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첫 글 치고는 좀 별로일 수도

갑상선 초음파

by 하늘 예쁨

"모양이 안 좋아요"

"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식상한 표현이 오차 없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저번보다 크기도 커졌고 모양이 안 좋아졌어요."

"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질문인지 대답인지 모르는 말을 어리바리하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정확히 알아 들었다.

유방암 진단 4년 차. 이번엔 갑상선암일지 모른다니. 하. 깊은 탄식이 저 아래 시작점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더 미치는 건 원망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갑상선에 약간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결절이 있은 지 오래되었고 유방암 수술 후 갑상선 기능저하증 약까지 야무지게 먹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 발견된 결절은 십오 년 전쯤 생겼는데 모양이 나쁘지 않다 했다. 그놈은 이제 조금씩 자라 2.2센티가 되었다. 문제는 그놈 옆에 새로 생긴 놈이다. 그 녀석은 수년 전쯤 작은 결절로 나타나서 0.7센티로 얌전히 크기 변화 없이 잘 버티고 있었는데 이번 검사에서 1.3센티로 훌쩍 자랐다. 작년 11월 말 건강검진에서 0.7센티이었으니 딱 두 달 만에 성장기 아이처럼 빠르게 자란 셈이다. 갑상선암은 자라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어떻게 두 달 만에 찌그러진 모양이 되어 0.5센티나 자랐는지 의아했다. 정상은 아니라는 선명한 시그널이다. 1센티 남짓에 쩔쩔매며 휘청거리는 어이없는 상황이라니.


"조직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눈앞이 흐려졌다. 황당한 건지 당황한 건지 화가 나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눈물이 터졌다.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아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형식적인 최선의 위로를 했다.

"저 유방암 수술한 지 이제 4년 되었는데요"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정보를 들이대고 있는 건지. 순간 억울함에 '저 암 한번 걸렸었어요.' 그러니 또 걸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말이었다. 부질없다. 독립사건이다.

그 개별사건을 해명해 내라고 아무 죄 없는 의사 멱살을 잡을 것도 아니었고 마냥 울고 앉아 책임지라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참. 내 감정만 전하느라 내 등뒤에 서서 나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랐을 남편이야기를 놓쳤다.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 엉거주춤 인사하고 나는 모니터 앞 의자에 남편은 내 등뒤에 서 있었다. 같은 말을 듣고 남편이 어떤 상태가 되었을지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떨리는 손으로 최대한 태연한 척 내 등을 어루만지며 연신 같은 말을 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에게는 괜찮다고 말해놓고 의사에게 수없이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괜찮다면서 무슨 질문은 그리 많은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착한 사람. 또 고생하게 생겼다. 젠장.


갑상선 기능 저하증 약을 먹고 있었기에 정기적으로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해왔다. 늘 하던 검사가 있었던 그날. 이번에는 느낌이 싸했다. 초음파실 의사 선생님은 한 번도 살갑게 대해준 적이 없는 묵언수행하는 수도승 같았지만 그날은 유독 더 차갑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나치게 오래 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 왜 이리 오래 찍는 거야. 나쁜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 설마!'

설마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한 번쯤 해 본 사람은 설마가 주는 공포에 갇히기도 한다.

한껏 제쳐진 목위로 끈적이는 젤. 그 위를 미끄러지며 움직이는 기계. 기계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 화면에 음영이 흔들리며 보이긴 했지만 걱정을 떠안기 싫어 차라리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뭐가 안 좋나요?' 늘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하지 않았다. '결과는 외래 와서 들으세요'. 뻔한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병원 짬밥이 얼만데. 그 정도 매뉴얼 숙지는 되어있다.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하면 안 되는 '다섯 글자로 말하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두꺼운 페이퍼타월로 찐득이는 겔을 박박 닦았다. 목덜미에 들러붙은 겔처럼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 유독 오래 찍는 것 같더라. 사진도 수십 장 찍는 것 같고."

나오자마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약간의 걱정이 묻은 말투로 투덜댔다.

