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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Oct 08. 2021

배냇저고리와 수의(壽衣)

1장 삶의 마지막 의(衣) - 죽음을 준비하다 1

기저귀, 물티슈, 수건,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 내복, 우주복, 모자, 양말, 발싸개, 손싸개, 턱받이, 젖병, 젖병세정제, 젖병집게, 수유쿠션, 침대, 침대매트, 방수요, 베개, 온습도계, 체온계, 손톱깎이, 욕조, 아기비누, 유모차, 모빌, 아기띠, 카시트 등.

(그림-배냇저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이것은 모두 엄마의 뱃속에서 크고 있는 아기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목록입니다. 엄마는 아기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정말 종류가 많지요. 사실 이 중에는 꼭 필요한지 묻고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기에게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다 준비해 놓습니다. 몸이 무거워져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럽고 쉽게 피곤해져도 말이지요. 오히려 이 시간이야말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고 다들 말합니다.


첫 번째, 그리고 마지막 옷

이런 물건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배냇저고리를 고르게 됩니다. 엄마들 중에 아기가 다 큰 뒤에도 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배냇저고리입니다. 


아기가 첫 번째 입게 되는 옷인 ‘배냇저고리’는 ‘배 안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저고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기의 몸을 감쌀 정도의 작고 간단한 옷으로 보통 명주나 부드러운 무명으로 만듭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받는 첫 번째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아기가 세상에서의 주어진 생을 다 마치고 떠나는 날에 입는 옷을 ‘수의’(壽衣)라고 합니다. 삶의 마지막 옷입니다.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에 옷을 입히는 염습(殮襲)을 위해 준비하는 옷입니다. 


세상에서 처음 입던 배냇저고리처럼 몸을 감싸는 단순한 형태인 이 옷은 일반적으로 염색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단추나 액세서리, 주머니가 없습니다. 


또 입히기 수월하도록 크기가 넉넉합니다. 언제 입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입을 옷이기에 지금 당장 입지 않더라도 미리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처음 태어나 입는 옷과 마지막에 입는 옷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림-여성용 수의 저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에는 장사지내기 위해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일을 ‘습의’(襲衣)라고 했습니다. ‘염’(殮) 또는 ‘염습’(殮襲)도 같은 표현으로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시신을 묶는 베인 염포(殮布)로 싸는 것을 가리킵니다. 


조금 구분해보면, 시신에 옷을 입히는 것을 ‘습의’, 여기에 다시 여러 벌의 옷을 입혀 감싸는 것을 ‘염의’라고 했습니다.




습의에는 본인의 옷을, 염의에는 본인이 생전에 입던 옷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왕이 보낸 옷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랜 후에 땅에서 출토된 시신을 보면 겹겹으로 옷이 입혀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례가 감춘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수의는 시신을 가림으로 보호하고 견실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물품들을 사용해 시신의 형체가 뒤틀리지 않고 곧게 유지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집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의는 격식을 갖춘 ‘갖춘 수의’와 ‘보통 수의’로 구분합니다.


‘갖춘 수의’의 경우 남자 수의는 속바지, 속저고리, 겹바지, 겹저고리, 두루마기, 도포, 겹요, 겹이불, 면모, 악수, 주머니(오낭), 버선, 허리끈, 대님, 도포띠, 턱받침, 베개, 손수건으로 구성됩니다. ‘보통 수의’는 여기서 도포, 악수, 도포띠, 턱받침이 빠집니다.

여성 수의에는 속바지, 속저고리, 겹바지, 겹저고리, 속치마, 겹요, 겹이불, 면모, 악수, 주머니, 버선, 베개, 손수건, 머리싸개가 있습니다. 


지방에 따라 혼례 때 입었던 예복을 수의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수의는 땅 속에 묻었을 때 잘 분해되도록 주로 모시나 삼베를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의복입니다.


이 수의를 윤달에 마련하면 병치레 없이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어 과거 어르신들은 종종 직접 준비하거나, 자녀들이 준비하곤 했습니다. 고구려 풍습에서는 신랑 집과 신부 집이 혼례 물품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이 수의였다고 합니다. 


양가 집안이 혼인을 결정하면 신랑 집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신부 집으로 보냈는데, 만약 재물을 보내면 딸을 사겠다는 의미가 되어 신부 집에서는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수의는 전쟁이 잦아 언제 죽을지 몰라 미리 준비해두는 의미도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 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인생에서 미리 준비할 것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작성한 보고서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2008년부터 매 4년마다 실시하는 조사보고서입니다. 노인의 삶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조사를 위한 여러 질문들 중, “자신의 죽음을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에서 ‘수의’에 대한 응답이 8.3%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위한 준비와 관련해서 제일 많은 응답은 ‘묘지’로 25.1%, 다음이 ‘상조회 가입’으로 13.7%였습니다. 수의가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나왔는데, 그 외에 ‘유서 작성’이 0.5% 그리고 ‘죽음 준비 교육 수강’이 0.4%로 나타났습니다. 

