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산다는 것
남편은 광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광주의 시그니쳐 음식인 오리탕을 처음 먹어본 건 신랑의 추천이었다. 닭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빨간 국물. 백숙도 아닌 것이 선뜻 손이 가는 음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다리, 목은 얼마나 큰지. 벌건 국물에 뻗쳐 나온 다리란 쉽지 않은 비주얼이다. 친정아빠 고향이 전라도라 파래, 굴, 낙지 등 그 지역 음식은 모두 섭렵했다 생각했는데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 오리탕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익숙지 않음에서 오는 거리감이랄까, 어색함이랄까. 오리탕은 그런 음식이었다.
어색함은 한 번의 만남으로 해결되었다. 역시 남편과 나의 식성은 최고의 식궁합을 자랑하는 부부임에 틀림없었다. 남편의 추천은 옳았고 내 입맛에도 아주 잘 맞았다. 급기야 택배로 광주에서 공수해 먹을 만큼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오리탕이 도착했다.
갑자기 갑상선암을 걱정하게 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기에 평소처럼 오리탕을 주문해 놨는데 그게 도착한 것이다. 하필 초음파 모양이 못생겨져서 마음까지 찌그러진 그런 날 떡허니 도착했다. 주문할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되어 맛있게 먹을 자신이 없게 되었지만 오리탕은 잘못이 없다.
한 번에 다 넣을 수 없을 만큼 가득 담아주는 미나리는 광주식 오리탕만의 특징이다. 향과 색과 식감까지 미나리는 완벽한 내 취향이다. 큰 냄비에 오리탕을 한가득 넣고 보글보글 끓으면 미나리를 한 움큼 집어넣어 살짝 데쳐 건진다. 들깻가루에 초고추장을 슥슥 비벼서 만든 맛도리 양념에 숨 죽은 미나리를 콕 찍어서 입으로 쏙. '얼마나 맛있게요.' 이건 두 번째 암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기 전 시나리오였다.
그 시나리오는 참 대본 수정을 많이 해야 한다. 인생이 그렇지 뭐. 정해진대로 될 리 없으니까.
"밥 먹자, 오리탕 먹게 나와"
남편을 불렀다. 좋아하는 오리탕을 한 그릇씩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커다란 다리는 자기 거! 맛있게 먹어."
최대한 씩씩하게 그러나 어색하지 않게 일상을 사는 아내로서 얘기했다.
"그래. 맛있겠다. 잘 먹을게."
남편도 공기가 흐려질까 빠르게 대답했다.
갑자기 남편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아버님이다. 아들 불편할까 특별한 일 아니면 좀처럼 먼저 전화를 하지는 않으시는데. '무슨 일일까?' 부모님의 전화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네. 다 잘 지내요."
남편의 대답으로 아버님의 질문을 유추할 수 있었고 남편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잘 지낸다고.
한동안 남편은 수화기 너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나는 남편의 입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좋지 않은 꿈을 꾸셨다며 모두 무탈하냐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절묘하다.
남편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숟가락도 들지 않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또 내가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말에 참고 버티며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버님의 전화를 핑계로 터져버린 것 같았다.
'이러면 반칙인데. 서로 안 그러기로 했잖아.' 입을 떼면 같이 울 것 같아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다.
건장한 이 남자가 카프카의 변신처럼 작아졌다. 중년의 가장. 아직 아이들도 독립 전이고 부모님 역시 장남인 본인의 몫이고 게다가 나까지 이 지경이니. 가장 힘들고 가장 잘 참아야 하는 사람이라 '가장'인가 싶을 정도로 그 무게가 감히 상상이 안된다. 내가 힘이 돼 줘야 하는데 한술 더 떠서 환자 역할만 하고 있으니. 미안했다.
남편은 결국 못 먹겠다며 그 좋아하는 오리탕을 다시 냄비에 부었다. 가슴이 에인다.
나는 남편이 힘들까 걱정이고 남편은 내 마음이 녹아 없어질까 노심초사다. 나이 오십에 또 절절한 사랑을 하게 생겼다. 우리 이미 너무 아끼며 잘 지내는데 대체 얼마나 더 끔찍이 서로를 위하며 살게 하시려고 이런 시련을 또 주시는 걸까? 일상을 살자. 일상을 살면서 순서대로 차근차근 치료하자고 얘기하면서도 무척이나 어렵다. 한번 암에 걸려봤다고 두 번째 암에서 의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편은 편하게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서둘러 눈물을 닦고 아버님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열차가 들어오는 철길에 남편이 혼자 앉아 있더란다. 걱정이 많은 얼굴을 하고. 그래서 아버님이 안고 나왔다는 꿈이야기. 소름 끼치게 잘 맞는 예지몽 같은 꿈이었다. '꿈자리 안 좋으니 조심해'같은 비과학적인 말을 가볍게 여기며 무시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한편으로 지금의 남편상태가 혹시 철길에 혼자 앉아 있는 느낌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끝까지 꿈을 믿어보자면 아버님이 안고 나왔다니 걱정은 이제 그만하자 했다. 그리고 먹던 대로 하던 대로 그렇게 일상을 살자.
"여보. 오리탕 먹어야지. 울긴 왜 울어."
"절대 혼자 철길에 내버려 두지 않을게."
우린 일상을 살기엔 지금은 조금 버거울지 모른다. 지금은 그렇다. 아니 지금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