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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09. 2021

스스로는 입을 수 없는 옷, 수의(壽衣)와 화장(火葬)

1장 삶의 마지막 의(衣) - 죽음을 준비하다 2

어렸을 때 스스로 옷을 입으려다가 엉망이 된 경험들이 있습니다. 윗도리의 앞과 뒤를 반대로 입거나, 단추를 잘못 끼우고, 양말을 엉뚱하게 신는 등 마음 같지 않게 옷을 입기가 어려웠던 경험입니다.


물론 어른이 되어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모든 것이 귀엽게만 보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하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아이들이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한 생각도 듭니다. 역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국 아이의 옷 입기는 어른의 손에 의에 마쳐집니다.


인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도 없이 구입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옷입니다. 각 계절별로, 나이에 따라 또 집에서 입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모임에 갈 때 입을 것인지 등의 옷을 입는 이유에 따라 다 다른 옷이 필요하니 말이지요. 

그래서 음식과 함께 꾸준히 구입하는 물건인데, 여기서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입을 옷이 없다’는 말입니다. 옷장에는 너무도 많은 옷이 있지만 마음에 드는 옷은 항상 없기에 구입을 멈출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입게 될 한 가지 옷

그런데 그 많은 옷들 중에는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옷이 가끔 있습니다. 특별한 작업을 위한 옷들이지요. 

그런데 누구나 입으면서도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옷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의(壽衣)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입혀라 저렇게 입혀라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입혀줄 것이라 기대해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존경의 태도로 다 큰 어른의 옷을 입혀야 하는 이 고단하고 조심스러운 과정을 누군가 잘 감당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맡길 뿐입니다.


김미아 외 논문 “수의의 구매행동 연구”를 보면 예전에는 수의를 가족이나 친지들이 집안에 모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해방 이후 1960년경부터는 한복 맞춤점이나 포목점에서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경부터는 기성품으로 제작되면서 장의업체에 공급하는 소규모 업체가 생겨났고, 1990년부터는 영안실이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수의를 공급하는 대형 제조업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김미아 외, 『한국생활과학회지』,  28(6), 659쪽.


최근에는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경우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여러 업체의 가격을 비교하고 이용하신 분들이 기록한 상품에 대한 평가 글을 보면서 말이지요. 여느 물건을 주문하고 구입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수의도 매장용과 화장용 수의를 구분하여 따로 제작합니다. 또 환경에 대한 관심 속에 옥수수 섬유로 만든 수의, 버섯 포자를 이용한 수의 등 친환경 수의도 등장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옷인 수의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날 많이 변했습니다.

(그림-수의 도포, 국립민속박물관)

수의 자체만 아니라, 수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도 말이지요. 재료나 모양에서 주로 삼베를 가지고 일률적인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 점차 평상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굳이 수의라는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숨 쉬던 그때의 옷을 입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화장(火葬) 문화입니다.


화장의 보편화는 근현대 장례문화에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제 시신을 모실 관(棺)도 화로에 들어가 재로 변할 것을 알기에 두께가 얇고 모양은 단순화되었습니다. 화려한 고가의 관을 선호하던 풍조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마친 골분을 담을 유골함(遺骨函)이라는 새로운 용품이 등장했습니다. 유골함은 모시는 장소에 따라 만드는 재료가 달라집니다. 

봉안시설에 모시는 경우에는 도자기로 만든 것을, 자연장으로 나무나 화초 주변에 묻는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유골함을 사용합니다. 시신을 관에 모시고 땅에 묻던 매장이 일반적이던 때와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달라졌습니다.


화장의 확산이 가져온 변화들

일반적으로 장례의 방식은 ‘매장’(埋葬)과 ‘화장’(火葬)으로 나누어집니다. ‘매장’이란 땅에 구덩이를 파서 시신을 묻어 장사하는 것입니다. 반면, ‘화장’은 시체나 유골을 불에 태워 장사 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화장의 경우, 유골 처리방식에 따라 다시 ‘봉안’(奉安)과 ‘자연장’(自然葬)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봉안’이란 유골을 봉안시설(봉안당, 봉안담, 봉안묘 등)에 안치하는 것이고,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산골’이 있는데, 산골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산, 강, 바다에 뿌리는 것으로 화장시설 내 유택동산에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뿌리는 것도 산골에 해당합니다.     


대한민국처럼 짧은 기간에 급격히 늘어난 나라도 없다고 할 정도로 화장이 단기간에 확산되었습니다. 

2019년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2019년 전체 사망자 29만 5천여 명 중에 전국 화장률은 87.3%, 특히 인천은 97.5%로 가장 높습니다. 


대한민국의 화장률은 1980년 13.9%, 1993년 19.1%로 매년 1.5~2%씩 꾸준히 증가해 2001년에는 전국 38%에 서울, 부산, 울산 등 대도시 지역에서는 50%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매장,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8년 화장시설 이용 만족도 조사>는 2018년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57개 화장시설 이용자 총 3,084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하여 컴퓨터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

그중에서 장례방법으로 화장을 선택한 이유로는 ‘관리하기 쉬워서’가 36.8%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위생적이어서’, ‘절차가 간편해서’, ‘비용이 저렴해서’ 등이 화장을 희망하는 이유로 나타났습니다.


또 화장 후 유골 안치 장소로는 ‘봉안시설에 안치’가 60.2%로 가장 높고, ‘자연장’이 29.2%였습니다. 장사정보시스템을 통해 화장예약을 한 사람으로는 ‘장례식장 직원’이 44.6%로 가장 높고, ‘상조회사 직원’(23.4%), ‘본인’(15.1%) 등의 순이었습니다.