노인의 경우 높은 비율은 아니어도 자신의 죽음을 위한 준비에 있어 수의를 꼽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남성용 수의 저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인생에서 미리미리 준비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아기 물품을 준비하는 것만 아니라, 특히 생애 전환기에 경험하게 될 변화를 위한 준비는 참 중요합니다. 아기가 자라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부모는 예방접종을 하고 학교생활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합니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이후의 진로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결혼을 위한 준비 그리고 노후를 위한 대비까지 인생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미리 예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생애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준비는 소홀한 것이 현실입니다. 살기도 바쁜데 죽음까지 걱정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는 삶을 위한 준비에 몰입하느라 죽음준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 뒤로 미루거나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여깁니다. 또 지난 삶을 재정립하며 삶의 마지막을 성찰할 노년이 되어서도 고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죽음 준비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평소에 관심이 적을 뿐 아니라, 외면하는 이면에는 죽음이라는 것은 거북스럽고 부담스러우며 한편에서는 무섭기 때문입니다. 굳이 따질 일이 있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 배우고 이야기할 기회도 적습니다. 

위의 설문에서도 보았듯이 죽음준비에 있어서 대부분 상조회에 가입하거나 묘지를 준비하면 다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몇 가지 추가한다면 수의를 마련하거나 영정사진을 찍어두는 정도를 꼽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준비해야 할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고 동시에 언제 만날지 예측할 수 없으니 준비에 있어 ‘미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일 수 있거든요. 

또 다른 일들과 비교했을 때 죽음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기에 남다른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이 대신 준비해주지 못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찾아올 죽음에 앞서서

톨스토이(Lev Tolstoy)가 1859년에 발표한 단편 『세 죽음』은 제목대로 세 가지 죽음, 귀부인 쉬르킨스키의 죽음, 마부 표도르 영감의 죽음, 그리고 물푸레나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 죽음의 공통점은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을날, 귀부인 쉬르킨스키는 질병을 고치러 마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갑니다. 부인은 삶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그래서 쌀쌀한 가을 날씨에 이동하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남편의 말에 “집에서 죽으라는 거예요?”라고 발끈합니다. 

끝까지 죽는다는 것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날 저녁 죽어 관에 넣어져 저택의 홀에 안치됩니다.


반면 귀부인이 이탈리아로 가던 중 잠시 들린 마부들의 쉼터에 있던 마부 표도르 영감은 병자로 살고자 하는 용기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한 모습이었습니다. 

마부들의 쉼터에 있는 난로에서 두 달째 내려오지 못하고 꼼짝 못 하고 있었는데, 죽음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귀부인의 마차를 모는 세료가가 거기서 영감의 장화를 보고 달라고 하자 기꺼이 줍니다. 


그날 밤 표도르 영감이 죽습니다.


그리고 물푸레나무는 표도르의 비석을 대신해 세료가가 십자가로 세우기 위해 자른 나무입니다. 세료가는 표도르 영감의 장화를 받은 대신 비석을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는 대신 나무를 잘라 십자가를 세웁니다. 


물푸레나무의 죽음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물푸레나무가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사실은 그 죽은 나무 위로 올라오는 새 생명에 대해서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톨스토이, 『톨스토이 단편선 Ⅱ』, 푸른숲(2006), 251쪽.)    


물기를 머금은 잎들은 조용히 기뻐하며 우듬지에서 속삭이고, 생생한 나무의 가지들은 죽어서 고개를 떨군 나무 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장중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죽음은 준비하는 죽음이며 맞이하는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됩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생각지 못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미리 준비된 죽음은 이후에 새로운 생명을 낳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죽을 것임을 의식하는 중에 죽음을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이 소중하고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소생할 터전이 마련됩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은 함께 다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몇 가지 준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당하기 위해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모르거나 잘못 알면 불필요한 염려와 걱정에 몸과 마음이 상할 수 있거든요. 

이와 관련해 임종을 앞두었을 때 연명의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스스로 밝혀두는 준비를 하면 유익합니다. 본인은 좀 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가족과 주변 사람은 심적인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요.


또 중요한 준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풀어야 할 관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준비가 특히 죽음 이후를 위해서 참 중요한 것은 나 한 사람의 생명활동이 끝나는 죽음으로 이전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맺은 관계와 그 관계의 매듭들은 내가 죽은 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실 죽음과 관련된 준비에서 이런 것들이 소중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부분들은 미리 준비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죽음준비는 그 필요성을 알 때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일들을 위한 준비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준비할 수도, 다시 준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연명의료 상황에서의 결정에 대한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준비를 하다 보면 일상의 삶을 진실하게 대하고 깊이 있는 삶을 경험하는 기회를 얻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은 잠시 흐릿했던 삶의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면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긴급한 것과 덜 그런 것을 좀 더 쉽게 구분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기억할 한 가지, 죽음에 대한 준비는 혼자서 하는 것보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준비할 때 훨씬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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