의 죽음』은 3월 그믐날 시골 생가에서 보낸 전보로 시작해서, 며칠 후에 다시 받은 전보로 끝납니다. (『한국단편소설70』, 리베르(2017), 93쪽/103쪽.)

 

“조모주 병환 위독” ... “오전 3시 조모주 별세.”

  

주인공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생가로부터 온 전보를 받고 급히 시골로 내려갔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친척들도 모두 모여 긴장된 며칠을 보냅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무작정 눌러 있을 수 없어 한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킵니다. 한의사는 아마 오늘 밤, 아니면 내일은 못 넘길 것이라고 해 자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결 좋아지고 이튿날도 무사히 지나자 이번에는 양의를 불러 진단을 받습니다. 양의의 이삼 주일은 염려할 것 없다는 말에 자손들은 돌아갑니다. 할머니는 혼자 일어나 앉아 음식도 드십니다.

그리고 어느 봄날, 주인공이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려고 친구 몇 명과 벚꽃 구경을 나설 때 한 전보를 받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합니다.


1인칭 시점으로 써내려 간 이 소설은 임종을 앞둔 할머니와 할머니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이것을 통해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속생각을 그려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제는 모든 일을 귀찮아하거나 죽음을 거부하는 할머니, 형식적인 인사치레에 가까운 가족들의 태도가 그것이지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특별한 시간

소설에서 보듯 오늘날은 가족이나 친척이 가까운 지역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국내 또는 해외 곳곳에 흩어져 살기에 임종 순간 함께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 집에서 임종을 맞거나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림-완의(完議, 상조를 위한 계의 규약과 계원들이 상을 당했을 경우 지원하는 품목 및 명단을 적은 책), 국립민속박물관)

하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병원 장례식장은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주거지역 안에 있는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다는 것, 사람을 살리는 곳에 죽음이 함께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로 여겼습니다.

혐오시설이라는 논란과 함께 법적으로는 장례식장도 병원 부속시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와 일반 거주지역이니 ‘문제가 된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3년 보건사회부(1955년 2월 17일 사회부와 보건부를 통합하여 발족했고, 1994년 12월 22일에는 보건복지부로 개편)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며 장례예식을 검소하고 건전하게 치르고 도시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병원 장례식장은 물론 전문장례식장 설치를 적극 권장하며 예산도 지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의업소가 독점해오던 장의용품 판매를 개방합니다.


이후 2008년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통해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에 장례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합니다. 이미 각급 병원에 장례시설이 설치돼 운영되고 있음에도, 의료법령상 장례시설을 설치할 근거가 없었던 것을 보완한 것이지요.

이제는 병원 중환자실이나 입원실, 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사인을 밝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오히려 선호합니다. 


그리고 바로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이 시작됩니다. 삶의 마지막 여정이 집과 익숙한 장소가 아닌, 병원과 병원 안의 부속 시설에서 이루어집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8년 화장시설 이용 만족도 조사>에서 장례서비스와 관련한 조사로 장례를 치른 장소로는 ‘병원장례식장’이 57.7%로 가장 많고 이어서 ‘전문장례식장’(40.4%)이 많았습니다. (동아일보, 2000. 10. 18) 


17일 시할머니상을 당해 3일장을 치른 주부 이미숙(李美淑·38)씨. 이씨는 “이번에는 장례식을 치렀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라고 고백했다. 병원에 연락해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를 마쳤기 때문에 이 씨가 한 일은 친척에게 부음을 전하고 빈소를 찾은 조문객에게 음식 음료를 나른 일이 전부였다. 이 씨가 4년 전 외할머니 상을 당해 고향집에서 5일 밤낮 동안 입술이 부르트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였다. 장례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비좁은 집이 아닌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장례식장의 변화와 함께, 평소 가입해 둔 상조회사에 연락을 하면 직원이 파견되어 조문객을 위한 음식 준비, 화장장과 운구차 예약, 장지 선정까지도 도움을 줍니다. 유가족은 지인에게 고인의 임종 소식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처음 경험하는 장례식이라도 전문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변화된 장례 문화의 결과입니다.


개인과 그가 속한 사회의 변화가 삶의 다양한 자리만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일상의 삶이 편의성과 효율성에 따라 간소화되고 전문화되니 장례예식에도 많은 변화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은 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죽음이란, 단지 생물학적 차원에서 호흡이나 의식의 중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만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에게 끼치는 인지적, 심리적, 행위적인 다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례예식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그런 가치를 반영해야 하므로 좀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내가 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지요.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고인과만 아니라 유가족 사이에서 그리고 조문객과의 관계에서 친밀한 새로운 관계가 생길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고인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으로 앞으로의 장례식과 장례문화가 자리 매겨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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