그 걱정을 어떻게든 닦아주려고 남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음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검사를 하고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 문득문득 찾아왔지만 암경험자로서의 흔한 불안정도로 여겨보려고 애를 썼다. 불안은 과거에 대한 기억의 작동일 뿐 미래를 예견하는 건 아니니 안 좋은 상상은 하지 말자 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이 이별노래 가사인 줄 알았는데 이거였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맞았다. 초음파 검사 결과 악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K-TIRADS 5단계(고위험군)이었다.


"수술 잘 받으면 90살까지 사는데 문제없어요."

"5년 생존율 97%에요."


와. 무척이나 감격적인 위로다. 의사 선생님을 비꼬려 하는 것은 아니다. 친절하신 분이다. 그저 나에게 전혀 위로가 안된다는 게 문제다.


120살까지 살고 싶고 생존율 100%인 삶을 살고 싶은 내 욕심을 채우기에는 암이어도 괜찮다는 저 말은 허공에 부서진 물방울처럼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멍했다. 이제 유방암 환자 껍질을 조금 떨쳐내려 하고 있는데. 올해 11월이면 5년인데. 물론 5년이 지났다고 끝은 아니지만 그래도 5년이 되면 그간 잘 버텨준 나를 위한 파티를 해야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했는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일까? 설레발이 문제였던 것일까?

난 다시 새로운 암의 옷을 입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또 설레발일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안다. 경험자로서.

의사의 말에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았다. 암이 아니길 바라는 헛된 기대보다 암이 얌전하기를 바라는 게 현실적이다.


"세침검사 가장 빠른 날이 두 달 뒤예요." 빠른 이라는 뜻을 모르는 것인가?

"네?"

화나거나 부정하고 싶거나 못 알아들을 때 뱉는 한 단어가 반사적으로 또 튀어나왔다.

수술도 아닌 검사를 두 달이나 기다리라니. 병원시스템은 내가 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 의료진의 스케줄, 장비의 가동가능성등을 고려해서 정해지고 나는 따를 것인가만 답하면 된다.

결과지를 뽑고 초음파 영상을 cd에 담았다. 남편과 나는 4년 전 그날처럼 여기저기 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검사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아 예약했다.


"가져오신 초음파보니 제가 본거랑 결과지가 다르지 않네요" 다른 의사. 같은 의견.

"그런데 림프절도 전이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다른 의사. 다른 의견.

"네? 저쪽 병원에서는 비대해진 염증소견이었는데요."

"단순히 염증으로 보기에는 모양이 좋지 않아요."

그놈의 모양! 모양! 모양!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참신한 의견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전이라는 단어를 들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유방암을 경험한 나로서는 림프절 전이라는 말은 트리거다. 공포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바로 세침검사 해야 할 것 같네요"

결과는 아는 거였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지만 세침검사를 바로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나마 안도했다. 암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피를 말리고 살을 갉아먹는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다림은 지옥이다.


"상의 갈아입고 나오세요."

"검사실로 이동하실게요."


초음파 기계가 있는 세침 검사실에 들어가 베드에 누워 고개를 젖힌 채 큰 숨을 몰아쉰다.

"긴 바늘 3개 주세요" 두 개는 결절용 세침검사, 하나는 유전자 검사용으로 세 번이나 해야 했다.

"따끔, 불편합니다" 주삿바늘이 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의사와 간호사의 의학적인 대화가 몇 차례 오갔고 난 지혈을 위해 올려준 거즈를 양 손바닥으로 꾹 누른 채 회복실에서 15분을 누워 있었다.

회복실 천정이 슬퍼 보였다.


"결과는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열흘 뒤에 오세요."

하. 열흘. 지옥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네"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별 수 없음을 아니까.


"네?", "네"만 말했던 시간이 지나갔다.


목에 동그란 밴드를 세 군데 붙이고 남편과 말없이 손을 꼭 잡는다. 4년 전 그날처럼.

어쩌면 조금 슬플지도 고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지나간다는 걸 아니까. 믿으니까.





2026년부터는 좀 더 열심히 글을 써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26년 첫 글 소재가 이럴 줄은 몰랐다. 게으른 나를 채근하기 위함이었다면 목적은 달성했으니 부디 그만 괴롭히기를.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