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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Jul 03. 2024

엄마랑 대판 싸웠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제발 좀! 그만! 나도 힘들어"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냐. 난 너뿐인데..."


나뿐이라는 엄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힘이 돼 보고자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한편으로 나를 믿어주는 엄마가 고맙고 그럴 만큼 내가 우리 3남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구나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버겁고 지겹고 힘겹다.

'정말. 왜 나뿐이 없는 건데? 대체 왜?' 이 생각에서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대판 싸웠다기보다 나 혼자 그간 쌓여있던 울분을 토해냈다는 말이 사실에 가깝다. 엄마는 잘못이 없다.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있을 때 꼭 사달이 난다. 아빠 살아생전엔 아빠가 주인공으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론 남동생 이슈로 늘 하소연을 나에게 하신다. 가수 이효리가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며 그간의 속마음을 털어놓다 눈물을 흘리는 방송을 보았다. 나와 닮았다. 외모까지 닮지. 억울하게 상황만 닮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밉기도 했던 엄마다. 강조하지만 엄마는 잘못이 없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면 천사처럼 날개를 펼치고 평생 우아하게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쁜 마음의 소유자다. 강성의 아빠와 사랑에 빠져 신혼부터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는 힘들었고 불만투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남편으로는 빵점이었으니까. 돈을 잘 버는 것을 남편으로서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아빠로서는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던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나 난 아빠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해 본 시간이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그저 미울 뿐이었다. 돌아가실 때가 되니 다시는 만지거나 볼 수 없게 된다는 불안감이 아빠를 용서하게 했고 한 남자로서의 걸어왔던 고된 삶이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부족했던 아빠의 모습은 나를 위해 애써준 기억으로 예쁘게 포장되었다. 아빠를 떠올리면 '그 남자 외로웠겠구나' '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드는 걸 보니 운 좋게 아직 그 포장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하소연은 가끔 그리움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나를 의지하는 듯했다. 때때로 힘들었지만 나를 향한 엄마의 강력한 선함이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버티다 이번에 싸움을 가장해 나의 마음 쓰레기들이 터진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화가 폭발했고 대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 주범들이 한없이 미웠다. 사고뭉치 남동생. 납득 안 되는 상황들. 미흡한 대처등 모든 게 엉망이었다. 물론 당사자 얘기는 듣지 않고 엄마의 입장에서 얘기만 들었으니 팩트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들으나 마나 동생이 그냥 미웠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모두 싫었다. 시집살이시키는 할머니부터 이상하게 정 안 가는 고모(좋은 고모도 있다), 지금의 동생에 이르기까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했으면서 지금은 내가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 암환자야 엄마. 너무하는 거 아냐?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는데 친정 때문에 나 얼마나 스트레스받는지 알아? 나 편하게 살고 싶어. 나더러 어쩌라고?"그러다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제기랄. 끊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좀만 참을걸. 그간 엄마가 나를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난 점점 나쁜 딸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항암치료받고 오는 날 꽃다발을 들고 애썼다며 엘리베이터 앞에 서계시던 엄마, 기력회복 시켜보겠다며 산 낙지와 반찬거리를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와 요리해 주던 엄마, 머리카락 빠졌다고 뜨개질로 모자를 수없이 만들어줬던 엄마, 그러면서도 늘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매일 말해주던 엄마(나의 자존감 원천은 엄마의 칭찬이었다.), 나를 위해선 본인 몸이 부서져도 다 해줬던 엄마였는데. 그렇게 수십 년을 의지하고 살다가 커서 독립했다고 엄마의지하려 하니 짜증을 내는 나는 사람이 맞는가? 내 딸이 나에게 그런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내 딸은 친절하고 다정한 딸이면 좋겠고 나는 그런 딸 역할을 하는 것이 귀찮은 것인가?

'사과의 글을 보낼까? 말까? 나름 작가라며? 생각 좀 해봐. 어떻게 변명을 담아서 엄마의 속상함을 닦아줄 수 있을지.' 일단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고 생각하려고 '엄마'라고 쓰여있는 칸을 누르려는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내 사진이다.!!!


