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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언자 Apr 28. 2016

<책모임> 다톡(Da-Talk)_여섯번째 모임

정여울 작가의 [공부 할 권리]를 함께읽다.

1. 발제자는 저였고, [공부 할 권리]의 서문을 포함 '1부 인간의 조건' 중 '영감의 원천', '용기의 숭고함', '슬퍼할 권리'를 읽고 모였습니다. 특히 이번 모임은 저희 다톡팀의 새로운 전통(?)에 따라 발제자가 고른 시 한편 읽고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헬조선에서 보기 힘든 감수성이랄까요. 함께 읽은 시 나눕니다. 고은 시인의 [전원시편]에 있는 <분꽃>이라는 시입니다.


분꽃

- 고은

분꽃은 대학 같은 건 안 다니고

십 리 길 여고 나와

그냥 살림하는 처녀여요

얌전하디 얌전한 처녀여요

진분홍 별 분꽃 흰 분꽃

어느 날 저녁

그 처녀 마당에 나와

눈에 번쩍 세상 진리 환하게

깨닫는 꽃이어요

고려 땅 어진 딸내미 순이어요 분이어요



[공부 할 권리] 책이 예쁘게 잘 나왔다. 정여울 작가의 탁월한 통찰과 섬세한 문장력이 돋보인다.

2. 모두에게 낯선 권리, '공부 할 권리'란 도대체 무슨 권리를 말하는 걸까요? 함께 나눈 발제의 첫 부분을 같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먼저,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는 공부를 입에 달고 산다. 그동안 우리는 공부가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준다고 믿었다(아니 그렇게 배웠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했고, 높은 학점을 유지하여 남들이 다 아는 그런 번듯한 곳에 취직하기 위해 공부했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목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된다고 하니까, 하는걸로 알았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애초에 없었다. 그냥 했다. 그저 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리 심리(Herd Instinct)가 있는 야생 동물처럼 누군가 하니까 따라 했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말한다. “공부는 나를 지켜준 권리”였다고. 무슨 말인가?
   우리는 살면서 자괴감에 빠져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절망감으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직면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그 때, 공부는 우리를 지켜준다. 데미안에 나오는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알에서 나오려는 투쟁을 하다” 지쳐 포기하려 할 때, 공부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나’라는 벽돌을 들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 할 권리”를 통해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행복을 나누려 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동굴에서 나와 바깥세상의 찬란함을 경험한 저자는 아직도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고, 공부의 그림자만 쫓고 있는 우리에게 “공부 할 권리”를 권하려 한다.
(발제지 인용)


3. 우리는 저자 호흡에 따라 차례대로 세 가지 권리에 대해 읽어나갔습니다. 먼저 영감의 원천인 '무의식의 나'를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혹자는 자신있게 '안다'고 할지 모르나,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이에 '아니오'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탁월한 인지 심리학자인 밀턴 에릭슨도 이를 잘 알았고, '무의식 속에 숨은 잠재력'을 집요하게 찾아내라고 많은 이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끝까지 '무의식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찾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일인지 말해주면서요. 신데렐라 이야기는 단순히 '재투성이 소녀'가 왕자를 잘 만나 왕비가 된, 로또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왕자가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 그녀의 집에 들렸을 때도 '저 아이는 아닐거'라고 아버지 조차 그녀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은 비극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 '재투성이 소녀'가 끝끝내 자신의 존재,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재투성이에 가려진 존재'를 왕자 앞에서, 만백성 앞에서 입증해내는 입지전적인 이야기 입니다.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재투성이'에 가려져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심지어 나 자신 조차 인정하지 않는 나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라고요. 우리 마음 속에 울고 있는 재투성이 소녀를 찾아가 달래주라고요.


4. 다음은 '용기'에 대한 권리였습니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통해서 세 인물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용기가 그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킬레우스의 용기는 우정을 통해서 나타난 용기이고, 헥토르의 용기는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용기'이며, 프리아모스의 용기는 사랑 그 자체 입니다. 이 매력적인 세 가지의 용기를 서로 나누면서 각자가 맘에 드는 혹은 각자가 닮고 싶은 용기를 골라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발제자인 제가 읽으면서 감동적이었던 대목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헥토르가 적장 아킬레우스의 창끝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모욕할때, 그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보인 용기였습니다. 적장이고, 전쟁중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프리아모스의 아들을 향한 사랑을 막지 못한 것 같습니다. 프리아모스는 적장 헥토르에게 나아가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헥토르에게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헥토르의 마음이 감동한 탓인지 둘은 서로 적군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목을 놓아 웁니다. 통곡합니다. 일리아드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가히 놀랍습니다.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호메로스의 붓끝에는 지상에 없는 뜨거운 노래가 달린 것 같습니다. 그는 전쟁이라는 증오의 칼날 뒤에 숨은 더 높은 차원의 인류애, 적군과 아군의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의 소중함을 그려 냈습니다."(40)

5. 마지막으로 나눈 권리는 '슬퍼할 권리' 였습니다. 효율성과 유용성이라는 두 바퀴로 전진하는 현대 사회에선 슬픔에 젖어있는 시간은 쓸모없이 여겨지기 일쑤지요. 그러나 인간의 조건에서 꼭 필요한 권리 중 하나가 바로 '슬퍼할 권리'임을 저자는 주장합니다. 안티고네, 그 '"위대한 죽음의 서사시"를 통해 슬픔의 힘에 대해서, 독재의 칼날에 저항하는 '슬픔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함께 나눈 주된 이야기는 '슬픔에 직면하는 용기' 였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부터 생각이 많은 내 자신이 피곤하게 느껴지고, 힘들었어요.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이면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된거 같습니다. 진솔한 삶을 나누고 나니 서로 공감하기도 했고, 슬픔에 맞선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모임 말미에 한 친구는 도종환 시인의 시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라일락 향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 날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또 다른 시가 생각났다며 나누고 싶다고...ㅋㅋ


우기

- 도종환

새 한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 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살다보면 배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까지 왔다

새 한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6. 모임 말미에 모두 하나 같이 하는 말,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 심각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모임에 임해준 벗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너무 심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모범답안을 향한 강박증'이 심한거 같아. 주입식 교육의 심각한 폐해 중 하나라고 생각해. 머리속에 질문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그럴싸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조급증이 있잖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답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힘, 멈추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질문할 권리' 또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권리니까."


이상 매우 긴, 하루 늦은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아쉽게 함께 사진찍는 것을 깜빡...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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