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뭐 어때 Dec 07. 2023

공부 못하면 아이를 미워해도 될까

아들과 싸우고 쓰는 반성문

'다음 생이 있다면 공부 없는 곳에서 엄마와 아들로 다시 한번 만나자. 진짜 잘해줄게'

얼마 전 많이 혼내놓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기 싫지만 어떻게든 회복은  해야겠기에 농담 섞어서 던진 말이다.

요즘 같아선 아들은 나를 다시 만나기 싫을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사춘기도 크게 없이 나에게 안겨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애교 많고 마음 씀씀이가 예쁜 아들이었다. -과거형으로 쓰게 될 줄이야- 남의 집 아이들 고민거리는 나와 상관없을 줄 알았고 가끔은 우리 아들은 안 그래서 다행이다 위안을 삼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총량의 법칙이 있긴 한가보다.

고1 느지막이 찾아온 사춘기로 인해 요즘 거의 매일 아들과 부딪힌다. 분명 부드러운 말로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서로 감정이 상하고 끝이 난다. 시험기간이 되면 싸움의 빈도는 더욱 잦아진다. 아들은 나에게 기승전 공부라고 얘기하고 나는 언제 그랬냐면서 다투기 일쑤다.

학원숙제, 수행평가, 방정리, 시험공부 등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는 원인은 전부 공부 때문이다. 엄마인 내 탓이 아니라고 죄를 뒤집어 씌우기에 공부가 딱이다.

만약 내신 1등급의 아이였다면 얼마나 피곤해서 저걸 못 챙겼을까 하면서 정리를 도와주고 힘들어하는 아들을 다독이며 격려했을 것이다.

예전 개그 프로에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쳐대고,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1등을 못해봐서 그런 것 같다'며 기뻐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래 1등 해야지, 그래야 기억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라고 믿으면서 아들을 다그쳐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와닿지도 않을 이야기를 무한 반복해 대니 들릴 리 없다.





오늘 아침 감기기운이 있다며 병원을 들렀다 학교를 가겠다는 아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러게 어제 왜 그렇게 싸돌아 다녔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하교 후에 가기를 권했지만 이미 아들에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프다는데 무슨 엄마가 저래'라는 표정이었지만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했으면 내가 이러겠니'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많이 아파 보이지 않으니 그저 생활기록부에 병 지각이 표시되는 게 싫었고 담임 선생님께 '안녕하세요~우리 아이가~'로 시작하는 문자를 보내야 하는 게 내 몫이 되는 것도 별로였다. 셔틀을 놓쳤으니 학교까지 태워다 줘야 하는 것도 귀찮고 그냥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들이 미웠다.  




그렇게 학교를 보내고 하루종일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문득 언젠가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랑 나랑 MBTI 하나도 안 맞는 거 알아?" "그래? 신기하네"

아마 그때도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영혼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MBTI는 핑계였고 그저 엄마랑 안 맞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공부를 못하면 아이를 미워해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해보았다. 학교에서 성적으로 매긴 등급이 내 아들로서의 등급으로 착각하며 대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1등급은 고작 4%에 불과하고 3등급도 23%, 4분의 1안에는 들어야 가능하다. 산술적으로 쉬워 보이는 일들이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K고등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등급 상관없이 모두 엄청난 무게의 스트레스를 버텨가며 견디고 있는 중일 것이다. 1등급만 그 스트레스를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고 착각했고 그 잘못된 생각은 우리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천성적으로 친구 좋아하고 엉덩이 가벼운 자유로운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완벽하지 못한 엄마가 아들의 완벽을 꿈꾸다가 요즘 혼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본다. 나는 내 역할에서 과연 몇 등급이나 하고 있을까?

글 쓰는 이 일도 9등급 최하위권일 테고 엄마, 아내로서는 어떨까. 대답에 자신 없는 질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원인은 공부도 아들도 아닌 공부에 핑계 대는 욕심 많은 내 탓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 가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