휴대폰 기기조작이 서툴러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꾸지 않는 엄마가 배경사진까지 싹 바꾸었다. 전부 내 사진으로. 사진을 클릭해서 옆으로 넘겨보니 여러 장의 사진이 얼마의 시간차 없이 히스토리에 남아있다. 어떤 사진으로 할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넣어 보았던 흔적이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바뀐 남자친구의 상태 메시지와 프로필 사진으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그런 느낌이랄까? 갑자기 마음 안쪽이 간질거리며 뭉클함과 미안함이 소리를 냈다. 의지했던 딸년이 모진 말을 해대서 사진을 보며 마음의 헛헛함을 달랜 걸까? 아님 나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혹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까?

그 길로 난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여자처자 이래저래 구구절절 미안해요.'뭐 그런 내용으로 보냈다. 나의 상황과 미안함을 뻔한 내용이었지만 진심을 담아서 적었다. 작가의 기질이 살짝 나왔으려나.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엄마의 메시지는 틀린 맞춤법 때문에 더 눈물이 난다. 그렇게 그날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틀 뒤인 오늘 전화벨이 또 울린다. 사과했던 마음 잠시 집 나가고 '무슨 일이지?' 엄마랑 통화를 안 하면 걱정되고 전화가 오면 '왜일까' 생각하며 또 불안하다. 통화를 하거나 안 하거나 늘 찝찝한 요즘이라 전화가 달갑지만은 않다. 잠깐 생각하고 전화를 받으니 김치를 했다고 경비실에 맡기고 간단다. 손녀 조끼 뜬 것도 가져온다며. 몇 주 전에 나에게 떠줬던 그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그 머냐? 부시머 있던데 그거야. 인기 많은 거야. 네 거 떴어"

"뷔스티에?"

"응, 그래. 그거" 재주 좋다며 예쁘다고 했더니 기어이 손녀 것도 떴단다.

와서  가져가라면 안 올 것이 뻔하고 엄마가 온다고 하면 힘든데 그런 거 왜 했냐고 잔소리할 것 같으니 기습적으로 전화해서 경비실에 맡기고 간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아 진짜!. 경비실에 왜 맡겨. 저녁 먹고 가"

"아냐, 아냐. 너 힘든데. 지하철 역에서 주고 갈게 그럼. 역까지만 나와"

나 힘들다고 그만 좀 괴롭히라고 했던 말이 맘에 박혔나 보다. '이봐. 또 말도 없이 갑자기 온대' 약간 투덜대며 지하철 역으로 차를 가지고 간다. 바퀴 달린 수레를 끌고 70대 중에 제일 예쁜 여자가 나타난다. 자동차 뒷자리에 실어주고 가려고 한다. 저녁 먹고 가라고 얘기했지만 그냥 가겠다는 엄마를 적극적으로 잡지 않았다. 한바탕 퍼부었던 나도, 내 눈치를 보는 엄마도 장문의 문자가 오고 가기는 했지만 아직 서로 약간 어색하다.

"잘 먹을게, 조심히 가요"

"너나 늘 조심해. 난 괜찮아"

뒷모습을 보고 인사를 하며 운전석에 앉아 '억지로라도 같이 밥 먹자 할 걸 그랬나' 잠시 생각하다 눈물이 또 신호를 보내길래 부랴부랴 시동을 켰다. 모든 인간관계는 반드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그것이 부모자식일지라도. 엄마가 세월과 상황들로 인해 그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다. 난 넓은 맘을 열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마음의 그릇이 매우 옹색스러워 기준선을 넘어온다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그 기준선은 다시 생각하니 매우 이기적이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선 넘어 깊이 다가가고 상대가 필요해서 들어오면 기준선을 다르게 긋는 이중잣대인 것이다. 좀 더 유연하고 온유한 기준선을 생각하며 숨 한번 크게 쉬고 가지고 온 김치와 반찬을 정리한다. 온유와 유연은 어디 가고 또 중얼거린다. '김치 사 먹으면 된다고 하지 말라니까. 아휴. 딸이 명색이 영양사 출신인데 반찬 못 만들어 먹을까 봐 계란말이까지 해서 보낸 거야? 미친다 진짜. 넘치는 사랑' 엄마는 항투머치가 문제다. 사랑도 하소연도 늘 넘친다. 


 그나저나 김치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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