화장시설 이용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4.05점으로 나왔는데, 그중에서 ‘내부 청결도’가 4.11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화장절차 편리’(4.09점), ‘담당 직원 서비스’(4.08점), ‘화장 진행 속도’(4.06점) 등의 순서였습니다.


화장시설의 편의시설에 대한 만족도에서는 ‘주차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3.94점으로 가장 높고, 이어서 ‘유족대기실’(3.73점)이, 그리고 ‘구내식당/매점’(3.47점)은 다른 항목들 중에서 가장 미흡한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장례방식으로서의 화장은 조선시대에는 오랑캐의 습속이라고 해서 금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 때 성리학자 주희가 만든 일상생활의 예의범절을 정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수용해 집에 가묘(假墓)를 세우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화장과 관련된 규칙과 근대 장사 법령이 만들어집니다. 




<묘지·화장장·매장및화장취체규칙>(墓地火葬場埋葬及火葬取締規則, 조선총독부령 제123호, 1912년 6월 20일 제정 및 시행) 제12조에 화장을 하려면 인허증을 받도록, 그리고 제15조에 화장은 일몰 후에 하여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화장장에 대한 규칙과 관련해서 화장장의 신설·개축 또는 증축은 경무부장의 허가를, 그리고 화장장 사업을 중지하거나 폐지하고자 할 때에는 경무부장에게 신고하도록 했습니다(제4조).


또 묘지의 신설·변경 또는 폐지는 경무부장(경성에서는 경무 총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제1조), 매장·개장 또는 화장을 하고자 하는 자는 경찰서 또는 순사 주재소·헌병 파견소·동 출장소의 인허증을 받게 했습니다(제12조). 

그리고 사체 또는 유골은 묘지 이외에 매장 또는 개장할 수 없다고 명기합니다(제10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 규칙은 당시의 실정에 맞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 1918년과 1920년에 내용을 완화하여 개정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화장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서도 화장장이 설치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장례방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화장보다 친환경적인 방식의 빙장(氷葬)이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생물학자인 수잔 위 메삭(Susanne wiigh Masak)에 의해 발명된 이 장묘 방식은 매장에 비해 적은 면적을 이용하면서도 화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대기 오염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신을 동결건조해서 흙으로 돌려보내는 장묘 방식입니다.


시신을 관에 넣고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탱크에 담가 급속 동결시킨 후, 미세한 진동을 통해 동결된 시신과 관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분해시킵니다. 

그리고 분해된 조각을 건조해 수분과 금속성분을 분리한 뒤, 유해를 녹말로 만든 관에 안치합니다. 이 관을 땅에 묻으면 1년 이내에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 방식은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해서 수목장 등의 자연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하는데, 유네스코가 추천하는 친환경 장묘법이면서 유엔이 선정한 40대 유망 친환경 사업이라고 합니다.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독특한 장례문화를 소개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우주장입니다. 

현재 민간 우주기업이 운영 중으로 고인의 유골을 캡슐에 넣어 전용 로켓으로 우주로 발사합니다. 유골은 최대 240년 동안 우주를 떠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3D 프린트 기술을 활용해 고인의 얼굴 형상을 본떠 만든 유골함에 유골을 모시기도 합니다. 

화장 후 나온 골분을 포장하고 화약을 넣어 폭죽으로 제작해 하늘에서 터지도록 해 뿌리는 폭죽장도 있습니다. 


시신을 특수 장비에 넣어 액화시킨 후 유골만 남기고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장례방식, 화장된 유골로 인공 산호초를 제작해 바다 깊숙한 곳에 안치하는 방식도 친환경 장례문화로 등장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장례방식이 등장할지 궁금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알 때 깨닫는 것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림-수의 물품을 기록한 문서, 국립민속박물관)

내 생각과 계획 속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며 사람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동이나 청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어른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일상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하던 일들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강을 잃는 경우이지요. 누군가 옆에서 먹는 것, 입는 것 등 다 돌봐주어야 하는데, 이때 참 많은 것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소화하며 잠잘 수 있는 것 등의 기초대사가 이루어진다는 것, 손과 발을 움직이며 기본적인 일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톨스토이(Lev Tolstoi)의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에서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의사로부터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보인 첫 반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며 살아온 지난날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아쉬움에 죽음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곧 이어서 그에게 죽음의 두려움과 무력감 그리고 고독감과 같은 절망적인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이 보인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반 일리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 주변 사람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반 일리치는 죽기 한 시간 전쯤부터 평소에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죽음 직전에 죽음과 함께 찾아온 경험으로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검은 자루에 잡아 밀어 넣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어떤 강한 힘이 가슴과 옆구리를 세차게 밀치는 것 같아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 자기 옆의 아내와 아들이 안쓰럽게 보였고,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 창비(2012), 118쪽.)     


그는 ‘쁘로스찌’(용서해줘)라고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꿀 힘도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었다.
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향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이후 이반 일리치는 곧 통증이 사라지고 죽음과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며 환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안쓰럽고 그동안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식구들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평생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명예, 외모 그리고 돈에 집착하던 삶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전까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는데, 죽음을 앞둔 이 순간, 이전에 가지지 못한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이반 일리치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죽음을 인정함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옷인 수의는 인간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주변의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성장하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또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지요. 사랑의 가치와 능력을 발견하는 것도 그 순간입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고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면 정말 인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수의를 생각할 때 인간의 유한성을 다시금 인식합니다. 삶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영속될 수 있고 멋지게 매듭 지워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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