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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언자 Apr 29. 2016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공지영,「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꼬여도 너무 꼬여버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사실에 비춰볼 때 세상은 어색한 일들이 너무 많다. 꼬여버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한 일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다. ‘그냥 꼬여버린 세상 속에서 나도 같이 꼬여버리길 허락한다면... 그러니까, 생각하기를 거부한다면, 어쩌면 마음은 편하지 않을까?’, ‘몸은 덜 고생하지 않을까?’ 비겁한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만큼 꼬여버린 세상은 강하다. 그 세상 앞에 깨어있는 한 개인은 너무 가냘프기만 하다.



   필자의 어머니는 시골교회 목사 부인(교회에선 사모라고 한다)이다. 그녀의 인생은 오롯이 가정을 위해, 그리고 남편의 사명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속된 말로 ‘디지게’ 욕먹는 자리가 목사 사모이다. 어떻게 아냐고? 필자의 경험을 통해 안다.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병이다. 목사를 욕하기엔 사실 무섭다. 그러니까 만만한게 목사 사모이고, 자녀들이다. 거침없다. 그들의 입술엔 거름망이 없다. ‘설친다.’, ‘말 많다.’, ‘게으르다’ …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근거없는 낭설은 거대한 소문이 되고, 이제 소문은 진실의 가면을 쓴다. 그리고 가장 연약한 그녀의 속살을 사정없이 난도질 한다. … 그래도 참아야 한다.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그래서 난 싫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가르침이 싫다. 노년의 어머니께서 이제야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겨 슬피우는 눈물을 본 사람이자, 남자로써 여성의 무조적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그들의 폭력을 혐오한다. 분노한다. 도대체 왜, 결혼한 여자는 가정을 위해서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도대체 왜, 남자의 꿈을 위해서 여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과감히 내려놓아야만 하는가? 그래, 혹자는 ‘그렇게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묻고싶다. 그렇게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것의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고.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수준이, 구조적 장치들이 너무 후져서 생긴 문제를 굳이 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여 그 피해의 몫을 고스란히 여성이 가져가야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묻고싶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꼬여버린 세상 속에 함께 꼬인체 살았다. 아니, 아니다. 좀더 정확히, 함께 꼬여버린체 생각 없이 살기를 바랬다. 그게 좀 더 덜 힘이 들거라 생각했다. 비겁했다. 뻔히 보이는 문제를 외면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이 아닌, ‘문제 속의 개인’으로 남고자 했다. 그게 편해보였기 때문이리라.


   우리 몸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할 부위는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아픈 곳이다. 아파서 통증으로 우리에게 호소하는 부위에 우리는 일차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곧 ‘치료’로, ‘치료’는 곧 ‘회복’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관심’은 ‘회복’으로 가는 첫 번째 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막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렇다. 아파하는 자들이 있는 ‘그 곳’이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아프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페미니스트네, 역차별이네 논쟁하며 우리의 논지를 흐리고 싶지 않다. 아픈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의 문제이다. 가출소녀, 미혼모, 싱글녀, 기혼 여성, 이혼 여성, 과부 … 그들을 향해 실재하는 사회적 차별이,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이, 그리고 편견이 폭력이 되어 그들을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건 여성들만의 문제도, 남성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다. 꼬여버린 세상은 분명 강하다. 깨어있는 시민 한명이 상대하기엔 너무 강력하다. 함께 맞서야 한다. 아픈 자들의 절규를 들은 자들이 함께 부딪혀야 한다. 한명씩, 두명씩 그렇게 늘려가야 한다. 이 길은 분명 멀고 험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멀고 머나먼 길이라도 혼자가 아닌, 함께라면 갈 수 있다.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말은 옳다. 수천년 역사 동안 이어져온 여성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자들은 무소의 뿔처럼 그 눈물을 닦아내는 길을 걸어야 한다. 비록 혼자일 지라도. 걷다가 지칠때면 알게되리라.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음을. 그러니 여성들이여...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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